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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돌고래는 춤을 추고

방주교회, 형제해안로, 차귀도, 아홉굿마을

by 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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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9. 화 >

나갈 날이 가까워지니 맘이 더 바쁜 사람은 아내다.

오후에 있는 차귀도 일정이라 좀 여유가 있나 싶었는데, 손 빠진 곳이나 숨은 명소를 저녁내 찾았다며 아침부터 서두른다.

사계전복(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로 207)

sbs 음담패설이라는 프로에서 김준현이 왔다 갔다고 대분짝 만하게 현수막이 걸려있다.

전복뚝배기(15,000원)는 된장이 기본 국물이다.

전복, 홍합, 모시조개, 게, 새우가 가득 들어있어 알을 뽑아먹느라 팔이 아프다.

뚝배기 바닥이 파인 것으로 보아 시원한 국물을 후후 불며 먹었을 사람들의 성난 숟가락질이 그려진다.

오늘은 반주로 소주를 먹지 않는다.

이 귀하고 맛난 음식이 소주잔을 드는 순간 안주로 조연이 되고 만다.

오롯이 식사에 집중하고 싶어서, 주연으로 자리를 높여주고 싶어서다.

전복돌솥밥(13,000원)은 부드러운 전복이 톳 위에서 익은 비빔밥이다.

돌솥밥을 싫어하는 아내도 뜨거운 물을 부어 눌린 누룽지를 비리지 않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수저를 놓지 못한다.

하루 한 끼는 제대로 먹자 주의인데 딱 한 번을 제외하면 매번 만족이다.

리뷰를 꼼꼼히 챙겨본 끈기 때문이리라.

아내는 소식주의자이면서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 먹는 것이라는 소신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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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교회(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길 113)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준이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설계한 교회다.

물 위에 떠 있는 배 같은 모양이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너머로 중산간의 한적한 과수원과 아담한 오름이 마치 담을 이룬 것처럼 오붓하다.

오전에만 잠깐 개방하는 예배당은 촘촘한 나무 기둥 틈으로 비치는 햇빛과 물그림자로 순간 맘을 숙연해지게 한다.

높게 뚫린 창은 노아가 폭풍우 속에서 육지를 찾는 절절함이 느껴진다.

전면의 모습을 다 담고 싶은데 장소가 좁아 끝부분이 잘린다.

아마 건축가의 심오한 뜻이 숨어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두고두고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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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제해안로(산방산과 송악산 사이 해안도로)

형제섬을 바라보고 흰 모래와 검은 현무암, 황금빛의 바위 절리가 만들어놓은 반달 모양의 해변을 파도가 쉼 없이 드나드는 곳이다.

바위 위에 서고 방향은 형제섬, 송악산, 산방산, 한라산 어디로 잡아도 그냥 액자다.

소문난 사진 포인트인지 커플들이 줄을 잇는다.

한 시간째 사진을 찍고 있는 찰떡 쌍을 보며 차를 마신다.

3층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세트를 설치해놓았는데,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뒤편으로는 군산오름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케익도 그렇고 음료들이 역대급이다.

특히 뷰가, 이제까지 이런 뷰는 없었다.


차귀도 배를 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

속에서 뜨거운 것이 막 밀고 올라오지만 삼켜야 한다.

조그마한 부스러기라도 튀어나오는 순간 전쟁이다.

결국 20분 전에 도착했으니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승부였다.

공연히 혼자만의 생각으로 화만 내는 노인네는 되지 말아야지.

잘 될지 자신은 없지만, 자꾸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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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 유람 및 탐방(13:30 ~ 14:40)

모자를 손으로 잡아라, 목에 거는 명찰을 옷 속으로 넣어라.

돌풍이 분다, 파도가 높다.

뚱땡이 안내원은 겁을 준다.

5분 만에 차귀도에 닿는 배.

13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타는 부부, 보행기와 함께.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체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도저히 볼 수가 없는 화장실을 다녀와서, 바로 대나무 숲을 오르는 언덕.

앞서가는 할머니는 좀 천천히 가라며 악을 쓴다.

빨리 따라다녀야 젊은것들이 데리고 다닌다는 핀잔이 돌아온다.

내가 맞추어야지 남을 나에게 맞추려 하면 반드시 화가 따른다는 세상의 이치.

들어라, 버려라, 주어라, 낮추어라, 내가 맞추어라.


최재성과 이보희가 주연으로 나오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촬영했다는 다 짜그라진 건물을 지난다.

지질이 섬을 바라보고 너른 죽도의 분화구 맨 끝 쪽을 한 바퀴 돈다.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해안의 절벽들을 바라보며 야자잎 매트가 잘 깔린 완만한 경사의 풀숲 길은 걷는다.

할머니들은 시간에 맞추려면 돌아가야 하는지 정상까지 가야 하는지 등대 앞에서 고민이 많다.

와섬을 바라보는 정상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데 딱 45분.

거의 날랐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쌓은 돌탑이 해안에 널려있다.

거기에 소원 하나 더 보내는 여인.

기도하는 것, 바램을 비는 것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

조금만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편하게 속속들이 보고 오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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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의 유람.

매섬과 장군바위 형제바위를 열심히 설명하는 아가씨 목소리.

아슬아슬한 바위 끝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매달려 있다.

고기는 다 어디 갔는지, 잡는 사람 꼴을 볼 수가 없다.

모레면 아들이 저 꼴이 되고 싶어 온단다.

나는 그물을 쳐놓고 막걸리나 먹는 것이 체질이니, 이해가 잘 안된다.

저기에 드는 돈이면 식당에서 배 터지게 회를 먹는데 말이다.

아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설명을 따라 바위들을 보고 있다.

멀미와 정면승부를 하겠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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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굿마을(한경면 낙천리)

넓은 과수원 사이에 점점이 박혀있는 전원주택.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다양한 크고 작은 의자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해놓았다.

피자 체험 학습장 등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공부 거리를 준비한 것 같으나 찾는 이가 적은지 풀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높은 전망대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있으니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인데, 너무 아깝다.

주변에 올레 13코스가 지나가는 길은 돌담을 끼고 울툭불툭한 돌을 밟으며 가야 한다.

넓은 보리밭과 귤 농장이 있지만 낮이어도 혼자는 무섭다.

돌 틈에 풀이 자라는 것으로 보아 올레꾼들도 오지 않는 오지다.

의자에 앉아 폼나게 사진을 찍고 싶지만, 널려있는 새똥 때문에 엉덩이를 들고 있어야 한다.

무너져가는 옛 성터를 보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짠하다.

처음 구상하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을 그 어떤 분.

화병으로 돌아가신 것은 아니겠지요.

갈 곳 다 가고 갈 곳 없으면 이곳을 찾는 날도 있을 겁니다.

하여간 참아야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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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돌릴 틈 없이 프로그램이 돌아갔다.

아내는 미안한지, 막걸리 한 잔?

선술집을 찾다 걸린 협재해수욕장의 파전과 문어숙회.

옆집의 수제버거도 제법.


낮이 길어졌다, 7시가 되어도 훤하다.

어도 하나로마트에 들러 맥주와 막걸리 두부를 사 들고 2차는 집에서.

내일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날 굴릴까?

좀 살살 다뤄주세요, 승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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