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코스 탐방, 오백장군, 윗세오름, 도깨비 도로
< 5. 17. 수 >
이른 다섯 시.
눈썹달이 찾아와 길을 밝혀주는 산록도로로 오르는 길.
어둠을 밟고 먼저 와 차에서 내리는 고사리 사냥꾼들.
주변이 온통 공동묘지인데 무섭지도 않나.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힘든 일이기는 하다.
차는 바쁘게 달린다.
어리목을 영실로 잘못 알았나, 1100고지 휴게소를 지났는데도 아직 한참 남았다.
영실 주차장을 지나 한참을 더 달려 오백장군 까마귀 주차장.
하절기는 5시부터 개방한다더니 10여 대의 차들이 이미 와 있다.
5시 39분.
사기충천한 여자들은 신나게 출발.
초록 새잎을 만지며 다가오는 바람은 깊은 산골 옹달샘 맛이다.
하품하는 새소리를 들으며 사진 몇 컷 찍고 보니, 여전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땀이 잔잔하게 등에 맺힐 때까지는 무리하면 안 된다.
마라톤 풀 코스 열 번을 뛴 백전노장의 경험이다.
자그마한 조릿대 사이에 삼나무 소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바람 소리인가?
나뭇잎 서로 다투는 소리인가?
계곡물 흐르는 소리다.
비가 오면 모두 땅속으로 스며든다고 들었는데 아니다.
꽤 많은 양이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 잘 정돈된 나무 계단을 혼자서 천천히 오른다.
오백장군과 까마귀
한라산 서남쪽 기암괴석들이 늘어선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오백장군‘이라 부르는 연유는.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에게는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다.
척박한 제주도에서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흉년까지 들었다.
할망은 고심 끝에 아들들에게 각자 먹을 양식을 구해오도록 했다.
아들들은 모두 집을 나섰다.
할망은 고생하는 아들들을 생각하며, 커다란 솥에 돌아와 먹을 죽을 끓였다.
열심히 솥 주위를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다.
그러다 그만 발을 헛디뎌 죽 속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들이 양식을 구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안 계시고, 죽만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 아들들은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죽 맛이 좋다고 생각하며.
제일 늦게 온 막내아들이 국자로 죽을 뜨다 보니 뼈다귀가 보였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죽을 휘저어 뼈들을 모두 건져내고 보니 사람의 뼈였다.
바로 어머니의 뼈였던 것이다.
어머니의 고기로 만든 죽을 먹은 형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며 집을 나온다.
울면서 달리다 보니 한경면 고산리의 차귀도까지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형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통곡하다 바위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영혼은 까마귀가 되었다.
천 길 절벽을 이룬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어스름 새벽 하늘가로 능선이 어렴풋이 쭉 그어지고, 499개의 장군 바위들이
헉헉거리며 오르는 나를 보고 있다.
바람은 자꾸 빨리 가라 밀고, 다리는 천천히 가려고 버틴다.
한 화면에 잡히지 않는 장엄한 광경.
소름이 돋는다.
어렴풋이 능선을 오르며 하늘로 두 손 흔드는 여전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되도록 계곡과 먼 쪽으로 발길을 잡고 옷은 단단히 잠근다.
눈길은 계곡 쪽을 피해 발끝 계단만 보며 걷는다.
몸을 휘청이게 하는 바람, 후들거리는 다리, 오그라드는 봉알.
나는 분명 고소공포증이 있나 보다.
해발 1500m.
서북쪽 방향으로 오름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아침 점호를 취할 모양이다.
멀리 바다까지 훤하게 보인다.
완전 계 탔다.
오백장군을 오르니, 키 작은 나무숲 길이다.
허옇게 말라가는 고사목과 구상나무도 보인다.
그렇게 십여 분을 걸었나?
보랏빛 붉은 진달래밭 뒤로 한라산 정상이 훅 나타난다.
숨이 턱 막힌다.
알프스 사진 달력에서나 보았을 모습이 펼쳐진 것이다.
정상을 향해 넓게 펼쳐진 선작지왓(돌이 널려있는 벌판).
내 머리만큼 짧은 조릿대가 촘촘하게 깔려있다.
반듯하게 정상 쪽으로 향하는 나무 데크 길.
서늘한 아침 햇살을 가슴으로 품으며 간다.
파란 하늘과 한라산 정상, 그곳으로 가는 한없이 넓은 나무 하나 없는 벌판을 임금님 알현하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처럼 혼자서 간다.
영원히 이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
가슴속에서 일렁이는 이 감동의 물결이 꺼지지 않았으면.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가려지지 않는 시선, 가릴 수 없는 내 생각들.
목쉰 고라니 소리만 간혹 그 공간에 건너간다.
절반쯤이나 왔을까.
노루샘이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자그마한 물줄기가 지나간다.
파란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바가지.
노루가 먹는 물을 빼앗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임금님을 만나러 가는 개선장군.
유럽 여행은 로마를 맨 마지막으로 가라고 하는지 알겠다.
제주도는 꼭 영실을 맨 마지막으로 와야 하는 것처럼.
여기를 오지 않았으면 어쩔뻔했는가.
단연 엄지손가락이다. 주저하지 않고.
윗세오름(붉은 오름, 민오름, 족은오름을 통칭하는 한라산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오름들) 대피소.
평균 2시간 30분 소요된다는 코스를 1시간 10분에 주파하고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는 여전사들.
남벽 쪽으로 한참을 더 올라 기념사진을 찍는다.
다 식은 짠 연돈볼카츠로 간식을 먹는다.
한라산에서 가장 높은 화장실에서 몸도 마음도 깨끗이 비운다.
오직 감동만 남고 모두 가라.
등 뒤로 따라오는 햇볕이 제법 따갑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쉽게 생각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온 사람들은 목을 움츠리고 겨드랑이를 몸에 딱 붙이고 있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일등을 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는 아내.
몇 번이고 오백장군을 돌아보는 둘째.
이렇게 경사가 심했느냐며 놀란다.
내려올 때만 안다.
험한 길,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지.
누구나 그런 고비 한 번쯤은 있었다.
3시간 만에 영실코스 왕복.
까마귀가 청설모를 먹다 떨어뜨리고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꼭 내 손녀 채원이 하는 짓과 똑같아서 웃으며 빠져나온 출입구.
여기는 까마귀가 주인이다.
물범 나만 아니었으면 2시간도 가능했겠다.
좀 늦기는 했지만, 여전사들은 올림픽으로 보내야 할 듯.
한라산 어깨를 넘어 민속오일시장으로 간다.
앞서 신나게 달리던 택시가 비상등을 켜더니 가만히 선다.
그리고 천천히 오르막을 미끄러지며 오른다.
도깨비 도로다.
저번 고지 500에서는 허탕이었는데.
곧 나간다고 이것까지 시켜주시다니.
민속시장은, 꽃집과 씨앗을 파는 집이 맨 앞에 있어 좋다.
해남산 고구마 순도 보인다.
벌써 네 번째 들린다.
떡볶이 튀김을 사 들고, 어묵에 막걸리도 한잔.
곧 철이 끝난다는 카라향도 한 보따리.
삼양동의 정낭집, 낙지볶음.
11시 오픈과 함께 가득 메워지는 자리.
같은 곳을 찾은 집은 대정의 돈방석 다음으로 이곳이다.
원양산 낙지라는데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나.
살짝 매콤하면서 착착 감기는 양념, 푸짐한 밑반찬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여자들을 꽉 잡았다.
유수암리 카페 Aewol the Hill.
창고를 개조했는지 높은 천정의 서까래들이 훤히 보인다.
탁자도 가림막 없이 듬성듬성 넓은 공간에 놓여있다.
멀리 애월 바닷가까지 훤히 보이는 조망.
중산간의 오래된 마을의 높은 언덕.
하나만 집에 심으면 자식들이 아프지 않는다는 무환자나무, 팽나무가 가득한 동네.
어떻게 이런 깊은 동네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공명을 찾는 유비처럼.
지금은 쪼그라진 낙월도.
집은 무너지고 집터만 남은 그곳도 괄시해서는 안 되겠다.
어느 구름에 비 올지 모르니 궁리궁리 해봐야지.
일찍 시작했더니 마무리도 빨라지는 일정이다.
이제 슬슬 짐 꾸릴 일을 걱정해야 한다.
내일은 해안길 절반을 돌아야 한다.
비가 온다지만 걱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