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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Sep 19. 2023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 3

2012.01.02

<6>

- 2012년 1월 2    

 

다행이다. 비는 오지 않는다.

이 정도 바람은 보통이라는 사장님 말씀에 용기를 얻고 홍삼진액과 빵 하나 먹고 8시 출발.   

  

성산대교를 지나 올레 2구간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온조리 양식장이 나오고, 무조건 바다를 왼쪽으로 보며 달린다.

성산읍 고성리, 자전거 바람을 보충하고 싶은데 닫혀있는 자전거포의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을 했더니 지금 내륙에 있어 2시간은 걸려야 한단다.

별일이야 있을라고, 가는데 까지 가보자.  

   

바다로 볼록하게 튀어 나간 섭지코지로 향한다.

몇 년 전 왔을 때는 올인 세트장이 다 부서져 허허로운 벌판이더니만 반듯하게 성당을 지어 영화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고급 콘도들은 바다를 보고서 폼나게 서있다.  

자전거를 내려 끌면서 등대가 있는 해변을 돌아 나온다.  

   

표선해수욕장 방향으로 올레길을 알리는 화살표만 보고서 들랑달랑 오르락내리락 부드럽게 내리는 햇살을 즐기며 달린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포장마차들이 문을 며느라 바쁘다.

신천을 지나는데 “혜숙이네 해녀의 집”이라는 간판을 단 포장마차가 보인다.

힘센 호랑이 최혜숙 선생의 해녀복 닮은 라이딩 옷이 생각나 웃음이 나온다.  

“갈치 호박죽”이라는 메뉴를 보면서 아내는 갈치조림에 죽순을 넣고 “죽순갈치”로 나중에 조그마한 맛집 하나 열고 한적한 제주도에 터를 잡아도 좋겠단다.

멍게에 소주 한잔 생각이 나지만 갈치 입보다 더 날카로운 아내의 눈초리가 무서워 일단 더 가보자.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 너머로 

배추, 무는 의뭉한 생각으로 

옆집을 엿보고 있다.

성질 급한 유채는 긴 목을 빼고 

노골적으로 담 위에서 내려다본다.

그놈 얼굴은 놀부 심보를 닮아서 노랗다.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내일을 데리고 와서 

어제를 데리고 간다.     

한 뼘 차이로 오늘은 

들고 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자맥질하는 해녀의 두 다리가  

갈매기의 날개를 닮아 참 가볍다.    

 

떡대는 넓지 않지만, 키가 무지하게 큰 표선해수욕장을 지나 올레 5구간을 달린다.

배가 출출해 오는데 그 많던 포장마차는 꼭꼭 숨어 얼굴을 볼 수가 없다.


                                                                                                 

<7>     

남원에 이르러서야 보인다.

“뱃머리 횟집” 옥돔구이(1인분 20,000원). 제주도 우리 쌀 막걸리(5,000원)

뚝배기 하나를 더 시키지 않아서인지, 얼굴이 기라죽하고 작은 눈을 사정없이 치켜든 아줌마가 더럽게는 쌀쌀맞다.

기본으로 주는 광어회는 싱싱하고 쫄깃하니 제법 맛이 있다.

여러 밑반찬과 게장, 야채샐러드도 푸짐해서 그냥 용서해 주기로 했다.

막걸리는 담백한 게 무등산 막걸리와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올레길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해변을 자전거를 들고 가야 하는 곳도 여러 곳이다.

막다른 골목에 막혀 난감한데 파란 잠바를 입은 총각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맙게도 길 안내를 자청한다.

오솔길과 해변을 번갈아 가며 악전고투 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7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양팔을 벌리고 길을 막아선다.

왕년에 민정경찰이었다나, 술 냄새를 풍기며 쉰 소리를 하는데 그동안 참 여러 사람 피곤하게 했겠구나 싶다.

세상 어디에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은 있는 법. 

불공평하게 그런 사람들이 잘도 산다.   

  

주인집 딸을 사모한 머슴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쇠소깍.

카누 체험을 하는 곳이다.

바다가 육지로 길게 들어와 계곡을 이루었는데 간혹 TV에서 보았던 곳이다.

물이라면 겁부터 내는 아내는 손사래를 친다.

나중에 철인이라도 도전해 보려면 물길 3.8KM를 가야 한다는데, 개표 헤엄을 하는 나도 겁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스크림과 캔 맥주 하나로 목을 축이고 다시 출발.    

 

서귀포항에 도착. 4시 23분. 송상음식특화거리.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잡아야겠다.

게스트하우스라는 표지판을 보고 편의점에 들렀더니 1인당 20,000원인데, 남자와 여자는 다른 방에서 자야 한단다.

여기까지 와서 이산가족 될 수는 없다.

바로 옆의 1층은 복집식당인 만부민박(50,000원)에 여장을 푼다.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리저리 싸대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눈에 익은 거리다 싶었는데 어제 갈치 정식을 먹은 그 집이 있는 거리다.


고등어회라 쓰여있는 “수라청횟집”.

화제집중(MBC)에 나왔던 집이라고 쓰여있다.

실실 눈웃음을 치는 뺀질뺀질하게 생긴 주인아저씨.

고등어회는 안되고, 회(50,000원)를 시키면 정말 잘해주겠단다.

그래놓고 달랑 광어와 방어, 그리고 매운탕이 전부다.

평생 다시 보겠느냐고, 완전히 물 먹이는 것이지. 

이 글을 보신 분들 절대로 가지 마시라. 서귀포항 송상음식특화거리의 “수라청횟집”. 


                                                                                                           

<8>     

다소 찝찝한 저녁을 먹고 천지연폭포로 산보를 떠난다.

정갈한 주변과 분위기가 옛날 대학 때 수학여행을 통해 왔던 곳이라 더욱 좋다.

아내의 손을 잡고 성산포항을 지나 새섬까지 산책했던 시간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서 부끄럽지만 운문 형식을 빌려 표현해보고 싶어 진다. 

너무 가슴이 벅차서, 이해해 주시라. 

그럼, 시작.      


1982년 내가 대학교 3학년 그 푸르렀던 시절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왔고 첫날 잠을 잤던 곳

천지연폭포 아래 계곡 넘어 작은 뽕뽕 다리가 있었고

빽빽한 나무 숲 속에 아담하게 앉아있는 구림장


이른 새벽, 어둠이 아직 떠나지 않은 자리에 

안개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해답 없는 질문에 심각한 척 나는 혼자서 터벅터벅 폭포를 향해 걸었지

커다란 물방울 속에 도란도란 눈을 맞추며 걷고 있는 노부부

잔잔하게 웃고 계시는 얼굴에 핀 흰 행복의 꽃은 아침 안개보다 더 빛났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늙어 가야지

세월의 몽당 연필로 가슴에 꼭꼭 눌러쓴 나에게 내준 숙제   

         

검은 구름들은 모두 좁은 폭포가 만든 계곡 위로 모두 모였다

그 틈을 비집고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야문 별 하나

어서 잡으라고 하얀 손을 쑥 내민다

가늘게 불어주는 바람에 후박나무, 단풍나무 고개를 흔들며 까르르 웃고

조잘조잘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 은어들로 계곡은 온통 축제다


난 하얀 별의 손을 잡고

아내는 내 왼팔에 칠 할인 매달려

은하수 내려와 양옆에 쭉 늘어선 얌전한 검은 현무암 길을 따라

둥 둥 둥 폭포가 연주하는 북소리를 들으며 간다

두 줄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의 빛을 따라 

연어가 고향을 찾아 오르듯

25년 전의 겁 없이 영원을 약속했던 그곳으로

반백의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가 황홀하게 오른다    

 

식을 마친 더벅머리 총각과 긴 머리 처녀는 부부가 되어

배들이 피곤한 다리를 펴고 쉬고 있는 서귀포항을 지나

아무도 살지 않은 자그마한 새섬으로

보라색 구름다리를 건너 신혼여행을 떠난다    

 

파도의 간지럼에 새섬은 싫지 않은 눈을 흘기고

우리가 가는 길만 살짝 비춰주는 가로등

아내의 감은 떨고 있는 왼쪽 눈 위로

부끄러운 입술을 묻는다


비에 젖은 새가 되어 

내 좁은 가슴에 폭 안겨오는

그대를

남은 시간을 다해 따뜻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아직 남은 작은 몽당 연필로 

또 가슴속에 내는 숙제

옆에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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