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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2023.11.28. 화

by 고주

좀 서두른 결과로 숲길을 걷는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뛰는 행렬에 섞여 계단을 장애물 경기하듯 날았다.

마지막 탑승을 했고, 문은 스르륵 닫혔다.

펴진 우산에 놀란 멧돼지처럼 급제동을 건 아저씨, 신발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창 너머로 보이는 저 난감한 표정.

이렇게 나도 출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둑어둑한 7시도 되기 전에.

비도 좀 왔었고, 오늘은 바람도 제법 부는데.

불타는 단풍나무는 여전히 그대로다.

낙엽 하나 떨구지 않고.




<그 단풍나무>

너무 이쁘고 잘나서

품위 있고 반듯해서

건강하고 호리호리해서

샘이 났다

영원할 것 같아

미워지려 한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다 가진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이제는 잎 몇 떨구어도

가지에 마른 잎 좀 늘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은데

죽는 게 제일 복이라지 않는가?

고것이 맘대로 되든가?




시험문제가 나간다.

솥뚜껑 위의 삼겹살처럼 튀던 녀석들이 얼음이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온다.

까불이들은 나라 잃은 표정이다.

문제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고 난리다.

이제는 수학이 문제가 아니다.

솔이는 한 시간 내내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45분이 얼마나 길까?

여학생들이 꼼꼼하게 답을 서술하고 풀이 과정을 가지런하게 정리한다.

장난으로 남학생 목덜미를 야무지게 움켜쥐던 순이는 얼굴에 도장이 깊게 찍히도록 잠만 잔다.

부모님 확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지를 앞에 두고 근심이 가득한 녀석.

10분도 되지 않아 문제지를 덮는 놈.

오래 보고 있어 봐야 바위에서 꽃 피는 법 없으니.

뭐라 몇 자 적고 내 얼굴 보기가 민망한지 사과 소녀는 내 눈을 피한다.

체력장 연습으로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 뛰었던 가슴.

시험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밥 수레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전 네 시간 중 세 시간 감독.

내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영이가 살포시 웃는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문제로 고개를 깊게 묻지만 삐져나오는 웃음은 거두 지를 못한다.

윤주는 공부하지 않았다고 징징대더니 15분이나 남았는데도 연필을 탁 놓는다.

그렇지 그것도 상당히 목에 힘이 가는 일이지.

세 가지 유형으로 치른 시험.

명확하게 갈린다.

빨리 채점을 마치고 내일부터는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민원이 발생할 수 있으니 투명하게 본인들도 확인해야 한다.

바쁜 연말로 달려가는 일정.

정신 바짝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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