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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

2024.03.13. 수

by 고주

<심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는다.

7시다.

수원으로 출근했을 때는 금정역에서 1호선을 기다리는 시간.

그때는 참 힘들었겠다.

다 지나고 나서 느낀다, 얼굴이 틀어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멋모르고 보낸 세월이 비단 그것뿐이랴.


몇 번이고 눈을 맞출 때까지 고개를 숙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공손한 인사를 받아먹고 시치미 똑 떼고 가는 녀석도 있다.

집에서 골난 일이 있었나?

그래도 그렇지, 살짝 눈인사도 못 하나.

쌍둥이도 기질이 다르다는 선생님, 동생이 훨씬 적극적이고 리더 십도 있어서 놀랐단다.

특별반으로 가는 아이가 지나가고 그림자처럼 따라가는 엄마.

얼굴이 너무 어둡다.

끝날 수 없는 고난의 길, 기쁨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오랜 길.

가슴이 먹먹하다.

교문 앞 생강나무는 며칠째 어금니 앙당 물고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참아라.

6반은 두 번째 시간이라 좀 서둘러야겠다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조별로 책상이 배열되어 있다.

집단상담이란다.

주어진 한 달 안에 해야 할 진도가 걱정된다.

5층부터 복도를 돌아 3층 계단.

놀고 있던 정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다, 그 큰 눈을 굴린다.

머리에서 쇠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보 선생님?” 어렵게 기억해냈다는 안도감이 묻어나는.

1반은 내가 들어가지 않으니, 과목을 모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좀 서운하다.

제 명찰을 가리고 이름을 묻는다.

아주 똑똑하게 말해주었다.

감사하다며 친구 뒤따라 달린다.

일부러 녀석을 보기 위해 1반 쪽으로 자주 갔었는데, 모든 선생님께 똑같은 반응인가 보다.

나한테만 상냥했으면 좋겠다는 심보는 또 뭐야?

소수, 합성수, 지수, 밑, 거듭제곱.

눈을 반짝이면서 따라오는 아이들, 며칠이나 갈까?

이 여우 같은 아이들이 몇 년 후 수포자가 된다니.

점심 먹고 나른한 시간.

3학년은 안정감을 찾았다.

2학년은 엎어져 다른 세상으로 떠난 아이들이 여럿 보인다.

서열 정리가 덜 끝난 1학년은 방방 뜬다.

복도를 질주하는 말들, 암말이 훨씬 잘 뛴다.

몇 년째 묵힌 학생부 자료들을 파쇄한다.

심란한 개인정보가 많이 들어있어서 분리수거를 할 수 없다.

몸으로 하는 것이야 몇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명예 퇴임 자다.

내일부터 해야 하는 현관 청소 당번이 왔다.

성실하게 생긴 남자아이와 야물 탁지게 생긴 여자아이.

청소는 걱정 없겠다.

하여간 사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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