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오는 날

2024.03.12. ghk

by 고주

<비오는 날>

“6시 좋다. 츄츄츄츛”

높고 바쁘고 쭉 이어지는 긴소리가 다가오고 있다.

검정 롱 패딩을 입고, 가방을 야무지게 지고.

비도 오지 않은데 우산을 쓴, 며칠째 만나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다.

눈을 똑바로 마주 지 않았다.

마음이 아픈 아이일 것이란 짐작을 한다.


누가 듣든 말든 ‘금잔디의 오라버니’가 호주머니 속에서 악을 쓰고 있는 아저씨는 열심히 팔을 돌리며 운동하고 있다.

멍멍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할머니는 누가 산책시키러 나왔는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새소리가 무척 시끄러워졌다.

어디서 새로 이사한 녀석들일까?

밤이 짧아져 일찍 일어난 녀석들일까?

지난밤 10시간 동안 이불속에 있었더니 몸이 가볍다.


교장 선생님과 함께 후문에서 학생 맞이를 한다.

“왜 시간이 이렇게 안 가죠?

지루해서 죽겠습니다.” 하신다.

한 학교에서 3년 6개월은 너무 길다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어려우시단다.

고개가 끄떡여지는 이야기다.

결국 비가 오고 만다.

아마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은, 용기를 내서 여자아이가 비를 맞지 않도록 남자아이가 우산을 함께 쓰자고 했을 것 같은.

어색한 두 아이가 오고 있다.

스쳐 교실 쪽으로 가는 모습이 상큼하다.

공연히 멀쩡한 아이 아픈 사람 만들었는지 몰라.

아니야 좀 이상했어.


등굣길


가만가만 비가 온다

우산 하나에 다리 넷이

비보다 조심스럽게 온다

우산을 쥔 머슴아의

부끄러운 손이 보인다

수줍은 가스나 사이로

보드라운 봄바람이 지나간다

어깨라도 톡 맞닿으면

전기가 찌릿

찌르르 감전되어도 좋겠다

학교까지 오는 길이

너무 짧구나, 생각하겠지

또 어떤 비 오는 날에

다시 만날 수나 있을지 속이 타는

저 머슴아

점심도 먹지 않고 서둘러 우체국으로 뛴다.

오후 4시 30분 이후에는 금융 일은 보지 않는다고 했다.

12시 3분.

문이 닫혀있다.

점심시간이 12시부터 13시까지라고.

속이 확 뒤집힌다.

모두 자기 생각만 하는 세상.

먼 나라들은 더 한다니, 참자.

우체국


시간 딱 정해놓고

볼 일 있으면 맞추어서 오시오.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

보내시든지?

우리가 있으니 얼마나 편해 그 심보

아주 배짱이다.

밥은 먹어야 하고, 집에는 가야 하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나 편지만은

식지 않고 내 맘 제대로 보내졌으면

몇 푼 없는 체크카드야

내일 또 오지 뭐

keyword
이전 06화상큼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