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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손잡고 1
10화
세븐틴
2024.03.15. 금
by
고주
Mar 17. 2024
<세븐틴>
어제는 안 왔어요, 아파서.
그래?
오늘은 코 옆에 여드름을 짰어요.
등교 첫날,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며 내게 자랑했던 그 아이.
두 번이나 집에 갔다 왔어요.
오다 보니 교복을 안 입고 있더라고요.
시험을 면제받을 조건을 물어보았던 독새눈 그 아이.
매일 서 있는 할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참새들.
들어줄 허수아비가 필요한 아이들.
우리는 간절하지는 않더라도 없으면 서운한 참새와 허수아비.
면접을 보던 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라고 했던 수학부장님이 학생 맞이에 나왔다.
검은 가죽 잠바를 입고 자그맣고 반질반질한 도토리같이 통통 튀신다.
이름을 부르고, 반갑게 다가오는 아이들에게는 엄마처럼 푹 안아주신다.
웃어야 예쁘다며 등을 치기도 하고, 오늘은 특별하게 잘 지내라고 응원도 하신다.
왜 얼굴이 어둡냐고 물으면, 배가 고파서요라고 대답하는 아이.
교문 옆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피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누가 누가 더 환한 지 시합하고 있다.
살레시오 선생님에게 제일 어울리는 분이다, 제일 필요한 분이다.
한 소수의 거듭제곱으로 나타내지는 수의 약수를 구하면서 거듭제곱의 지수와 비교한다.
두 소수의 거듭제곱으로 나타내지는 수의 약수를 일일이 구하고, 다시 두 지수의 곱과 비교한다.
두어 가지의 예를 들어보면서 일반화의 과정을 밟는다.
환해지는 얼굴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박수를 친다.
“수학이 쉬운데, 재밌어”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인가, 하늘이 참 파랗고 높다.
자유학기제 방송 댄스 시간.
대형 거울이 걸린 실습실.
장소를 찾지 못한 민성이를 찾으러 간 몇 아이가 좀 늦었다.
간지러운 서울 말씨, 늘씬한 선생님의 지도하에 3열 횡대로 늘어선 아이들.
이렇게 진지할 수가, 열심일 수가.
곡 선정하는데 손으로 하늘을 찌르며 목소리를 높이고,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두르는 여자아이들.
쭈뼛쭈뼛 꼬리 숨긴 강아지처럼 뒷자리를 차지하는 남학생 몇.
왜 따라 안 하느냐고 타박하는 눈치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 민성이만 선방하고 있다.
열심히 따라는 하고 있지만 빗자루 밀대 자루가 우왕좌왕 난리 블루스다.
세븐틴의 무슨 노래라는데, 가사 하나하나에 동작이 달라지니 보고 따라 하기도 버겁겠다.
투스텝 하나면 무슨 노래든지 다 해결되는 내 보리떼춤이 최고인데.
아직도 다른 이름을 대는 얄미운 효정이는 준비운동을 하다 다리에 쥐가 났다며 어리광을 부리면서도 부지런히 따라 한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두 번째 시간.
특별반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오셨다.
희진이가 안 보인다고.
장소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 담당 아이나 선생님과 함께 움직여야 한단다.
숨을 헐떡이며 시온이가 손을 잡고 온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희진이.
다음에는 반드시 자기와 같이 가야 한다고 몇 번이고 이르는 시온이.
밀어내지 않고 챙기고, 챙김을 받는 천사들의 꽃밭이다.
머슴아들까지 하나 되어가고 있는 천국이다.
“소린이는 공부 잘하지?”
유독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잘 듣는 이쁜이.
배시시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얼굴이 붉어진다.
수업하는 재미, 아이들과 하나 된다는 기분.
아직 내가 할 일은 많이 남았다, 오늘은 환장한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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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신으로 모시는 고주망태입니다. 36년의 교직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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