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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초대

2024.04.24. 수

     

어제 점심을 먹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영태 샘이라 부른다.

얼마 만에 들어본 호칭인가?

저번 학교에서는 부장 선생님이라 불렀다.

절반 정도가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원로를 부르는 통칭으로 보였다.

면접 때에 절대로 교장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기도 했다.

상큼해서 좋았고, 교무부장의 느긋함이 더 안심되기도 했다.

이력이야 다 알려졌지만, 그만큼 편해졌다는 상황표시이기도 하다.  

   

10년 안쪽으로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막일꾼들의 공식.

나는 그 호칭이 푸근했다.

성님은 한 등급 더 올려드리는 말.

대학 때는 오빠보다 형, 누나보다 언니라고도 했지.

영태 형이라고 부르던 후배에게 살짝 오해도 했지.

단골 선술집 사장님께는 무조건 이모.

제일 황홀한 부름은, 내 손녀가 영태 씨라고 부를 때.  

   

효정이가 오늘은 실로 찾아왔다.

우산을 들고 교문으로 나갔는데 내가 보이지 않더란다.

빗발이 너무 세서 나갔다가 들어왔다.

비 오는 날은 학생 맞이를 생략하기로 한 지침이기도 했지만, 너무 튀면 정 맞는다는 내 오래된 경험에서 오는 절제이기도 했다.

부장님께 연립방정식에서 해가 하나도 없거나 무수히 많을 때는 언제인지를 묻는 녀석.

수학을 손에서 놓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며 손사래를 치는 부장님.

치고받고 왔다 갔다.     


“수행평가를 보았던 시험지 채점이 모두 끝났는데, 고민이 있다.

점수란 옆에 확인란은 부모님이 하시는 곳으로 보인다.

그런데 집으로 여러분이 가져가면 다음 날 교실이 절반은 빌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가 감소한다고, 국가 위기라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이 정도 했으면 와글와글 끓어야 한다.

제발 보내지 말아 달라고.

이 냉랭한 반응은 무슨 일?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겠다.

반별로 분위기도 다르고, 반응도 다르다.

내 야심작도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수학과 교과 협의회, 전문적 학습 공동체 활동.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시라는 초청이다.

연수받았던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있다.

나는 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시험문제에 대한 의견과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어느 학교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

성적에 대해 유난히 민감한 부모님들에 대한 걱정도 상당한 부분이다.

나중에는 자기 자식들 이야기.

자식 이야기는 장담해서는 안 된다고 했겠다.

모습이나 상황은 각기 다른데, 자식들의 상황은 왜 그렇게도 같은지?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슬쩍 안심되기도 한다,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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