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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정일병 살리기

2024.04.23. 화

     

세상에 나보다 더 먼저 학교에 왔다고?

효정이는 슬리퍼를 신고 교문으로 나온다.

유승이가 40분 이전에 오면 제 손목을 걸겠단다.

학교에 들어온 이상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면서 옆에 딱 붙어 계속 종알거린다.

“오늘 기초 학력 검사인데요, 선생님이 수학 좀 풀어주실래요?”

“너 수학 잘하잖아?”

“그냥 체면은 지킬 정도예요.

국어와 영어가 문제라니까요. 친해지고 싶은데 자꾸 시비를 걸어요.

읽고 지나가면 가만히 놔두어야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지를 않나 느낌은 또 왜 묻는 것인지?

초등학교 때는 체육이 재미있었거든요.

같이 운동하면서 웃고 친해지고 하는 시간이었어요.

지금은 피구를 주로 하는데, 죽기 살기예요.

규칙도 잘 지키지 않고 잘못 맞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요.”

40분이 되기 전에 맨날 같이 들어가는 유승이가 들어온다.

황급히 손가락으로 입술에 검지를 세우고 눈을 찡긋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손목을 지키고 싶은 모양이다.

다음 주 후문으로 가면 무슨 재미로 아침을 보내나?     


한 달을 예상하고 발을 들인 학교.

단출하게 몇 가지 짐만 들여놨는데.

배가 등에 붙은 치약을 짜면서 세월의 빠름을 느낀다.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을 떠보려 해도 통 말을 듣지 않았다.

절구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던 눈꺼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이 너무 편하게 떠진다.

따뜻해진 날씨 때문일까?

아니 곁에서 온 정성으로 돌봐준 나의 주치의가 정답이다.

이제 왼 입술만 원래 자리로 돌아오면 완치다.   

  

학교에서는 정 일병 구출 작전이 치열하다.

미안한 일이지만, 병가 중인 선생님이 5월은 나오실 수 없는 입장.

공개로 선발을 알려야 한다.

자격요건에 수업 시연을 넣었다는 것은 검증된 선생님을 아이들 곁으로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리라.

두 달을 호흡을 맞추었고, 이제 눈빛만 보아도 그 안의 생각을 볼 수 있는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인사야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고맙다.

기간이 길면 젊은 친구들이 지원할 것이고, 명예 퇴임한 교사는 교육청으로부터 자격도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인데.

짧게 한 달씩 끊어가면 경쟁력이 있다.

진짜로 조마조마한 것은 아니지만,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여건의 학교는 찾기 어렵다.

빌어라도 봐야 할 판이다.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간다.

정해진 사이트로 로그인한다.

아이들은 자기 페드로 정해진 비번을 치고 대기하고 있다.

시험 시작을 클릭해 주면 바로 시험지 화면이 아이들 앞에 나타난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밀고, 당기면서 지문을 읽고 답은 펜으로 체크한다.

화면이 움직이지 않거나, 절반만 보이거나 하면 손을 든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고쳐주냐고?

간이 콩알만 해져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바라는 대로 되는 세상이든가?

결국 복도를 지나가는 선생님을 불러 새로고침을 눌러 해결한다.

너무 빨리 바뀌는 교실 환경.

얼마 남지 않았다,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될 날.     


기념으로 마신 막걸리 맛이 완전 꿀이다.

새로 난 엄나무 순은 엄하게 다스려야 해.       


         

떼쟁이가 된 내 손주     


떼를 써 보았느냐?

울어도 보고

뒹굴어도 보았겠지?

무엇이 제일 잘 물더냐?

강가에 처음 낚시를 펴고 미끼를

끼고 있는 낚시꾼 같은

아가야!     


세상에 맘대로 안 되는 것

제법 많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

맘껏 시도해 봐

지금 아니면 영영

해보지 못할 것들이란다

할아비는 무조건 채원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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