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마케팅,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by 분홍신

렌털로 쓰는 정수기 회사에서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침대 점검을 해준다는 전화를 받은 남편은 생각 없이 그들을 오라고 했다. 공짜가 어디 있으며 할 일이 없어 남의 침대를 점검해 주느냐고 잔소리를 했지만 약속 날짜가 되자 그들이 왔다. 바꾼 지 몇 년 안된 더블침대와 싱글 침대 매트리스를 뒤집어서 체크한 진드기 검사 시트지는 참혹했다.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좀 더 큰 시트지는 새카맣게 변해서 시트지 새거로 한 거 맞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들은 진드기가 이 정도로 심한 집은 처음 봤다면서 여태 아프지 않고 살아왔다는 게 신기하다고, 진드기 천지인데 호흡기질환 없느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서 남편은 근심에 가득 차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당장 매트리스를 바꿔야 하며 무슨 무슨 카드를 새로 만들면 제휴 할인이 되고, 몇 년 할부로 하면 월 만 얼마밖에 안 되며 .... 바로 사인할 서류를 내놓았다.


우리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그들의 말도 찜찜했지만 40년 넘게 에이스 침대 잘 써왔고 바꾼지도 얼마 안 되어 새거나 마찬가지인 매트리스를 버려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멀쩡한 걸 어떻게 버리나, 진짜 진드기가 그렇게 많은가, 볕 좋은 날은 뒤집어서 해바라기도 해주는데. 생각도 못 해본 일이라 며칠 후에 결정하겠다고 하고 그들을 보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꿈인 남편은 당연히 바꾸려니 마음을 먹었고 나는 정수기 점검하는 코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안면을 터온 코디 아줌마는 침대 바꾸고 싶으면 자신한테 사라고, 그들은 단지 정수기 회사 침대를 파는 영업사원들일 뿐이라고 했다. 전화로 내년에 이사 갈 때나 바꾸겠다고 둘러대었더니 그러면 자기네거 안 사도 좋으니 당장 그 매트리스 버리고 싸구려라도 다른 걸로 바꿔서 주무시라고 했다.


얼마 전, 패키지 투어로 갔다 온 백두산 여행에는 세 번의 쇼핑센터 방문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라텍스 매장이었다. 십여 년 전 동남아 여행을 할 때는 늘 라텍스 매장을 둘렀고 일행 중 누군가가 거금을 주고 침대 매트를 사던가, 아무도 안사면 할 수 없이 라텍스 베개라도 몇 개 사서 가이드 얼굴을 펴주었는데 아직도 그런 매장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전에는 없던 라텍스 침대 패드에 라텍스 이불까지 있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 이렇게 건강에 좋은 상품이 있는데 왜 돈을 아끼느냐고 지금 당장 나를 위해 쓰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부추기면서 진드기가 절대 살 수 없는 라텍스 매트와 시트와 이불을 사라고 정신을 쏙 빼놓았다. 우리 집 침대 진드기 검사를 해준 이들의 공포심 조장과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건강하게 사셔야지요. 돈 아껴 두었다가 가져갑니까? 좋은 제품 안 사고 돈을 아끼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한 번 누워봐라, 침대 패드와 이불은 얼마든지 세탁기 돌려서 쓸 수 있다... 비싼 물건은 자주 빨면 안 되는데... 나의 혼잣말에 보조 조선족 아주머니는 바로 대답했다. 일 년 열두 달 안 빨아도 됩니다. 그럼 땀에 전 거 그대로 쓰나요 하하하! 사지도 않으면서 딴 소리 하는 나에게 라텍스가 비싸면 여름에도 차가운 냉이불을 사라고 졸랐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정부의 방침대로 이제 조선족 학교에서는 한글 배울 기회가 없어진다면서 수익금은 조선족 아이들 한글교육에 기부한다고 좋은 일 좀 하라는 것이다.


우리 동네 치과 선생님은 어떻게 하든 자신의 이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분 같았다. 잇몸 염증 치료를 하고 나면 또 괜찮아져서 어영부영 반년이 지나고는 했다. 십 년도 전에 금을 씌운 나의 양쪽 어금니는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내 몸이 지치거나 힘들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널판처럼 욱신욱신하면서 신경세포를 죽여놔서 아픔은 못 느끼지만 뭔가 공중에 떠 있는 불쾌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선뜻 빼지는 않고, .... 쓰는데 까지는 쓰셔야지요.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심각한데 어차피 나중에는 다 발치를 해야 해요.... 그런데 그 언제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남편도 나도 과잉치료를 하지 않는 이 선생님을 믿고 어금니 발치까지 했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자 성질 급한 남편은 검색을 통해 미금역의 임플란트 전문이라는 치과를 찾아냈다. 나도 남편을 따라 치과를 옮겼고 그곳에서는 내 입안을 보자마자 양쪽 다 당장 빼야 한다면서 그날로 견적이 나왔고 꼬박 2년에 걸쳐 임플란트를 했다. 치과 치료를 받는 동안 내 입안은 공사장이 되었다. 단단한 미니 굴삭기가 들어와서 드르럭 달가닥 득득 쓸모없는 바윗돌을 걷어내고 다지고 갈고 마침내 짐승 털 타는 냄새를 풍기며 용접도 하고 ... 예전에는 치석 스케일링하는 것도 어찌나 무서운지 벌벌 떨면서 했는데 지금은 초음파를 이용하여 고통이 훨씬 덜 해졌고 심지어 어금니 이식수술하는 동안 눈부신 불빛 아래 얼굴을 덮고 카우치에 누운 나는 코를 골며 입을 벌린 채 잠이 들고 말았다.

작년 연말, 임플란트 안한 어금니의 잇몸이 부어서 갔더니 잇몸에 염증이 있는데 아마도 크라운 씌운 지 오래되어 충치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잇몸치료를 하고 나니 멀쩡해졌다. 치과에선 크라운을 벗겨 봐야 한다고 다시 오라고 했는데 차일피일하다 보니 반년이 또 지나고 말았다. 예약을 미루고 미루다가 혹시 진짜 충치가 심해져서 치료가 안되면 그것도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할 수 없이 치과에 갔다. 그들도 작정을 했는지 반년 만에 온 나를 앉히더니 크라운 수명이 7-8년이고 10년이면 바꿔야 하는데 나의 경우 이빨의 변색으로 봐서 최소 12년 이상 된 것이고 신경이 죽어서 아픔을 못 느껴 그대로 두면 크라운 씌운 이가 그대로 부러지는 수가 있다고 했다. 역시 공포 마케팅인가, 우리 동네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했을까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신경이 없어진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게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들은 것 같아 하기로 결정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선생님은 굴삭기 아닌 망치와 끌로 크라운을 벗겨내고 용접기로 탄내를 풍기며 충치 치료. 본 뜬다고 입안에 화한 덩어리를 넣고 ..... 아직 멀쩡하고 쓸만했는데 전문가가 하라니 해야지 뭐 속으로만 구시렁거리며 치료가 끝났다.


첨단의 정보와 솔깃한 유혹이 넘쳐나는 세상!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장삿속인지, 얼마나 받아들이고 얼마나 쳐내야 할지? 마주칠 때마다 이게 맞는 소리인가 매번 의심하고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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