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파는 소녀 -리베라 디에고
절반으로 나뉜 빛과 어둠

by 분홍신

화면의 절반을 채운 연미색 칼라 꽃다발, 당당하게 활짝 핀 꽃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 방에 걸고 싶어 세계 명화 감상 모음집에 있는 그림을 오려냈다. 자세히 보니 나머지 절반은 컴컴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망태기 가득 든 꽃을 등에 지려는 소녀와, 혼자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받쳐주는 누군가의 맨발이 있다. 방에 걸기에는 어두운 그림이다.


멕시코의 화가 <리베라 디에고>의 작품으로 민중의 고단한 삶을 그린 <꽃> 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이 화가에 대해 전혀 몰랐다. 온몸을 관통한 교통사고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간, 화가 <프리다 칼로>는 여러 번의 국내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를 보고 그녀가 비둘기같이 예쁜 스물두 살 때, 두 번의 결혼 전력이 있는 마흔두 살의 코끼리 같은 남자, 리베라 디에고와 결혼했으며 이 남자는 멕시코의 정치와 역사, 그리고 민중의 삶을 벽화로 그린 전설적인 화가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화면 위 절반을 차지한 활짝 핀 꽃에 반했으나 나머지 절반의 어둠을 본 후에는 걸기가 망설여졌다. 고통과 어둠만이 가득한 삶이라는 건가? 꽃 파는 행상에게 꽃의 아름다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등에 진 무거운 짐이고, 오늘이 가기 전에 이 꽃을 다 팔아야 한다. 가난한 행상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생전 누릴 수 없는 호사인데, 이 꽃은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삶을 장식하는 소도구가 된다.


드물게 꽃을 산다. 냉랭한 찬바람이 한바탕 지나가고 거리 한 모퉁이에 샛노란 프리지아가 보이면 서둘러 집안에 봄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별것도 아닌데 프리지아 몇 송이로 거실이 환해진다. 꽃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내가 프리지아를 살 때 그 꽃을 파는 이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살 거라고 무심히 지나갔다. 그림 속 꽃 행상은 지금의 우리들과는 또 다른, 삶의 무게에 짓눌린 힘겨운 모습이다. 이들에게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올까? 꽃 망태기를 들어 올려주는 뒤편에 선 사람의 두 손과 발이 묵직하다. 꽃 파는 소녀의 가족일까? 아니면 시장 안의 다른 노점상일까? 꽃에 속한 세계가 화려한 만큼, 등짐을 지려는 소녀의 고개 숙인 모습과 단단하게 끈을 잡은 두 손은 비장하다.


절반으로 나뉜 빛과 어둠 속에 나는 어디에 속할까? 때론 환하게 때론 어둡게 흘러간다. 얼마나 화사하게 밝은지 얼마나 침침하게 어두운지 누가 알까? 산다는 것은 화면 속에 담긴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답게만 봤던 꽃 그림이 보면 볼수록 과연 이들에게 꽃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염려스러운, 차마 방에 걸기에는 머뭇거려지는 그림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삶은 만만치 않다는 것, 별거 아닌 일로 징징대지 말고 묵묵히 등짐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내 등을 미는 것 같다. 선뜻 벽에 걸지도 못하면서 쉽게 눈을 뗄 수도 없게 만드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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