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 전성시대

by 분홍신

신문을 읽다가 눈에 번쩍 띄는 광고를 발견했다. 여태까지 본 적 없는, 그러나 누군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런 회사 광고였다. 건물 관리 전문 기업 - 하수구 막힘, 배관 누수, 빗물 누수...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하수구가 막히거나 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사무소에 전화하거나 동네 만물상, 아니면 단골 설비공사하는 이들에게 맡기는데 가격은 싸지는 않지만 납득이 가는 선에서 청구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은 곳이 있으니 이건 당해본 사람만 분하고 억울할 뿐이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내 손으로 안되는 일이니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신도시가 만들어진 시골 우리 동네 이야기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원주민들은 도청이 들어오면서 자신들이 살던 땅을 내주고 원주민 택지를 분양받아 아름아름 건축업자를 통해 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을 지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에 하자가 나서 A/S를 받고 싶어도 건축업자와는 연락이 안 되는 집이 대부분이었는데 가장 흔한 문제가 하수구 배관이 막히는 것이었다. 배관공을 부르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긴 스프링 같은 쇠줄과 소형 전기발전기 같은 것을 들고 와서 30분 아니면 한나절 막힌 하수구를 뚫는데 출장비 포함 기본 30만 원에서 80만 원까지도 달라고 한다. 주상복합 건물은 1층에 대부분이 식당이 들어오는데 고깃기름이 하수구에 달라붙어 막히는 경우가 많아서 배관공을 종종 부르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달라는 데로 줄 수밖에 없었다.

2,3 층 복층인 우리집도 어찌된일인지 3층베란다 하수구가 막혀 장마 때 한꺼번에 내린 비가 안 빠져 아래층 천장으로 빗물이 쏟아져 난리가 난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하수구 뚫는데 수십만 원의 돈을 써야 했다. 장마를 앞두고 하수구가 또 막혔는지 물 내려가는 게 시원치 않아서 시골에 마늘 캐러 간 김에 미리 배관공을 불렀다. 이제야 알았지만 그 하수구는 처음 집을 지을 때 하수구 입구를 막지 않은 채 벽돌 공사를 해서 벽돌 붙이는 모르타르가 조금씩 떨어져 하수구 구멍으로 떨어졌고 그것들이 그 속에서 굳어버리는 바람에 하수관이 좁아져서 작은 먼지라도 쌓이면 그 지경이 되는 모양이었다. 누수 전문가라는 그 아저씨는 거침없이 쇠줄을 하수구관에 넣고 돌렸고 그 안에 시멘트 같은 게 굳어서 그러니 먼지가 쌓이지 않게 조심해서 쓰는 수밖에 없으며 정 안되면 하수구 옆 바닥에서부터 2층 천장까지 뚫고 하수관을 새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거칠고 무식해 보이긴 했지만 겁 없이 바닥 뚫고 천장까지 뚫어서 내면 된다는 시원한 대답에 우리는 다음부터는 이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밤 11시에 시골집 세입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 먹고 들어와 보니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2층 거실 바닥이 한강이라고. 비도 안 오고 3층도 말짱한데 도대체 천장 어디서 물이 쏟아졌다는 것일까.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시골로 내려간 우리는 다시 그 아저씨를 불렀고 그는 다른 곳에서 공사 중이라면서 저녁에 왔다. 보일러실을 열어보더니 온수가 샌다면서 온수를 잠그자 그때까지 똑똑 떨어지던 물이 멈췄다. 그는 내일 누수탐지기를 가져와서 확인할 것인데, 물이 새는 천장 바로 위 3층 화장실 바닥에 깔린 온수가 새는 것 같다고 화장실 바닥의 타일을 다 뜯어내고 누수 부분을 찾아 새로 연결한 뒤 다시 타일 바닥 공사를 하려면 이틀이 걸리며 백육칠십만 원이 든다고 했다. 상상도 못했던 가격에 나는 입이 딱 벌어졌지만 남편은 일이나 꼼꼼하게 해 달라 했고 원래 이런 일은 인건비가 비싸다며 150만 원으로 깎은 나를 나무랐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는 누수탐지기를 들고 와서 여기저기 대보더니 역시 3층 화장실 바닥이 맞다면서 일단 세면기 아래 타일 세 장을 깨어 뜯어냈다. 바닥에 깔린 축축한 모래를 걷어내고 보니 아뿔싸! 그 밑에 새까만 다듬잇돌만큼이나 단단한 바닥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건 군함 같은 큰 배 방수할 때 쓰는 재질이라 도저히 깰 수가 없으니 사무실로 돌아가서 다른 기계를 가져와야 한다면서 나갔다. 그렇게 단단한 방수 바닥을 깨어내면 원상복구할 수 있을까? 갑자기 걱정이 되어 나는 십 년도 더 지난 건축사무소 사장의 전화번호를 간신히 찾아내어 전화를 했다. 십몇 년 만의 통화에도 사장은 반가워하면서 화장실 타일 바닥을 깼다는 말에 펄쩍 뛰었다. 목조주택이라 자신들은 절대 바닥에 보일러 배관을 깔지 않으며 벽에 배관을 넣었으니 물이 샌 천정쪽이나 벽을 뚫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집을 지을 때 들은 이야기가 목조주택이 오히려 하자 공사하기가 쉽다고 그 부분만 뜯어내고 다시 붙이면 된다고 했었다.

누수 사장은 사무실에 가서 큰 기계를 갖고 올라왔고 나는 화장실 바닥에는 배관이 없다고 알려주었다.

건축한 사장과 누수 사장을 연결해 주었더니 한참 통화 후에 사장은 다시 나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가 목조주택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면서 벽을 뚫는데 날카로운 칼로 디귿자 모양으로 크게 오려내서 벽 안을 보고 다시 고대로 벽지를 붙이면 된다고 했다. 사실 물이 샌 바로 그 지점의 천장을 뚫는 게 가장 좋은데 그 천장 아래에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넣는 큰 싱크장이 가로막고 있어서 감히 뚫을 생각을 못 한 게 결정적 실수였다.

디귿자로 크게 오려 내라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는 화장실 옆방의 벽을 함부로 오려내었고 단열재와 석면 솜으로 꽉 차있는 벽 속은 물기 하나 없이 말짱했다. 다음에는 화장실 변기 물탱크 뒤의 타일 벽을 뜯어내 봐야겠다고 했다. 변기 물탱크가 가려줘서 표도 안 난다고 하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벽에 온수 파이프가 있다니. 타일을 뜯어낸 변기 뒤 벽 속도 말짱했고 그 집 짓느라 애간장을 태웠던 나는 이러다간 온 집안에 구멍 내겠다 싶어서 사장에게 다시 전화했다. 분당 판교에 있는 사장은 지금은 다른 공사 때문에 안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와서 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누수 사장과 보조 아저씨를 일층 식당으로 데려가 그럴 필요도 없는데, 내 돈으로 제육볶음을 시켜주고,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이 집이 일반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고 목조 건물이라서 건축한 사람이 와서 봐야 될 것 같아요. 누수 사장은 대답이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올라오더니 이번엔 천장을 뚫어봐야겠다고 했다. 싱크대 장을 부수고 물이 샌 천장을 뚫고 목수를 불러서 싱크대와 천장을 다시 공사하고 도배해 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사이도 없이, 아니 방법이 없었다. 천장이라도 뚫는 수밖에. 싱크 장을 부수고 물이 샌 천장을 뚫어 보니 바로 거기에 온수 보일러 호스가 있었고 호수를 연결하는 T 자 부분에서 물이 새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떨어진 물이 고여있다가 더이상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배지가 터지면서 물이 쏟아진 것이었다. 뚝딱뚝딱 T자를 교체하고 화장실 바닥 타일과 벽타일을 원상 복귀해놓고 누수 사장의 일은 끝났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바로 목수라는 사람이 왔고 그는 오후 내내 싱크대를 떼어내고 천장 마무리를 했다. 목수 비용은 깎아줘서 40만 원! 그리고 천장과 벽의 도배는 또 사람을 불러야 한다고 했다. 목수 자신이 지금은 바쁘고 나중에 시간 내어 해줄 테니 크게 선심 쓰는 듯 10만 원만 달라고 했다. 도배는 제가 할게요. 참다못한 내가 한 말이다.

그리고 누수 사장은 새지도 않는 화장실 바닥도 깨고 벽타일도 깨고, 마침내 천장을 뚫어 방법을 찾아냈는데 이틀이 아니라 오전 한나절이 걸렸음에도 150에서 20을 뺀 130을 달라고 했다. 누굴 탓하랴. 나의 서툰 협상 방식으로 바가지를 자청해서 썼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난 왜 이렇게 등신 같을까? 이틀도 아니고 한나절만 일했고 목수 비용 40을 또 줘야 했고 도배는 또 따로 해야 했는데 왜 하루치 일당도 못 깎고, 50만 원도 못 깎고, 겨우 10만 원 깎은 120만 원을 주고 말았다. 그들이 부수어놓고 간 싱크장을 치우면서 내 하소연을 들은 이웃들은 말했다. 그러게, 누구 부르기가 무섭다니께, 부르는 게 값이여. 하수구 60만 원 주고 뚫었는데도 또 막혀 불렀더니 80만 원 받아 가더라고..... 등등등

누수든 배관이든 이들은 신도시가 생긴 지 십 년 넘고 슬슬 하자가 나오는 지금이 자신들의 전성기인 줄 확실히 아나보다. 그래도 그렇지. 이게 말이 되나. 한나절 일하고 이틀 치 다 받아 가려 하고 공사에 포함된 목공 도배는 또 따로따로 받아야 한다니. 빨리 건물관리 전문 기업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공정한 가격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내가 깎아봤자 일이십만 원에 불과하지만 이런 인간들에게 당했다는 불쾌감은 두고두고 마음 한구석에 남아 약지 못한 자신을 탓하게 된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블루칼라의 능력을 너무 얕잡아보았는지도 모른다. AI도 절대 대체할 수 없다는 블루칼라의 손기술과 온전히 몸으로만 할 수 있는 작업, 그동안 저평가되어 속으로만 눌렀다가 이제 때를 만나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 깊고도 두툼한 배짱을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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