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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Oct 07. 2022

선생님 제발 울지 마요..^^;

진짜 학교 일로 너무 힘든 선생님이 있다면 이런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딴짓을 해보라>고~!


스스로한테 학교 말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주면 자연스럽게 학교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진다. 학교 밖에서 만나는 별별 사람들과 웃고 화내고 울다 보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쯤은 조금 가볍게 넘기게 된다.


내가 바로 산증인이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과격하게 구는 애들을 보면 솔직히 조금 위축되고 걔네가 무서웠는데 학교 밖에서 진짜 무서운 사람들(?)을 마주치다 보니 애들 정도는 그냥 귀엽게 보이게 되었다.


올해 따라 애들한테 귀여워~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그것의 방증 같다. 얘네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다 나한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ㅋㅋ 그냥 그 정도의 말썽과 폭력성은 나한테 가소롭고 무섭지가 않다. (세상이 더 무섭다)


아무튼 신기하게도 올해가 나한테는 그런 한 해였다. 나의 세계가 확 넓어지고 시야가 트이는 해~!!


그래서 아직 올해가 몇 달 남았지만 올해 한 일을 크게 크게 정리해보았다.


<올해 잘한 일>

1. 브런치를 시작하고 주기적으로 글을 썼다.

2. 종이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출간 모임에 다녔다.

3. 교육청 프로젝트를 몇 개 맡으며 타 학교 선생님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4.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하는 친구를 도와 콘텐츠 제작(유튜브)을 시작했다.

5. 집에서 독서 모임과 친목 모임, 자조 모임을 열었다.


위에 나열한 것 모두 다 그 전에는 도전해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외에도 7. 인스타 시작한 것, 8. 러닝을 시작한 것도 큰 변화다.


원래 나는 SNS는 사회악이라면서 도외시했었는데 말이다. 요즘에는 인스타를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하여 거의 매일 피드를 올리고 있다.


또한 러닝은 100m만 뛰어도 숨차 했었는데 이제는 나름 익숙해져서 한 번에 2~3km는 가볍게 뛰니까 신기하다. 진짜 많이 변했다 나.


무엇보다 요즘엔 어디 가서 선생님 같다는 얘기를 안 들어서 좋다. (선생님 같다고 하는 게 나한테는 왜 욕으로 들리는지 모르겠다.) 뭔가 '교사'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 특유의 이미지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최근에 내가 초면인 사람한테 첫인상 관련해서 들은 말은 "혹시 무속인이세요?"였다. 뭐야)


아무튼 이렇게 내 세계가 넓어지다 보니 애들한테는 화가 안 나서 좋다. 애들한테 너무 과몰입하지 않으니 서로 편안하다. 요즘엔 애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너무 집중하지 않고 크게 크게 보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애가 잔뜩 뿔이 나서 소리 지르고 책상을 내려치면 예전엔 그 행동에 매몰되어 당황하고 화부터 냈는데 요즘엔 침착하게 '무슨 일이야?'부터 물어보는 그런 대처 방식의 차이가 있다.




어제는 전직원 회의 날이었다. 평소엔 교사들만 모여 회의를 했다면 어제는 공무분들부터, 강사분들, 행정실분들까지 모두 모여 회의를 했다.


안건은 '운동회 때 교직원 협조 사항'에 대한 것들이었다.


올해 첫 행사 부장을 맡은 35살 샘이 앞에 나와 주요 사항을 안내해주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떤 선생님이 "학부모를 운동회에 초대할 건지 말 건지는 정해진 건가요?"라고 물어보셨다. 그러자 35살 여자 선생님은 살짝 당황했다.  


그 샘은 멋쩍은 듯이 하하하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 그게.. 교장선생님께서 학부모님들을 초대 안 하고 싶긴 하지만 또 강제로 못 오게 막을 순 없으니 '굳이 안 오셔도 되지만 오시면 안 막을게요. 운동장은 협소하지만 만약 오신다면 안으로 들어오세요.'라고 안내하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갑자기 나이 드신 샘들이 "허~ 참!! 뭐라는 거야" 하면서 웅성대기 시작하셨다. 그러더니 몇 분이 손을 드시며 항의하셨다. "저학년 학부모들은 그렇게 안내하면 연차 써서라도 찾아오셔요. 그럼 우리가 행사 내내 그분들을 다 감당해야 하는데 지침을 왜 이렇게 애매하게 줘요?", "학교 차원에서 안내 문구를 통일해줘야죠, 이번에도 선생님들이 대충 알아서 안내하라고 그러면 어떡해요?"


나 같은 짬 낮은 샘들은 다 가만히 있었고 고경력 샘들이 이렇게 불만을 표출하시니 35살 여자 선생님은 점점 멘털이 나가시는 게 눈에 보였다.


(사실 나이 드신 샘들이 왜 화나시는지 이해는 다. 항상 선생님들한테 책임을 넘기고 교장 교감은 애매하게 지침 내려주면서 책임 소재에서 빠져나가는 이런 형국, 신물 나실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분노의 화살이 35살 여자 선생님한테 갔다는 것이다. 그 샘은 웅얼웅얼하면서 "아.. 제가 교장선생님께 다시 의중을 여쭤볼게요. 저 사실 잘 몰라요 ㅠㅠ"라고 했다.


그러자 화룡점정으로 어떤 샘이 말씀하셨다.


자기가 담당인데 모른다고 하면 끝이야?^^




그러자 이 상황에 대해 연락받고 오신 교무부장님이 마이크를 넘겨받아 상황을 정리하셨다. "선생님들, 지침이 애매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다시 회의를 통해 교장선생님의 의중을 분명히 전달받고 재안내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옆에 멀뚱히 서있던 35살 여자 선생님이 갑자기 뒤돌아서 울기 시작하셨다.


잉????


아니 샘들이 뭐라 뭐라 지적한 건 맞긴 하는데 울 정도였나...^^; 평소 애들한테 엄청 고압적으로 대하고 말투도 거칠게 하시는 분이 여기에선 조금 싫은 소리 들었다고 바로 우시는 걸 보니 조금 황당했다.


저 정도 쓴소리 들었다고 울면 어떡하나.. ㅠㅠ


그러나 눈물은 참 위대한 게 그 샘이 그렇게 뒤돌아 울자마자 샘들이 다 같이 "아이고~~^^"하면서 엄청 달래주고 토닥토닥거려주셨다. 분위기가 한 방에 반전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순간 데자뷔처럼 내 신규교사 때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 갑자기 부장님한테 혼이 나고 당황해서 울던 내게 부장님은 엄청 차갑게 말씀하셨다. "네가 뭘 잘했다고 우니? 우는 걸로 상황 무마하려 하지 마."


나는 그 일 이후로 학교에선 절대 안 운다. 울어도 화장실에서 숨어서 울거나 집에 와서 울지 샘들 앞에선 절대 안 운다. 오죽하면 그렇게 날 괴롭히던 교장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와~ 내가 이렇게 갈궈도 안 우네. 진짜 너도 독하다 독해~


상황을 우는 것으로 반전시키는 것이 습관화되지 않으니 좀 더 차분하게 대처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위로는 못 받음)


아무튼 선생님, 제발 울지 마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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