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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Nov 07. 2022

익명으로 선생님을 평가하는 게 맞나?

Feat.교원능력개발평가

저번 주였다. 힘든 주말을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울적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방송으로 교원능력개발평가 안내를 할 예정이니 각 교실에서 tv를 켜라고 했다.


'후... 교원능력개발평가 안내를 하는구나....'


티브이를 켰더니 교감선생님이 나왔다. 교감선생님은 당신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교원능력개발평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뭐... 매년 해왔던 거니까 별생각 없이 함께 방송을 들었는데 방송을 들을수록 뭔가 얼굴이 화끈화끈해졌다.


교감선생님이 방송을 시작하시면서 애들한테 질문하셨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은 교원능력개발평가가 뭔지 아시나요?"


그러자 애들이 교실에서 "선생님을 평가하는 거요~"라고 대답했다.


(헉... 너무 노골적인 표현 같아..)


교감 선생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선생님의 생활지도와 학습지도에 대해 평가하는 겁니다.



뭐랄까 왜 이렇게 민망하지..?


애들이 그런 내 표정을 읽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럴 땐 마스크가 참 효녀이다)


교탁이 티브이 밑에 있어서 애들이 티브이를 보면 자연스레 선생님도 시야에 들어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표정관리에 신경을 썼다.


(마치 '나는 아무렇지 않아'라는 느낌으로 일하는 척했다.)


평가 대상인 나를 맨 앞에 앉혀놓고 애들이 교감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이 상황은 내게 조금 괴로운 일이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나한테 그동안 별로 좋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교감선생님께서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솔직하게 적습니다만, 이름은 밝히지 마세요.




물론 이 말씀에 덧붙여 공정하고 올바르게 적으라고 하셨지만 과연 그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익명 평가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이 평가 대상의 반응에 크게 개의치 않고, 마구잡이로 평가할 수 있는데..


(꼭 소수의 몇 명은 인신공격을 하거나 과격한 표현을 적는 경우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를 받아보는 시즌에는 꼭 상처를 받았다. 99%는 정말 내게 따뜻하고 응원해주는 말을 써주었지만 1%가 문제였다.


건강한 지적이나 비판이 아닌 그냥 욕하고 헐뜯는 글이 1~2개씩 있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그냥 맘에 안 듦' <- 이거 있었고


'예쁜척하지 마세요' <- 이거 있었다.


(더 심한 것도 있었지만 선택적 기억상실증으로 모두 잊어버려서 다행이다.)


*심지어 '예쁜 척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던 연도에는 내가 '탈코르셋'에 빠져서 맨얼굴에 편한 옷을 입고 다니던 시기였다..(꾸밈 노동을 하지 말자는 신념으로 살던 해였는데..?)


아무튼 그냥 면전에서는 못할 말을 익명이니까 쉽게 써낸 것 같은데 나는 99%의 좋은 말과 칭찬, 격려글보다 그 1% 때문에 힘든 하반기를 보내곤 했다.


'우리 반 애들의 이 착한 얼굴들 속에 과연 누가 이런 말을 쓴 걸까?'


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마냥 편안하지가 않았다. 항상 '이중에 누가 그런 거지..ㅠㅠ'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애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애정이 깨어진다고 해야 하나? 특히나 신규교사 때는 더더욱 그런 말에 상처받아 열정이 확 사그라들곤 했다.


괜히 뭔가 더 시도해보려다가도 '이래 봤자 어차피 욕먹을 텐데 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교과서로 딱 할 것만 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같이 동학년 했던, 내가 지금도 진짜 싫어하는 부장님이 떠오른다.


그 부장님은 나보고 '무조건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 꼼꼼히 다 읽어. 신규교사는 욕을 좀 먹어야 발전하지.'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방과 후 우리 교실까지 오셔서 내가 교원능력개발평가 오픈하고 읽는 걸 눈으로 직접 체크하고 가셨다.


가뜩이나 신규교사라 마음속에 크고 작은 상처가 많던 시절.. 상처에 생채기 나는 것을 보고 싶으셨던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교감선생님께서 '선생님을 익명으로 평가합니다'하는데 이게 맞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고 분노가 일었다.


요즈음 연예뉴스에서는 댓글을 아예 못 달게 막아놨다.


그러나 교사는 왜 자신에 대해 누군가가 익명으로 필터링 없이 평가한 글을 무차별적으로 봐야 할까?


누군가를 세워놓고 '우리가 널 익명으로 평가할게. 읽어.'라고 하는 것은 폭력 아닌가? 99퍼센트가 좋게 써줘도 1퍼센트가 쓴 비난글 때문에 트라우마처럼 상처가 남는데 진짜 폭력적이다.


건강한 비판이라면 이름을 밝히고서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필터링 담당관(또는 AI)이라도 새로 뽑아서 무차별적인 비난글인 경우엔 좀 블라인드 한 다음에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아픔 없이 성장하는 사람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은 나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되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인신공격과 비난글을 사람의 영혼을 부순다.


교원능력개발평가 시즌이라 솔직한 마음을 브런치에라도 한 번 적어보았다.


사실 내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밖에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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