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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Jul 02. 2023

한 대 맞을 생각으로 달려들려고 했지 뭐

10년 전 교생실습 같이 했던 언니가 우리 학교로 전보 왔다.


춥디 추웠던 올해 2월 말, 연구실에서 전보 온 선생님들 소개를 듣다가 이 언니를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언니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스타일 때문이었다.


예전엔 동글동글 귀여운 느낌이었는데 10년 만에 만난 언니는 짧은 숏컷에 뭔가 강인한 느낌의 여성이 되어 있었다. (완전 멋져.... bb)


'언니는 날 기억할까? 뭔가 너무 달라져서 친한 척하기가 좀 어색하네'


전보 인사가 끝난 후 사람들이 흩어지는 분주한 시점, 언니한테 친한척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먼저 다가갔다.


"언니.... 혹시 나 기억해..?? 나 라희야..!!"


OMG


언니는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야!!! 당연히 기억하지 ㅋㅋㅋㅋㅋ 그리고 나 얼마 전에 너 인스타에서 봄 ㅋㅋㅋ 너 요즘 아주 바쁘더라?? ㅋㅋ"


아.... 그러고 보니 나 인스타랑 유튜브 하지...


(은근 교사나 교대생분들 중에 내 채널을 한 번 정도는? 보신 분들이 많으시다)


"하핫....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오...언니 방가워 진짜!"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니 너무너무 반가웠고 무엇보다 언니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더 좋았다. (강인, 시크, 굳건... 뭔가 유려하게 곧은 대나무 같은 느낌)


아쉽게도 언니랑 학년 배정이 다르게 나서 동학년이 될 순 없었지만 가끔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끔 퇴근하다가 마주치면 우린 역까지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언니 반에는 내가 재작년에 가르쳤던 애가 있어서 그 애 얘기를 주로 한다.)


며칠 전도 퇴근하면서 학교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우연히 언니랑 마주쳤다.


순식간에 올라가는 반가움 지수 1000%!!


솔직히 사람한테는 이런 부류가 있지 않나.

1. 친한데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친구
2. 친하지 않아도 인간적으로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


언니는 후자다.


막 자주 보고 친구같이 막역하진 않지만 그냥 너무 좋다. 그저 무한 애정.

언니가 내 타입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강직하고 감정 loss가 별로 없는 사람 너무 좋아함)


"와우 온닝~~~~~(자동으로 혀가 꼬부라짐) 요즘 잘 지내~~??? 오랜만에 같이 집 가네 히히"

"그르게. 니는 잘 지내냐?"


하하 호호 웃으며 집에 가는데 우리 앞에 술 취한 듯 몸을 비틀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얼핏 봐도 100kg이 넘어 보이는 거구에 옷은 거적때기같이 낡고 여기저기 찢어져있었다. (도망챠...)


남자는 비틀비틀 대며 사람들한테 실없는 말을 걸고 있었고 사람들은 못 본척하며 급하게 자리를 뜨고 있었다.


언니랑 대화를 하면서 그 남자를 곁눈질로 본 뒤 '헉 피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찰나였다.


그 남자가 우리 학교 아이들로 추정되는 꼬맹이들한테 다가가는 게 보였다.


남자는 초등 2~3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들 무리에 다가가더니 웃으면서 뭐라 뭐라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여자애들은 남자가 신기한 듯? 무서운 듯?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안돼;;;;;;;;도망쳐;;;;;)


그 순간,

언니가 갑자기 그 광경을 보더니 앞으로 튀어나가려고 했다.


팔은 가드하듯 올리고 공격자세를 취한 상태였다.


순식간이었다.


"언니...?"


언니는 얘기했다.


"쉿. 저 남자가 애들한테 해코지하면 바로 달려갈 거야."


언니는 그 남자와 아이들을 주시하며 빠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무서웠지만 언니를 따라 그쪽을 향해 가게 되었다.


막 다가가던 중 남자는 아이들을 지나쳐 우리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스쳐 지나갈 때 이는 바람에서는 뜨뜻한 악취가 진동을 했다.  


아이들은 다시 깔깔대고 웃으며 가던 길로 가기 시작했다.


"휴~애들한테 더 이상 안 다가가서 다행이다. 완전 깜짝 놀랐네.. 언니도 놀랐지?"


나는 그제야 안심을 하며 언니를 쳐다봤다. 언니는 천천히 공격태세를 풀며 말했다.


"다행이네. 나 한 대 맞을 각오로 달려들려고 했어."


언니..... 왜 이렇게 멋져...?


"언니 ㅠㅠ 진짜 멋지고 대단해.. 완전 참 교사야... 그런데 언니 그러다 다치면 어떡해 ㅠㅠ"


언니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까짓 거 몇 대 맞더라도 애들부터 구해야지."


와...........................................................


이 언니 짱이다.

이 언니 참 교사다.

이 언니 사랑해.


언니를 보며 존경심이 든 순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언니가 학교에 있는 한, 공교육의 미래는 든든하구나 생각했다.


언니 짱!!!!!!!!!!!!!!!!!!!!!!!!!!!!!!!!!!!!!!!!!!!!!!!!!!!!!!!!!!!!!!!!!!!!!! 완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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