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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어차피 결과는 좋다.

내려 놓자. 긍정하자. 부정하든 긍정하든 그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by Eaglecs

최초 작성 2022. 4. 21. / 2024. 04. 12 보완 정정



들어가는 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의 종류가 있다. 어떤 분야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데 굳이 규정하자면 인간이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법정 스님의 책을 좋아하고,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책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책이나 심리학 관련 서적을 좋아한다. 물론 그보다 더 오래되었고 고리타분하기까지 한 고전도 좋아한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채근담, 역경, 장자, 노자 등과 같은 고전계의 골동품들이 내가 애정하는 책들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말라. 위 책들은 모두 대학교 4학년때 본 것이고 그후에도 계속 생각날 때마다 보고 있는 책들이다. 즉, 난 20대 때부터 고리타분했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책들을 내가 감히 다 평가하고 설명할 수 없지만, 대충 올바른 삶의 자세,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등과 같은 짧은 우리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그런 내용을 좋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나의 삶을 과연 제대로 바르게 살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여전히 서툴기 때문에 그들을 더 잘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해서 그런 책들을 주로 접해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데이비드 호킨스라는 분의 ‘놓아 버림’이라는 책을 본 후에 떠오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간 결과물이다. 구상이 아닌 추상을 다루기 때문에 역시 지루하고 따분한 내용이다. 여러분들도 나의 지루하고 따분한 문체에 대하여 익숙해졌길 바란다. 아무리 읽어도 익숙해 지지 않으면 ‘내려 놓으면’ 된다. 나의 문장이 흥미와 재미 그리고 긴장과 흥분을 줄 것이라는 기대 자체를 ‘내려 놓으면’ 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이게 뭐냐고? 그럼 뭐하러 이 글을 읽냐고?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하는가. 본인이 본인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서 다양한 탐색을 하다가 이곳에 머문 것이 아닌가. 그러면 이 글을 읽는 선택은 본인이 한 것이지 내가 초대한 것은 아니다. 물론 내가 덫을 놓긴 했다. 그러나 세게 꽉 다리를 물어 버리는 잔혹한 덫이 아니다. 나의 덫, 즉 나의 문장은 평이하고 느슨하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자유롭게 이곳을 빠져나갈 선택권이 여전히 존재한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그러나 약간 궁금함을 느꼈다면 조금만 더 읽어보면 어떨까. 5분이면 된다. 부디 나의 초대를 거절하지 말아 달라.



본문


'내 욕구는 우주가 자연적으로 충족시켜 준다는 것을 확신하면, 나의 모든 행위가 자동적으로 사랑하는 일이 된다'.


데이비드 호킨스가 쓴 '놓아 버림'이라는 책의 중간 정도에 나오는 말이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내용으로 꽉 차있는 이 책은 벌써 5회째 읽고 있다. 최근 읽은 바딤 젤란트의 Reality transurfing 관련 4권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간혹가다가 어... 좀 다른데? 하는 내용이 나오다가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또 다시 안심을 하곤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떤 면에서 욕구 혹은 욕망으로 차 있다. 희망, 갈구, 기대와 같은 단어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냥 욕구 혹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대표로 빌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딱 꼬집어서 욕구(욕망)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충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회사에 출근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일단 나는 회사에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무조건 나온다.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욕구는 아니고, 어떤 소속감,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곳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에(정확히는 속박되기로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 자동으로 당겨지는 애완견 목걸이를 내가 하고 있고 회사에서 그 줄을 쭉 하고 잡아 당기기라도 하듯이 내 몸은 자동으로 회사로 향한다. 물론 머리 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단단히 마취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 와서 개인적인 일들도 하고 회사 일도 한다. 난 회사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낸다. 통상 06시 전후로 내 방에 와서 앉게 되니 17시 30분 정시 퇴근일 경우 약 11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낸다. 실무진이라면 하루 종일 최소한 8시간은 다양한 업무 관련 사항들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손을 놀리겠지만, 난 실무진이 아니라 나름 관리직에 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물론 중요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역시 바삐 움직이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총 11~12 시간은 내게 적지 않은 시간이다. 아니 상당히 긴 시간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약간 늦은 6시 30분에 출근하였고 8시 30분까지 약 2시간 동안 일과 독서를 병행하였다. 나의 독서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보는 것이 아니다. 회사 업무에 관련된 내용(반도체, 경영, 자기 계발, 등)이 한 영역이고 또 하나의 축은 리더십 및 인문학 관련 분야이다. 이 모든 분야 중에서 내가 관리자나 사원들에게 권하는 영역은 후자쪽이다. 전자인 업무 관련된 내용은 억지로라도 보게되거나 공부를 하기도 하는데 후자, 특히 인문학 관련된 분야는 찾아서 하지 않으면 소홀히 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조직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는 인문학적 이해가 많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갖고 있어서 그런류의 책들을 권하곤 한다.

아무튼 본격 업무 시간이 시작되기 전인 08시 30분까지 2시간 중 일은 약 20분 정도이고 나머지 1시간 정도는 독서, 30분 정도는 인터넷에서 정보 검색(50% 정도는 시간 낭비다), 그리고 남은 10분은 화장실 다녀오고 내가 마실 커피를 준비하는데 쓴 것 같다. 그리고 8시 30분에서 다시 9시 30분까지 일과 독서를 병행하였다. 9시 30분부터 10시 5분까지는 관리자 면담을 하였고, 그 후 지금까지 약 1시간 20여분 동안 역시 일과 독서를 병행하고 있다. 내가 대응해야 할 일이 언제나 쉼없이 답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평소에는 그냥 책을 보고 있다가, 처리해야 할 메일이 들어오거나 하면 바로 내용을 확인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방식이다.

오후엔 점심 식사 후 남는 휴식 시간에 아마도 경제나 Tech 유트브를 약 20~30분 정도 볼 것이고, 또 책도 볼 것이다. 그리고 13시부터 14시까지 50% 비율로 일과 독서를 할 것같고, 2시~3시 사이엔 화상 미팅이 있으니 미팅에 참석하여 업무를 볼 것이다. 그리고 3시부터 4시 30분은 고객 미팅이 있는데, 건강(기침이 자주 남) 문제로 참석 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그럼 결국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은 일과 독서를 겸하면서 시간을 사용할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회사에서 머무는 약 11시간 동안 약 4시간 정도 독서, 업무는 약 5시간~6시간, 나머지는 식사 등으로 나의 회사에서의 오늘 하루가 채워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꾸준히 자리를 지키면서 책도 보고 일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소속된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 속에서 욕구나 욕망을 찾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런 일련의 행위를 했냐를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책을 많이 보는 이유는 현실과 삶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항들을 좀 더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24시간 내내 일어난다 그때 마다 혼란에 빠질 수 없고, 어차피 부조리한 상황들도 거기에 많이 포함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들에 대한 나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어떤 추가적인 앎이 필요하다. 그래서 꾸준히 책을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속에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을 하는 이유는 내게 부여된 책무를 모자람 없이 완수하여 인정을 받고 또 현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욕망이 기저에 역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상황인 것이다. 나는 그저 평온하게 하루를 보내고, 나름 책임과 의무를 하면서 내 시간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저에는 욕망이 단단히 깔려있는 것이다. 거칠고 날카로운 성격의 욕망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뭔가를 갈구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욕망 하는 순간 그 욕망의 대상을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데이비드 호킨스는 말한다. 왜냐하면 뭔가 욕망 한다는 것은 그것의 부재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미 갖고 있다면 그걸 욕망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뭔가 욕망한다는 것은 그것이 없거나 절대 필요량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궤변인듯 하지만 맞는 것 같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더 갖고자 하는 것은 욕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욕심이 더 정확한 단어가 않을까?

놓아버림.png 여러분께 일독을 권한다.

내가 하루에 내보이는 욕망 2가지, 즉, ‘책을 보는 이유’는 내 삶과 내 주위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해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내가 여전히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며, ‘일을 하는 이유’는 회사에서 나름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목적으로 그래도 일은 어느 정도 하려고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역시 미미한 불안감이 내 속에 여전히 잔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 두 가지에 대하여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욕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확신의 부족이 그리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완벽한 내려 놓음, 완벽한 항복, 즉, 완벽한 Surrender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자기 믿음, 자기 의지라고 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이 그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의 욕망의 수준 혹은 강도는 하루 하루 옅어져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전히 욕망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를 가두고 있는 욕망의 덫은 날이 가면 갈수록 헐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


삶은 욕구와 욕망으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 대하여 말이다. 그리고 사실 ‘놓아 버림 혹은 내려 놓음’도 욕망이다. 정말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최대의 욕구요 욕망이 바로 내려 놓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려 놓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면 정작 내려 놓을 수가 없는 역설이 성립하게 된다. 그래서 초연함에 이르기 위하여 내려 놓으면 좋고 아니어도 좋다는 수용의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인 내가 최고의 수준인 내려 놓음의 단계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지 그 근처로 한 발짝씩 이동하는 것에라도 만족한다면, 하루하루 조금씩 더 내려 놓지 않을까 하며, 이것이 내 수준에 맞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런 생각을 나 스스로에게 계속 이야기해왔고 사실 매사를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어차피 삶은 그 길이 어디로 갈지 길이 나있고, 그 길은 내게 좋은 쪽으로 나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내게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좋다는 명제가 성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었고 그 결과 내가 여기에 앉아서 이렇게 내 영혼의 생각을 탐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역시 좋다. 내가 의도한 결과 지금 이런 상황에 도달한 것이니 말이다.

굳이 좀 더 원하고 욕망한다면, 좀 더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 물론 나 자신 부터 사랑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니 나를 귀하게 여기고 나를 사랑하자. 그래야 넘치는 사랑을 베풀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사랑, 내일도 사랑. 잊지 말고 매 순간을 사랑하는 삶으로 채워가자. 내려 놓기 혹은 놓아 버림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사랑 타령을 했다. 왜냐하면 사랑, 즉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은 나의 관심과 애정을 내면으로 비추는 작업이고 이것은 내면에서 먼저 중요성을 찾겠다는 시도이다. 내면에서 중요성을 찾겠다는 것은 그 반대쪽인 외면 혹은 외부의 중요성은 그 다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욕구와 욕망은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외면으로 향했을때 느끼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과 마음 그리고 생각을 우리 내면으로 돌리면 내려 놓을 것, 놓아 버릴 것의 절대량이 줄어든다. 따라서 나를 사랑하는 내면의 작업에 몰두하면 몰두한 만큼 외면으로 항햐는 나의 욕구와 욕망은 줄어들게 되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들을 좀 더 손쉽게 놓아 버리고 내려 놓을 수 있게 된다. 여러분들은 동의 할지모르겠는데, 이제까지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상당부분 맞는 것 같다. 위 줄쳐 놓은 문장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면서 한번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고 곰곰히 생각해서 답을 얻어 보기를 권한다. 서두의 '들어가는 글'에서 여러분께 5분만 달라고 했었다. 이젠 1분만 더 써보시길 권한다. 이미 5분을 썼는데 조금만 더 써 봐라. 이런 야바위같은 접근 방법을 통해서라도 여러분께 권하고 싶은 내용이다.






요약과 감상 :


요약 보다는 짧은 감상평을 적겠다. 브런내가 치에 글을 쓰는 목적이 있었다. 혹은 나를 이곳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퇴직 후에 어디에서라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진 이제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과거에 써 놓았던 글들이 내 눈에는 그리 나빠보이지 않아서 조심스레 내보이고 싶었다.

내 글을 보고 일부 친절한 분들이 칭찬을 해 준 경우가 적지 않아서 용기도 생겼고 더 칭잔받고 싶었다.

'작가'라고 불려지는 것도 참 멋져 보여서 계속 그렇게 불리우고 싶었다.


모두 나의 욕망이다. 그러나 욕망이라는 단어는 좀 과한 것을 억지로 기대한다는 이미지가 느껴진다. 욕구 또한 마찬가지이다. 위에 기록한 몇 가지 나의 브런치에서의 글쓰기 목적은 욕망이나 욕구 보다는 희망과 기대 정도로 좀 순화된 이미지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욕구, 욕망, 헛된 기대는 내려 놓되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몇 가지에 대하여는 옅은 희망과 기대 정도는 그렇게까지 '확' 내려 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애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있는가. 이정도는 내려 놓지 않아도 된다고 자위하고 싶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작은 기대와 희망을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그것을 추구하고 즐기길 바란다. 그정도는 절대로 과한 것이아니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인데 여러분도 기꺼이 동의 하리라 믿는다. 오늘 내게 내어준 6분이 여러분게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제공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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