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의 6주간 글쓰기 후기
100편의 짧은 글쓰기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내 나름의 작은 의미 혹은 나의 가치관에 따른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그에 대한 공감을 얻기 위함'이었다. 4월 9일에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면서'라는 제목으로 첫 글을 썼다. 5월 19일인 오늘 꼭 41일만에 백개의 글을 마쳤다. 이 글은 101번째 글이다. 41일 동안 대략 하루에 2.5개씩 작성한 꼴이다. 아무리 퇴직 후 시간이 남아 돈다고 해도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려니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게다가 책상에 서너시간씩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지루함도 없지는 않았다.
간혹 몇 분 밖에는 읽지 않을 글이 될 가능성이 높을 텐데 굳이 여기서 이럴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움직이고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끈질기게 써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30년간 매여있던 목줄을 끊어낸 후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유를 즐길줄 모르기 때문에 어딘가에 속하여 뭐라도 계속해야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이러고 있었을 수도 있다.
특히 초반에는 퇴직후 연이어 잡힌 술자리가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4~5개의 설익은 글들을 올리면서 유치한 개수 늘리기에 집중했었다. 서가에 꽃힌 책처럼 하나 하나 글이 쌓여가는 것을 보는 맛도 없지 않았다. 오래 전에 써 놓았던 것을 손봐서 다시 올린 글도 있었지만 아무튼 뭐 그리 이야기 할 것이 많은지 초반에 비교적 많은 글들을 썼었다. 그리고 한달 좀 넘어서부터는 하루에 2개의 글을 쓰는 것으로 페이스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에 두 편의 글도 나같은 초심자에겐 큰 과제였다. 내 글속에서 재미나 배울 점을 찾기도 쉽지 않고, 그나마 어렵게 잡은 주제의 핵심을 깔끔한 문장으로 전달하는데 서툴다 보니 글은 주절주절 길어지기만 했다. 편당 최소한 3천 ~ 4천자 정도라서 내가 쓴 글을 내가 다시 보기도 싫은 적도 많았다. 내가 봐도 재미없고 지루한데 그런 글들을 잠시라도 접한 분들은 더할 것이 아닌가?
물론 감사하게도 내가 무슨 글을 올려도 봐 주시는 몇 분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내가 서툴게 일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여 가끔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내가 가진 것 밖에는 내 보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 능력으로는 아직 그런 미숙한 글쓰기에서 벋어나기가 너무 어렵다. 그렇게 무슨 글을 써야 할지도 감을 잡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하루 하루 글을 써가다 보니 내가 나의 첫 글에서 언급한 '내가 쓰려는 소주제'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생각했던 소주제는 아래와 같다.
1. 사회인(직장인)으로서 겪은 다양한 경험의 공유
2. 비록 좁은 나의 관점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삶의 지혜'
3. 사회 생활에 필요한 조언 (1번과 유사함)
4.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평
5. 다양한 심리적 상태에 대한 해석과 제안
6. 개인사(인생사) 및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풀어본 삶
이렇게 나는 내가 생각한 주제에 맞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고 오늘 상징적인 100개의 글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내 나름의 작은 의미 혹은 나의 가치관에 따른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그에 대한 공감을 얻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진행 속도는 달팽이처럼 매우 더딜 것이다. 타인의 공감을 얻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공감과 지원을 얻기도 힘든 마당에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의 공감을 얻기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심지어 대면하여 몸짓과 목소리를 통하여 감정을 현장감있게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평면의 공간에서 지루한 활자를 통하여 무언가를 전달하고 그에 대한 공감을 얻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술과 천재적 능력이 결합할 때에라야만 가능할 것 같다. 감히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한 글쓰기를 통하여 공감을 얻겠다는 것부터가 큰 욕심이다. 그래서 나는 '단 한명이라도 공감한다면 나의 글쓰기는 성공' 이라고 밑밥을 깔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먼저 발행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친절한 한 분이 내 글에 공감하고 응원을 해 주기도 했고 몇 분은 공감의 댓글을 친절하게 달아 주시기도 했다. 따라서 나의 글쓰기는 나의 관점에서는 일단 '성공'이다. 성공은 참 쉬운것 같다. 기대치만 낮추면 되니 말이다.
나의 글 그리고 '나'는 나아졌나?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면 나의 글은 약간이지만 그래도 나아졌다. '나아지다'는 어떤일 혹은 상태가 좋아진 것을 의미한다. 아쉬운 것은 나아진 부분이 오탈자가 약간 줄었다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글과 관련된 시각 자료를 붙여서 지루한 글에 리듬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이것도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통하여 글의 지루함을 줄이려는 목적 자체가 불순하다. 글이 재미있고 유익해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그런 점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니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맛없게 끓인 김치찌게에 라면 스프를 넣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글의 중간 중간에 간혹 붙여 놓은 그림들은 그래서 라면 말고 다른 요리에 실패했을 경우 지원군으로 최후에 투입되는 라면 스프랑 기능이 비슷하다.
글은 그렇다 쳐도 그러면 '나'라는 사람은 글쓰기를 통하여 나아졌나? 글쎄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생각의 속도를 좀 더 조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의 속도가 차분해 지면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글을 쓰게되면 많은 생각을 하게되고 좀더 깊어진 생각에 따라서 판단을 하고 그 이후에 행위가 이어지게 된다. 글을 쓴다는 작업은 인간 사고 행위가 생긴 다음에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후공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통하여 섣부른 판단을 하는 빈도가 약간은 줄어든 것 같다. 나는 매우 급한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많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 때문에 불편한 상황을 꽤 초래했었다. 거의 모두 내가 생각을 하는 동시에 입으로 내 생각을 여과없이 토해 낼 경우 예외없이 나는 별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했고 나중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곤 했다. 보통 그런 대가는 달지 않다.
물론 여전히 나는 성격이 급하다. 제대로 된 대화 혹은 논쟁의 상대를 만나면 절제하지 않고 말을 마구 쏟아내는 편이기도 하다. 아마도 1,000편의 글을 쓰면 좀 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성품 그리고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몸과 정신에 깊게 배인 성격 혹은 성향과 같은 것이 글 몇편 썼다고 크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일 매일 조금씩 나아지도록 중단하지 않고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이 그런 상황을 1%씩이라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 성격은 급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꾸준히 지속한다면 그 단계가 좀 내려갈 것 같다. 초초초급한 성격에서 그냥 적당한 급한 성격만 되도 나는 만족한다.
'나'의 재 발견 작업
100편의 사소한 글쓰기를 마친후에 나는 아직도 내게 남은 에너지가 적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약간 성실하기도 한 것 같아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기도 하다. 이것은 내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다. 아무튼, 난 경험주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100편의 글쓰기를 시험한 후에 그게 가능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게 남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좀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전히 힘이 있고 여전히 나름의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으며 그리고 꾸준히 뭔가를 시행하면서 이룰 수 있는 에너지가 솟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나는 제일 큰 만족을 하고 있다. 약간이긴 하지만 잃었던 혹은 있는데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감과 자존감을 다시 찾은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확인한 것이 나의 글이 향후에 더 풍성해지고 읽을 만한 것들이 된다는 보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글쓰기는 아쉽게도 여전히 매우 이기적이어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타인이 나의 글을 읽으면서 최소한 시간의 낭비라는 억울한 느낌이 들지 않으려면 뭔가 배울 점이 있어야 하고 그런 점이 없다면 최소한 약간의 재미라도 줘야 한다. 이 부분이 내게 남은 큰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나의 글에 배울점이 없어도 최소한 한 가지의 배울 점은 있다. 아무 글이나 봐서는 안된다는 교훈말이다. 비록 '아무 글'로 타인에게 인식이 될지라도 그 글들은 내가 밖으로 내 보일 수 있는 비교적 최선의 노력과 사유의 결과임을 이해 바란다.
나의 '소수 정예' 독자에게
적어도 나의 글을 읽어 주시는 몇 분의 내 독자님들은 내겐 '소수 정예'이다. 능력이 우수하고 일을 잘 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을 일컬어 소수정예라고 한다. 그리고 비록 소수이지만 아주 소중한 사람들도 소수 정예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소수 정예이신 그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지루하고 건조한 나의 글을 끈기 읽게 읽어 주시는 친절함과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드린다. 내가 겸손해서 나의 글이 지루하고 건조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내 글이라도 지루하고 건조한 내용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도 양심은 있다. 가끔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는 문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태반이 건조하다. 신문 사설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은 그분들이 워낙 읽기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보는 것을 즐길 수도 있다. 그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나도 책을 즐겨 보는 것이 아닌가? 나의 백번째 글을 마치고 이 글을 101번째로 썼다.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관점에서 내 이야기를 기술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크게 배울점은 없을 것 같다.
다만, 굳이 하나 찾자면, 나같은 글쓰기의 초심자들에겐 조금 참고할 점이 있을 것 같다. 일단 많이 써보는 것이다. 많이 써 보면 좀 더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연습을 많이 하면 운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의 일백번의 글쓰기는 그런 연습의 과정일 수 있다. 아무리 많이 연습을 해도 프로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따라서 그런 욕심은 과감하게 버리고 비록 지루하긴 하지만 그 과정을 견디면서 많은 글을 써보기 바란다. 적어도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나처럼 아주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 내가 글쓰기를 통해서 나아진 점은 앞서 밝혔듯이 '약간 생각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번의 글쓰기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 이것 정도라면 약간 손해본 느낌이긴 한데, 딱히 자본투자가 된 것은 아니니 억울함은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