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닮은 와인

향기가 나는 삶

by Eaglecs

와인의 종류는 너무도 많아서 아마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와인을 좋아해서 가끔 와인 샵을 방문하면 그새 듣도 보도 못한 와인들이 또 빼곡히 진열대를 채우고 있곤 하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 누아르,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리슬링 등 다양한 포도 품종을 가지고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그 종류가 다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와인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할 것이다. 토질, 일조량, 강수량 등이 가장 일반적인 요소일 것이고 와이너리의 실력 또한 큰 요소이다. 구대륙의 경우 대부분 여러 품종의 포도를 섞어서 와인을 만드는데 그때 적용되는 품종별 비율이 그해 생산된 와인 맛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도 나무의 연령도 와인 맛의 깊이와 비례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식재 후 3년이 지나면 와인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열린다. 그리고 통상 10살 이하의 포도 나무는 젊은 축에 들고, 따라서 그런 포도나무에서 채취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의 맛은 옅은 편이라고 한다. 최소한 10년 이상은 지나야 포도의 맛이 제대로 들기 시작하고 따라서 와인의 맛도 깊어져 간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포도 나무의 수명은 25년 안쪽이라고 한다. 이 정도 수령이 되면 수확량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고 따라서 대량 생산에도 취약해질 것이다. 물론 관리를 잘하면 수명을 늘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관리가 잘 되어 오래도록 키운 포도 나무에서 채취한 열매로 와인을 만들면 그게 바로 '올드 바인'이 되는 것이다.


통상 올드 바인은 30년 ~ 40년 이상된 포도 나무에서 열린 포도로 만든다. 그리고 수령이 오래된 만큼 비록 수확량은 감소하지만 포도의 맛은 깊어지고 이로 인하여 와인 또한 더 복합적인 맛을 갖게 될 것이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나무가 오래되면 그만큼 뿌리가 깊어지고 따라서 더 깊은 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광물질에서 양분을 빨아들여서 열매를 맺기 때문에 그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맛과 향이 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통상 올드 바인용으로 재배하던 포도 나무도 대략 80년 정도가 경과하면 더이상 열매를 맺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때는 새 묘목으로 바꿔서 와이너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성장과 소멸의 시간적 궤적이 인간 삶의 그것과도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와인 라벨에 'Vieilles Vignes'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와인이 바로 '올드 바인'이라는 말인데, 'Vieilles Vignes'은 오래된 포도나무 라는 불어이다. 그러나 나무만 오래 되었다고 반드시 좋은 와인, 맛이 깊은 와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도 나이만 먹었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튼 통상 오래된 무엇에서 만들었다면 특이하고 특별해 보이기 때문에 어쩌면 마케팅 측면에서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도 오랜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이 켜켜이 쌓이게 된다. 오래된 포도 나무의 뿌리가 깊게 땅속을 파고 들어가서 온갓 다양하고 특별한 향과 맛을 포도 열매까지 끌어올리듯이, 인간도 수십년간 삶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무엇'에서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향'과 '맛'이 난다. 한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삶에서 나는 '향'과 '맛'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냐에 따라서 많이 다를 것이다. 오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썩은 '냄새'와 구린 '맛'이 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록 오래 살지 않았어도 향기로운 기운을 풍기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서 '향기로움'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수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면서 재산을 크게 모으기도 하고, 학술적인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든 사람도 있고, 교육에 매진하여 우수한 인재를 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삶이 평범하다는 것에도 큰 가치가 있다. 모두가 특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평범한 삶이 있어야 온 세상이 기능하고 존재할 수 있다. 밥을 지을때 콩을 너무 많이 넣으면 그건 밥이 아니다. 콩이 특별하다는 것이 아니고, 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평범한 쌀이라는 것이다. 콩으로만 밥을 지을 수가 없다. 잘 지어진 밥에서 나는 구수한 향을 기억할 것이다. 매혹적으로 향기롭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쌀로 지은 밥에서 나는 향은 비교적 향기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도 얼마든지 향기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삶의 시간이 꽤 더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 당신은 읽고 있는 것이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 좀 더 향이 베어 나올 수 있도록 모든 순간을 살아내기를 바래 본다.




"내가 좋아했던 올드 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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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Musar Red (레바논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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