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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Aug 01. 2024

부자 되세요

겨울 이야기 - 셋

 관성은 물체가 외부에서 다른 힘을 받지 않는 한 현재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을 의미한다. 가만히 있는 물체는 그냥 가만히 있으려는 것도 관성이고 움직이는 물체가 계속 같은 속도로 움직이려고 하는 성질도 관성이다. 따라서 관성은 헤어나올 수 없는 조건이 아니라 '다른 힘'을 가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 조건에 불과하다. 


 부디 오로지 '부'에만 치중된 '부자'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말하고 싶은 한 마디는 만약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부디 오로지 정신적인 부에만 치중한 부자'는 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의 정신이 부유해도 물질적인 최소한의 부를 이루지 못하면 사랑하는 당신의 가족의 삶이 꽤 불편해 진다. 그러면 그들의 정신이 가난해 질 것이고, 그런 가정 환경은 결국 당신의 정신도 가난하게 만들것이다. 부의 두 가지 속성에 있어서 적절히 균형을 맞추길 바란다.










친구와의 만남


 어제 오래간만에 내게는 몇 없는 '부자 친구'를 만났다. 그와는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예전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며 잠시 '젊은 시절의 회상 놀이'를 하다가 헤어지곤 한다. 내가 퇴직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약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그가 다시 연락을 준 것이다.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는 중견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꽤 바쁠텐데 그런 와중에도 내 생각을 해서 시간을 내준 것이 고마웠다. 전에도 그랬지만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따뜻한 친구다. 


 그를 인천 지하철 예술회관역앞 3번출구에서 만났다. 근처 중식집에서 간단히 이른 점심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예술회관역 3번출구 바로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였는데 점심을 빨리한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스타벅스는 평일 점심시간도 다른 카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꽤 넓은 실내임에도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대부분의 자리가 동이 났다. 수다를 떠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트북을 쳐다보면서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 그리고 간혹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스타벅스는 갈 때마다 느끼지만 소음 측면에서 내겐 거의 시장바닥과 다를 바 없는 공간이다. 소란한 공간에서 그와 거의 2시간은 수다를 떨었다. 타인의 소음은 나의 소음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스타벅스에 사람이 많은가보다. 시끌벅적한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속에 비친 우리 명도 시장판의 잡상인 명이었을 것이다. 50대 중후반의 아저씨 둘이서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그는 대학 시절 같은과 동기인데, 오래간만에 봐도 언제나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아마도 서로 이권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그냥 친구 사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번도 금전적으로 얽히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나나 그나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없다. 만날 때 마다 그냥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경제적인 수준에 있어서는 나랑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꽤 가능한 것이 신기하다. 물론 그런 관계가 유지되는데는 이유가 있다. 




부자의 정의


 위에 잠시 언급했듯이 그 친구는 나의 경제적 수준에서 볼 때는 '부자 친구'다. 부자 혹은 부유한 사람의 정의는 문화, 시대 그리고 개인적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일단 부동산 주식 등 재산이 많아야 하고, 소득도 많아야 한다. 사업 소득, 투자 소득, 상속 등 다양한 출처에서 소득이 많이 나와야 한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일단 이런 특징이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부자라고 한다. 물론 부자의 정의는 단순히 물질의 양에만 국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나아가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어야 진짜 부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물질 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면에서도 풍요로운 사람이 진정한 부자일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그 친구는 물질적인 측면과 정신적 측면에서 모두 부자다. 사업 소득을 올리고 있고, 직원들의 월급을 제때에 주기 위하여 진실로 노력하면서 소득의 분배에도 나름 균형을 갖기 위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여유 시간을 만들어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기도 했다. 사업체를 키워서 더 큰 소득을 올리는 것보다는 욕심을 줄이고 대신 자신의 삶에 균형을 더하기 위하여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즉 자신의 가치 실현에도 게으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정의에 매우 가깝다. 


 아마도 나를 만나는 시간도 그의 삶에 균형을 더하는 시간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를 만나서 돈이 생기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사업상 사람들을 만나면 진실한 대화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도 사업을 할 때는 대부분 을의 위치이기 때문에 편치만은 않은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같이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단순한 친구와의 만남은 그에게 완전히 다른 시간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학창시절에 친했던 친구에게로 돌아가는 것 같다.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보다는 서로 어떤 기억을 공유하고 있고 어떤 부분을 공감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그런 친구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부자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패턴에 따라서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부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서 타인에 대하여 평균 이상의 공감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개념이 이렇게 존재하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그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개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별로 가치관도 다르고 생활 패턴이나 습성 그리고 성격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부는 그 크기가 무한대로 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하기도 불가능하다. 백억을 가진 사람은 10조를 가진 사람에 비하면 극빈자이다. 그럼 백억을 가진 사람은 거지인가?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이와 같이 매우 상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부이므로 오로지 물질적 부의 양에 따라서만 부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한 민국의 부자 그리고 내 주변의 부자 사람


 내가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때 부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내가 아는 부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유유상종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인들도 그래서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의 부의 크기는 '진짜 물질적 찐부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소수의 부자들도 일반적인 급여 생활자를 하다가 퇴직한 사람인 내 기준으로는 적어도 물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꽤 큰 부자이다. 


 통계에 따르면 순자산이 10억이 넘어가면 대한민국 상위 10%에 해당한다고 한다. 여기엔 부동산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대충 6~7억 내외를 부동산(아파트, 등) 자산으로 고려하면 순자산이 10억이 넘는 대한민국에서 10% 부자에 해당하는 가구도 잘해야 3~4억의 금융 자산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꽤 큰 돈이다. 그리고 역시 통계에 따르면 우리 나라 가구당 평균 순자산은 2023년 기준 4.4억 이라고 하며 여기에는 부동산 자산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면 부동산 자산을 빼면 평균 가구당 금융 자산은 잘 해야 1억 내외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상위 10%는 3~4억이지만 평균은 거기에서 대폭 낮아지는 것이다. 대충 부동산 자산을 제외하면 평균적인 금융 자산은 5천만원에 미치지 못하다는 말도 있다. 어디까지나 평균 값이긴 하지만 풍족해 보이지는 않고, 일부 자산가들의 부와 비교하면 극빈층으로 보일 정도로 외소한 규모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최소한 20억 혹은 30억은 있어야 최소한의 부자라고 할 수 있고 노후도 보장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런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 대고 있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30억이면 대한민국 부자 1%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다. 수 많은 뉴스와 유튜브 채널에서 너무 큰 숫자를 수시로 듣다 보니 인식의 왜곡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TV를 보면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멋진 집과 좋은 차도 수시로 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직업도 예사롭지가 않다.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중은 극도로 낮다. 드라마에서 부각되는 인물은 대부분 실장님이거나 사장님, 대표님 그리고 왜 본부장들은 또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빈번하게 미디어를 통하여 오랜 시간 동안 각인된 인상은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되면서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인식의 왜곡을 갖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부자는 30억은 있어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관점도 같은 방식으로 주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억' 이라는 단위는 뉘집 개 이름이 아니다. 상속을 받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급여 생활자가 월급을 받아서 생활비, 교육비, 금융 비용 등을 제외하고 저축할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40대의 남녀 평균 연봉은 5천만원 수준이다.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평균 1억이 쉽지 않을 것이다. 높게 잡아서 맞벌이 가정의 연 소득이 1억이라고 해도 생활비와 교육비 그리고 맞벌이의 일부 부작용인 평균 보다 높은 맞벌이 부부의 소비성향을 고려하면 1년에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은 크지 않다. 실제로 1억 연봉의 월 실수령액은 세금 등 공제할 경우 657만원 수준이다. 연봉 1억의 경우 2,100만원이 공제되고 실 수령연봉은 7,900만원이다. 여기에서 생활비, 교육비, 기타 품위 유지비 등을 제하고 나서야 비로서 저축할 여력이 생긴다.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의 맞벌이 비율이 30% 수준이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 기준으로 연봉 1억을 계산하는 것도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조금 높게 잡아서 외벌이 40대 연봉 6천으로 계산하면 세금 공제 후 약 5천이며 이 경우엔 이제 거의 저축할 여력 자체가 사라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억'이 그리 쉬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자동차 생산직 초임 연봉이 억이 넘는 다고 하는데 그런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전체 임금 근로자 중에서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2020년 통계 기준으로 대한 민국 직장인의 연평균 저축액은 852.8만원이다. 이 기준으로 계산하면 1억을 저축하려면 거의 12년이 걸린다. 1억은 그정도로 큰 돈이다. 물론 시간이 경과하면서 급여가 상승할 경우 연 평균 저축액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1억을 저축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현실이 이런데 보통 사람들이 10억도 아니고 20억 혹은 적어도 30억은 있어야 부자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내가 아는 '부자 사람'들에 국한하여 말해보면 그들은 부모의 사업체를 물려 받아서 운영을 하거나, 부모로부터 상속 등으로 재산을 물려 받은 경우였다. 물론 빈털털이에서 시작하여 부를 이룬 친구도 일부 있기는 하다. 아무튼 보통 '부자 사람'들과 같이 원래 부유했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계속 부를 유지하거나 더 불릴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부유한 부모로부터 부에 대한 교육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질적인 부의 상속과 함께 받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키큰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식의 키가 대부분 크듯이 부의 유전자도 이어 받는 것이다. 사업체를 물려 받는 경우도 역시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매우 훌륭한 도약대를 '그냥' 받은 것이 된다. 물려 받은 업체를 잘 운영하기만 하면 부를 유지하거나 늘릴 수가 있다. 개중에는 물려받은 재산을 다 날려 버리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내 주변에 있는 소수의 '부자 사람 친구들'은 성품이 훌륭하고 부모로부터도 좋은 교육을 받은 덕분인지 사업체를 잘 유지하여 더 키웠고, 물려받은 재산은 안정적으로 지킨 것 같다. 

 



관성의 강력한 효과


 그러나 다시 살펴 보면 그 '부자 사람 친구들'은 그들의 노력 여하와 관계 없이 자동적으로 부여받은 환경에서 현상 유지를 한 것 뿐일지도 모른다. 부는 자라는 속성이 있다. 부를 보유한 사람의 노력과 크게 상관없이 적당한 크기로 커진 부는 스스로 자란다.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라는 속도는 비례하여 증가한다. 부의 주인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버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 1천만원을 시중 파킹 은행에 예치하면 3% 이자를 고려하면 매일 약 700원의 이자가 입금될 것이다. 한달이 지나면 1천만원은 1천 2만원쯤으로 늘어나 있을 것이다. 매우 느린 속도지만 늘기는 는다. 그런데 금융 자산가들은 다른 단위의 금액을 예치할 것이다. 부동산, 주식 등 다른 수단을 통해서도 부를 극적으로 불리겠지만, 유사한 금융 상품을 활용한다고 가정해도 금융 자산가들은 금융 관련된 지식이 높으니 파킹 통장이 아니라 최소 5% 수익을 주는 채권에 10억을 투자한다고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그들은 매일 12만원 정도의 이자 수입이 증가하고 한달이면 약 350만원이 증가한다. 10억이 한 달 만에 10억 350만원이 되는 것이다. 천만원을 운용하는 사람과 자산의 차이는 100배지만 소득의 증가는 175배이다. 물론 천만원을 투자하는 사람도 5% 수익을 올리는 투자처로 전환하면 소득 증가율은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의 크기 자체를 비교할 수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증가된 부도 복리로 다시 증가하기 때문에 같은 수익률 5%인 상품에 투자를 해도 고액 자산가의 부가 증가하는 속도는 당연히 더 빠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부의 관성이다. 이렇게 과도한 욕심과 욕망 때문에 무절제하게 낭비해 버리거나 큰 욕심에서 투자를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하지 않는 이상 이미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진 부는 쉽사리 줄어들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그들은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부자였고 계속 그걸 유지하거나 더 키우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부의 관성이 계속 이어진 덕분에 말이다. 


 마찬가지로 원래 평범했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도 그러한 관성에 따라서 현상유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은 부자가 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부를 이루는 것에 대하여 배울 환경이 되지 못한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스스로 깨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다. 부를 이루는 것은 그냥 될 수가 없다. 천운을 타고나서 우연히 비트 코인이 개당 만원 정도 밖에 하지 않을 때 백만원 어치를 사 놨다면 불과 백만원의 투자로 수십억원의 부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큰 부를 이루는 경우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부를 비교적 쉽게 이룰 가능성은 매우 낮다. 관성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환경에서 얻거나 습득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사회 생활과 경제 활동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수준에서는 단기간 내에 큰 부를 이루기는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특출난 노력을 통해서 부를 이룬 적지 않은 사람이 있겠지만, 태반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냥 저냥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기대나 욕망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으로 매여있는 '관성'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따라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오롯이 나의 관점일 뿐임을 분명하게 말한다. 


 지금까지 부의 관성에 대하여 이야기했지만 이부분을 '관성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식으로 받아 들일 필요는 없다. 관성은 물체가 외부에서 다른 힘을 받지 않는 한 현재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을 의미한다. 가만히 있는 물체는 그냥 가만히 있으려는 것도 관성이고 움직이는 물체가 계속 같은 속도로 움직이려고 하는 성질도 관성이다. 따라서 관성은 헤어나올 수 없는 조건이 아니라 '다른 힘'을 가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 조건에 불과하다. 


 부에도 관성이 있고 평범함에도 관성이 있다. 따라서 평범함의 관성에서 벋어나지 못하여 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범함에 '다른 힘'을 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힘은 다름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일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고 공부를 하고 절약을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정도로 저축하고 투자하고 공부하고 절약하기 때문'이다. 관성을 벗어나려면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정도를 상당부분 초과하는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고 공부하고 절약'해야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급여의 30%를 저축한다면 관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2배인 60%를 저축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책을 한 달에 한 권을 보면서 투자관련 공부를 했다면 관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주 한 권은 봐야 할 것이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평범한 사람보다 저축을 두배하고 공부를 4배를 하는 식으로 삶의 패턴을 오래 유지한다면 이런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 보다 꽤 높은 수준의 경제적 이룸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관성'을 이기는 '다른 힘'을 꾸준히 가한 결과로 말이다.




당신이 정의하라


 나는 지금 나이가 50대 중반이다. 나이로만 보면 앞으로 엄청난 부를 쌓기에 늦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내 나이에 창업하여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인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가 있기 때문에 내게서도 '엄청난 부'를 이룰 기회가 완전히 박탈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영향하에 있는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앞서서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정의를 설명하면서 밝혔듯이 내게 있어서 부자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패턴에 따라서 생활하는데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부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서 타인에 대하여 평균 이상의 공감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부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텐데 나의 부자에 대한 정의는 위와 같다. 


 이런 정의는 아주 강력한 힘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으며 나는 그 힘에 이끌려서 사고하고 행동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관성에서 내가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딱히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별로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정의하는 부자가 되기는 사실 크게 어렵지 않다. 단지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생활 패턴'을 합리적으로 규정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의 규모에 따라서 얼마든지 부유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균 이상의 공감 능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물질과 정신이 균형을 이루는 '부자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의 '부자 사람'말이다. 


 부디 오로지 '부'에만 치중된 '부자'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말하고 싶은 한 마디는 만약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부디 오로지 정신적인 부에만 치중한 부자'는 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의 정신이 부유해도 물질적인 최소한의 부를 이루지 못하면 사랑하는 당신의 가족의 삶이 꽤 불편해 진다. 그러면 그들의 정신이 가난해 질 것이고, 그런 가정 환경은 결국 당신의 정신도 가난하게 만들것이다. 부의 두 가지 속성에 있어서 적절히 균형을 맞추길 바란다. 


 내가 재직중에 꽤 높은 비중으로 거의 20년간 매월 저축을 한 이유도 가정의 안정이 나의 정신적 안정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경제적인 규모에 있어서는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의 검소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는 상태이니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정립한 부자의 정의에는 크게 모자람은 없다. 내가 갖고 있는 '부자의 정의'는 욕망의 크기가 상당히 절제되어야 수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욕망은 인간의 힘으로 절제하기가 정말 어려운 감정이다. 따라서 내가 갖고 있는 '부자의 정의'에 부합하는 삶을 내가 계속 살 수 있다면 나는 욕망을 절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욕망을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핵심이다. 왜냐하면 욕망의 크기가 줄면 기대하는 부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욕망을 적절히 통제한다는 것은 돈을 무지막지하게 버는 것 이상의 힘을 갖는다. 둘 중에 어떤 능력을 갖겠냐는 신의 물음을 듣는다면 나는 즉시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을 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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