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 둘
나는 여러분이 앞으로의 선택에도 주도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한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다. 지금 퇴직을 한 분들은 앞으로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별로 모두 다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선택의 주체가 자신임을 알고 더욱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하나 선택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혹시 과거의 선택에 오류가 있었다면 미래의 선택에서는 오류를 줄이거나 제거해야할 것 아닌가?
당신이 만약 어떤 이유에서건 퇴직을 했다면 당신은 절대로 밀려난 것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시작을 위해 퇴직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일단 이 말을 받아들이고 다음 내용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어떤 식으로든 퇴직 특히 명퇴라는 이름의 조기 퇴직을 하신 분들은 퇴직 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할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은 어떤 분들에게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어떤 분들에게는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이해가 완전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4년 반 정도 조기 퇴직을 선택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삶을 시작했고 언젠가는 그 삶을 끝낸다. 삶도 끝나는 마당에 한 회사에서 퇴직하는 것이 사실 그렇게 큰 일은 아니다. 대단히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감히 이야기 하건데 대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권고드린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몇 일, 몇 주 혹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몇 달이 지나면 잊혀진다. 퇴직도 마찬가지다. 비록 당장은 자신을 약간 낯설거나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낯섦과 불편도 곧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낯섦과 불편 그리고 불안 혹은 불안정을 초래한 퇴직은 오로지 여러분의 선택 혹은 선택의 결과였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글은 제목부터 적지 않게 자극적이다. 나는 '퇴직, 나의 선택' 즉 퇴직은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라는 말을 서두에 던졌다. 퇴직은 우리 직장인들이 인생에서 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정말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삶을 살아 낸다. 우리의 의지가 별로 반영되지 않은 선택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과 그 결과는 거의 다 스스로 내린 선택에 근거한다. 그렇게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짧다고 하기엔 좀 긴 삶을 살아 본 후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퇴직이 우리 자신의 선택이었더라도 그게 우리가 원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못했으니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선택의 주체가 누군지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야 다음 선택은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 말이다.
우리는 일단 태어나는 것부터 우리 스스로 선택했다. 다들 수억대 일의 경쟁을 뚫고 탄생의 권리를 얻었으니 동의할 것이다. 그럼 학교의 경우는 어떨까? 너무 길게 다루기 어려우니 대학만 다루자. 복잡한 개인 사정이 다들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 한 공부의 절대량에 따라서 대학이 정해진다. 물론 운도 작용한다. 그러나 운도 뭔가 불씨를 지필 만한 것이 있어야 작용하지 않을까? 복권 당첨도 그냥 되지 않는다. 일단 복권을 사던지 혹은 누구에게서 얻던지 하는 식으로 구해야 한다. 이게 당첨되기 위한 최소한의 불씨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본인이 공부한 정도에 비례한 학력을 가졌지 않았나? 시험 볼 때 답안을 밀려써서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도 본인 책임이다. 그 중요한 시험을 부주의하게 본 것 자체가 문제다. 누가 밀려쓰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정말 지지리도 재수 없어서 수 년을 공부했어도 ‘운’이 없어서 가고 싶은 대학으로부터 연속적으로 탈락의 고배를 마신 분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것도 본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목표를 좀 낮췄어야 했다. 괜한 고집을 부려서 본인의 역량과 준비량에 맞지 않은 곳을 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너무 냉소적일지도 모르지만 우린 때로는 냉철해야 한다. 특히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고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여 매사에 자신을 방어만 하려고하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특히 자신에 대하여는 더 냉정하면 좋겠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자신을 너무 관대한 시선으로 보고 매번 책임지지 않으려고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도 좋지 않다.
취직도 나의 선택이다. 내 능력에 맞는 곳에 지원하여 직업 혹은 직장을 갖게 된다. 내가 선택했다고 하여 나의 선택을 받은 그 곳에서 나를 받아주지는 않는다. 난 취직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열심히 준비하여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취직을 하며, 따라서 취직도 나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이다. 회사는 내가 지원하기 전에는 나를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나의 지원 혹은 선택이 먼저다. 이런 관점에서 취직도 나의 선택이다.
그러면 퇴직은 어떤가? 회사에서 어떤 이유로 인하여 권고사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좋게 말해서 명예 퇴직이지 권고 사직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럼 제발로 나갔다기 보다는 내밀린 느낌이 든다. 그럼 나의 선택이 아닐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기대하는 모습으로 내가 거기에서 역할을 하지 않기로 ‘바로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회사는 나와의 관계를 종료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회사에서 기대하는 역할을 했다면 회사는 퇴직을 권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권고할리가 없다. 오히려 정년이 되도 더 연장을 하자고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수익성을 내 주고, 회사에서 완벽한 팀원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인성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로 여러분들이 선택을 한 것이다. 나의 관점이 어처구니 없게 들릴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조금만 더 읽어 보자.
따라서 이 시점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나도 돈을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 성과를 냈고(회사의 수익 창출에 기여했고) 조직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면서 팀원으로써 문제 없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왔는데, 왜 나를 권고 사직하도록 하는가? 이건 내 선택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회사의 강요이고 일방적 선택이며 나의 선택은 절대로 아니다' 라는 강변을 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아님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무엇이 맞을까? 난 일단 누구의 편도 아님을 밝힌다. 회사의 편도 아니고 개인의 편도 아니다. 절대 중립을 지킨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적어도 회사의 편이 조금 더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나도 평범한 급여 생활자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회사의 최고 경영진이 아니라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가능한 완벽한 중립을 지키고 싶다. 왜 당신의 퇴직(조기 명예 퇴직)이 회사의 선택이 아니고 나의 선택일까?
시험을 본 후 나오는 시험 점수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내가 공부한 만큼 시험 점수가 나온다. 운 좋게 '때려 맞춘' 것도 포함하여 최종 점수가 나오면 그건 내 점수이고 내 책임이고 내 선택의 결과이다. 시험 출제자가 내가 공부한 특정 영역에서만 시험을 낼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시험을 잘 보려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그에 맞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한 문제라도 더 맞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회사에서도 계속 평가를 받는다. 요즘은 승진 시험이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나는 물론 모든 승진 과정에서 시험을 본 세대이다. 약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억울하면 한 20년 늦게 태어났어야 했다. 아무튼 회사에는 고과라는 정량적 형태(물론 정성적 관점에서 평가되는 경우도 많다)가 있고 그 외에 매우 다분히 정성적인 관점에서 평가될 수 밖에 없는 ‘관계 속에서 획득하여 받게 되는 평가’가 있다. 전자는 그나마 업무 성과를 통하여 획득과 향상이 가능하지만, 후자는 역량과 실질적 성과보다는 개인의 성향, 성격, 가치관 등이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격이 다른 경우 혹은 목표와 지향점이 다른 경우 그 직원은 상사와 혹은 회사와 함께 가기 어렵다. 그냥 맡은 바 일만 열심히 하면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근속 년수가 증가하면서 결국 나이를 먹게 되고 직급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면 가치관이 다른 소수의 힘있는 사람과 대립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결국 두 가지 선택이 남게 된다. 나의 가치관을 바꿔서 적응하기 혹은 기존의 가치관, 즉 기존의 행동과 말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기존 가치관을 반영한 태도를 변함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후자를 선택할 경우 양측은 조화를 이루기 어려워지고 결국은 연말 인사에서 반복적으로 밀리게 되며 종국에는 정중한 권고를 받고 회사를 떠나는 상황이 된다.
이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떠밀려서 나간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난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회사 혹은 회사에서 의사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이 그동안 계속 기회를 주지 않았나? 변할 기회 그리고 적응할 기회를 말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잡지 않은 것은 본인이다. 그러면 이건 누구의 선택인가? 백 번을 생각해도 이건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지 회사에서 선택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도적떼의 구성원으로 살아남으려면 도둑이 되어야한다. 축구 팀에서 후로로라도 생존하려면 최소한의 축구 실력을 얻을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한다. 그런데 축구는 하지 않고 농구를 하면 그 팀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이와같이 내가 나의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았고 그런 생각과 행동을 바탕으로 회사 생활을 했고 그런데 그게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을 때 회사는 결국 다른 방향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회사 혹은 회사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들이 옳고 내가 틀렸거나 내가 옳고 회사나 회사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들이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양측의 방향의 차이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고보 있다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할 수는 없다. 내가 회사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특히 회사 자체 보다는 회사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들의 방향과 틀릴 때 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설명을 해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유독 회사에서 의사 결정권이 있는 고위직(사장 혹은 그에 준하는 인사권이 있는 사람)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다는 점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초등학생들은 선생님이면 뭐든 다 아시는 줄 안다. 그런데 초등 학교 선생님 중에서 20대가 얼마나 많은가. 그 젊은 나이에 뭐든 다 알리가 없는데 초등학생의 시선과 인식 내에서는 선생님이 거의 신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린 자녀는 아빠가 슈퍼맨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다 해 줄 것만 같다. 그런데 실상 대부분의 아빠는 그냥 직장인, 월급장이다. 등 뒤에 망토가 없음은 물론이다. 인식의 오류다. 어른이 되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직장인이 되고 난 후에도 이런 인식의 오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상사(사장이든 전무든, 팀장이든)가 인격적으로 고매하고 자기를 도와주고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커다란 인식의 오류다. 아닐 것 가지만 사실 이런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특히 신입의 경우 상당 부분 그럴 것이다.
이와 같이 직장인들은 사장 혹은 의사 결정권을 가진 고위 임원들이 고매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를 이해해 주고 알아 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인사 조치를 할 경우 속으로든 겉으로든 비난한다. 그들이 회사의 성과를 극대화하여 실제 오너로부터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기 위하여 때로는 심하게 직원들을 다그치고 외견상 비합리적인 조치를 일삼는 경우에는 더 크게 분노한다. 늘 공정과 기본 그리고 규정 준수와 원가 절감을 외치면서 자기들의 행위는 예외로 할 때 직원들은 또 크게 분노한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권을 갖는 최고위직 임원들은 의당 정의로워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공평이라는 개념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될 때 개인은 그 상황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즉, 자기가 어떤 식으로든 인정을 더 받고 보상을 더 받는 것이 당연하며 그래서 그렇게 되야 내게 공평한 처우가 주어진 것이라는 아전인수격 이해인 것이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과 어차피 같은 동물인 사장이나 인사권을 가진 최고위 임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들이라고 해서 절대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이다. 물론 나도 그냥 사람이다. 그들중 상당수는 단지 편협된 시각을 갖고 있는 나이만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점이 두렵기 때문에 나도 최대한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 냉철한 사고를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들은 현 직위가 높을 뿐이지 그것이 그들이 정말 공정하고 내 의사를 존중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독자님들이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면 당신들의 상사, 그것도 높은 위치의 상사를 떠올려 봐라. 훌륭한 인품을 가진 존경할 만한 사람(A)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B)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속된말로 ‘저런 인간이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듣지 않았는가? 여러분을 권고 사직(명예 퇴직)하도록 선택한 의사 결정자가 (A) 유형일까 아니면 (B)유형일까? 아마 둘 다 있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비율상 (A) 유형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상사가 어떤 유형이었는지와 관계 없이 변하지 않는 사실은 회사에서의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 주체는 바로 당신이었다는 것이다. 회사나 의사결정권자는 계속 당신에서 팀원으로써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본인이 선택한 것 뿐이다. 아무도 당신에게 그렇게 회사 생활하도록 강요한 적이 없다.
여러분이 동의하던 하지않던 아무튼 퇴직은 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겠다. 이미 해버린 퇴직을 돌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너무 큰 주제이기 때문에 나 같은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다루기엔 무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분이 (물론 나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선택에도 주도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한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다. 지금 퇴직을 한 분들은 앞으로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별로 모두 다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선택의 주체가 자신임을 알고 더욱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하나 선택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혹시 과거의 선택에 오류가 있었다면 미래의 선택에서는 오류를 줄이거나 제거해야할 것 아닌가?
나도 퇴직을 했다. 여러 선택지가 내 눈앞에 있다. 일단 나는 하나의 선택을 이미 한 상태이다. 그것은 내가 그간 일구어 놓은 자본을 투자하는 사업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어이없나? 이런 수비적이고 진취적이지 못한 자세로 앞으로도 한 참 남은 거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고 한심한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위 말을 절대로 잊지않고 지킬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사업을 할 만큼 경험과 능력이 없고 아이디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면 때문에 혹은 조급함 때문에 섣불리 욕심을 부리고 뭔가 해 보려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자본을 투입한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성이 큰 도박이기 때문이다. 도전이면 한다. 그런데 이건 내 입장에서는 도박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분명하게 선택하고 있는 것은 ‘나의 자본을 투자하여 사업하지 않겠다’ 이다. 너무 하찮고 조잡해 보여도 일개 퇴직인에게는 거대한 무게로 다가오는 육중한 문장이다. 난 나의 현실을 봤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일차적으로 한 것이다.
물론 다른 분들은 나와 상황이 다를 수 있다. 그런 다른 상황 속에서도 늘 가장 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무조건 도전하기엔 50대 퇴직자에겐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에너지의 총량이 충분하지 않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겸허한 선택을 하기를 바라며, 겸허한 선택이라도 했으면 굳은 마음으로 지켜서 제 2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하길 바란다. 내 삶은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결과값이다. 음식을 먹으니까 찌는 것이다. 술을 먹으니까 취하는 것이다. 저축을 했으니까 자본이 쌓이는 것이다. 모두 선택의 결과이다. 나 이외의 남 혹은 어떤 외부의 상황을 탓할 시간에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고민하자. 이게 남는 장사이다. 남탓하고 남욕해봐야 그걸 제일 먼저 듣는 사람은 바로 나일 뿐이다. 좋지 않은 음성 혹은 마음의 소리가 결국 향하는 1차 목적지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알면 뭐하나?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대응하면 알지 못한만 못하다. 너무 심하게 말하고 있지만 입에 써야 약이다. 소독할 때 쓰리지 않으면 균이 죽지 않은 것이다. 내 말을 소독약으로 생각해 주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이 말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의 퇴직은 오로지 당신의 선택이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읽었다면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 결코 당신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절대로 "짤렸다"라고 자학하지 말기 바란다. 의사결정권자들과 가치관이 달랐을 뿐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단지 다른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퇴직이었을 뿐이다. 퇴직을 우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 스스로 진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