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 다섯
어진 사람은 조용히 머물면서 영향력을 은은한 향기처럼 내뿜기 때문에 그 소재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그 향이 몸에 스며들게 할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어진 사람이 되기도 어렵다.
따라서 만약 어진 사람을 만났다면 그 어떤 보물 보다도 값지게 생각하고 그 곁에 잠시라도 머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진 사람에게 물든 경험이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악한 사람에게 물드는 것은
냄새나는 물건을 가까이하듯
조금씩 조금씩 허물을 익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악한 사람이 된다
어진 사람에게 물드는 것은
향기를 쏘이며 가까이하듯
자신도 모르게 선한 사람이 된다 - 법구비유경 [쌍요품]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경전이 법구경이라고 한다. 부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배우는 자의 마음가짐 그리고 평소에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 등이 시의 형태로 되어 있어서 비교적 이해가 쉽기 때문에 종교와 상관없이 폭 넓게 읽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상당히 압축적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단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경전이 법구비유경이다.
위에 인용된 글은 법구경에 나오는 게송(시의 형태로 쓰여진 부처의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풀어서 다시 쓴 법구비유경에서 발췌한 것이다. 법구비유경 제 10권인 쌍요품의 15장과 16장의 내용이다. 쌍요품은 하나의 대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상황을 제시하면서 어떤 가치 판단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 주고 있다. 위 내용도 악한자의 악취와 어진자의 향기를 대비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악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악취가 나는 물건을 가까이 두는 것과 같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악취(악한 습관)가 몸에 물들게 된다. 그리고 어진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좋은 향기 곁에 머무는 것과 같다. 즉 어진 사람이 추구하는 지혜를 쫓고 그의 바른 행실을 따라하다 보면 그런 습관에 물들게 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이와 같이 법구비유경은 두 가지 상황을 묘사하면서 알기 쉽게 게송의 의미를 전달 한다. 그래서인지 법구비유경은 비유 문학의 정점으로 인정받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악한 사람과도 관계를 맺게 되고 어진 사람과도 관계를 맺게 된다. 맨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가 악한지 아니면 어진지를 즉시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에 경험을 통하여 그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인 줄 정말 몰랐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불가피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과해 가는 동안에 악한 사람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물론 어진 사람도 반드시 만날 수 있다. 둘 다 제대로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가족을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이 타인을 접하는 기회는 학창 시절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만들어지게 된다. 학창 시절에도 나쁜 인연을 만나기도 하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나쁜 인연은 이권(利權)이 관계된 만남을 주로 하게 되는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그냥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利權의 개입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장 상사들과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거래처와의 이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질은 같다.
연일 방송에 나오는 학폭의 가해자와 같은 나쁜 인연은 학창시절에 겪게 되는 대표적인 나쁜 인연(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폭력까지는 아니라도 학생의 본분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지인들과의 인연도 나쁜 인연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친구'가 아닌 '지인'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결국 진정한 '친구'는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런 '지인'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에 그들로부터 24시간 발산되는 '악취'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게 된다.
나쁜 인연과의 접촉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된다. 물론 대다수의 인연은 너무 악하지도 않고 아주 어질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아마 나도 그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악과 어짊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악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살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의도적으로 손해를 입히려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타인이 입게 될 감정적 상처 그리고 타인에게 필요한 것에 대하여 무감하다.
그런 자들은 무엇보다도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매우 추상적인 특징이지만 누군가의 행동이 위에 포함된다면 그는 '악인'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은 얼핏 보면 단순이 의욕이 넘치고 정력적이며 도전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들을 특히 잘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악인이 아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타인의 감정을 훼손하는 방식을 동원하여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명백한 악인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통상 그런 사람들은 도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유독 도덕성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자신은 매우 도덕적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도덕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애초에 타인에 대한 신뢰가 매우 부족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스스로 왜곡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을 악인과 비악인으로 분명히 구분할 수는 없다. 누구나 악인의 면모를 조금은 가지고 있다. 문제는 과도하게 악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악인의 특성은 간혹 강력한 리더십으로 포장될 수 있다. 혹은 대의를 위하여 개인을 희생하자는 명분으로 희석될 수도 있다.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기 위하여 동료나 선후배를 모함하고 공을 빼앗고 책임을 떠 넘기는 사람을 한 명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물론 다른 어떤 사람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사람은 도덕성은 물론 유독 대의를 강조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대의(大義)는 '조직인으로써 마땅히 지키고 해야 할 도리'에 따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을 조정하고 그들에게 의식적으로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가스라이팅과 다를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심리적 조작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현실을 왜곡시켜서 그 사람을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Gaslighting은 연극 '가스등, Gas light'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이며 1944년에 영화화 되면서 알려졌다. 남편이 아내의 현실 인식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가스등을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인하여 가스등의 조도가 떨어져서 아내는 계속 등이 밝지 않다고 하는데, 남편은 '무슨 소리냐? 이렇게 밝은데? 당신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답을 하고, 결국 아내는 흐린 가스등 조명이 밝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내는 그런 식으로 심리적으로 조작되어 현실을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 중에서 어진 사람을 본적은 없다.
어질다는 것은 사람이 너그럽고 착하고 슬기로우면서 덕(德)까지 겸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진 사람이 되려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매우 높다. 이런 이유로 어진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어진 사람에게 물들 기회를 잡기는 매우 어렵고 결과적으로 어진 사람이 늘어나기가 어렵게 된다. 악인은 주로 위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 악에 휘둘리는 사람이 많다. 휘둘리면서 견디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악에 물드는 사람도 많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악에 오염되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극단적으로 악한 자에게 오염된 평범한 사람들은 조금씩 이기적이 되어가고 생존을 위하여 타인을 밟고 넘어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된다.
반면 어진 사람은 조용히 머물면서 영향력을 은은한 향기처럼 내뿜기 때문에 그 소재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그 향이 몸과 정신에 스며들게 할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후천적으로 어진 사람이 되기도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때문에 만약 어진 사람을 만났다면 그 어떤 보물 보다도 값지게 생각하고 그 곁에 잠시라도 머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진 사람에게 물든 경험이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도 분명히 삶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적지 않은 어진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 있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친 사람을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통하여 좋은 향이 조금이라도 내게 배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어떤 분은 조건없는 도움과 사랑을 주면서 냉정한 사회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아낌없는 배려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을 통하여 알려 주었다. 무엇이든 일단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인내와 수용력을 그분으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도덕성 또한 존경스러울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나도 그런 점을 배우고자 노력했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즐겁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향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너무도 짙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순간에서 맡을 수 있을 정도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야말로 근면과 성실함 그리고 친절과 배려가 무엇인지를 몸소 시현하면서 배움을 주기도 했다. 나와 관계가 적은 부서의 선배였지만, 그로부터 배운 덕목은 가히 '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보여 줄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언제나 배풀어준 친절과 배려는 德의 한 모습이다. 너무도 큰 뜻이기 때문에 德에 대하여 내가 상세히 규정할 수는 없지만, 보통 덕이 있다는 것은 인격이 높고, 올바른 행실을 하고 규정과 규범을 애써 지키지 않아도 저절로 몸과 마음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선배가 그랬다. 회사에서 큰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위력이 큰 '어짊'을 가진 분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경험한 어진 사람들은 사랑과 정, 이해와 배려를 배푼 사람들이었다. 사랑과 정, 이해와 배려를 그들은 '미소'라는 구체적 형태로 발산하곤 했다. 그들에게서 나도 어느 정도 물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가능한 많은 향이 내 몸에 배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나의 몸과 정신에서 어떤 향이 나오는지 잘 모른다. 통상 사람들은 자기 체취를 모른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있겠지만 그게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좋은 어진 분들의 향이 내게 배었을 것이고 반면 악인의 위력에 대항하여 버티는 동안 나도 모르게 '악'에 물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핑계를 대자면 나또한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미 내게 스며들어 버린 썩은 악취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하여 이젠 향기나는 분들과의 인연을 더 많이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나로부터 나오는 썩은 악취가 그분들의 향기로 빠르게 중화되고 언젠가 나도 향기로운 기운을 뿜어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당신은 누구에게 물들었는가? 그리고 누구를 어떻게 물들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