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 일곱
세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과 죽음을 지연시키는 것은 꽤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하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피하고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행위는 모두 인간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죽음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어제 조문을 다녀왔다. 가까운 회사 후배의 빙부상이었다. 퇴직 후에 늘 편한 옷만 입고 외출하다가 조문 때문에 오래 간만에 옷을 차려 입었다. 재직 중엔 거의 검은 정장에 흰셔츠 그리고 검은 넥타이에 검은 구두까지 완전 장착을 하고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편이었다. 내 사무실엔 그래서 늘 검은색 양복과 넥타이가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개인적으로 슈트를 차려입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차려입은 내 모습을 보는 것을 간혹 즐기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젠 왠지 그런 차림이 과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짙은 푸른색 계통의 세미 정장을 입고 조문을 했다. 물론 검은색 넥타이도 하지 않았다.
더운 날씨였지만 셔츠의 맨 윗 단추까지 꼭 채우고 집을 나섰다. 나는 넥타이를 하지 않을 경우엔 셔츠의 단추를 모두 채우는 습관이 있다. 아무래도 예를 갖춰야 할 자리에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더 단정해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목 끝까지 빠짐없이 채워진 셔츠의 단추는 뭔가 더 정돈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왠지 더 바른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지시하는 역할까지 한다.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려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인천 연수구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이미 6월 한 여름의 날씨여서 목까지 단추를 꼼꼼이 채운 옷차림은 아무래도 약간 답답하기도 하고 덥기도 했다. 그렇지만 도착한 곳이 장례식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간만에 옷을 차려입으니 마음이 차분히 정돈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 보다는 오래 간만에 '아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애도하는 마음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매우 가까운 후배라도 그 친구의 장인까지 알지는 못하니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경조사의 자리는 경조사 당사자의 애도의 자리 혹은 축하의 자리만은 아니다. 그 자리는 손님들끼리 회포를 푸는 자리이기도 하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정다운 후배 2명이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겨줬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저 반가웠다. 수 많은 좋은 기억을 함께 나눈 동료이자 후배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신 분에 대한 예를 갖추고 명복을 비는 것이 당연히 장례식장에 방문하는 본래의 목적이지만, 만나고 싶었던 인연을 다시 보는 것도 그에 못지 않는 방문의 이유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장례식장은 내게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조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고인을 알건 모르건 고인께 인사를 올릴 때 보통 2가지를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먼저 이제 막 시작한 새로운 생활(사후 영혼의 삶이 있다는 가정하에)에서 편안하시라는 말을 전한다. 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가신 분께는 애쓰셨다는 말도 함께 전하면서 이제 그 고통이 끝이 났으니 앞으로는 편안하시기를 기원한다. 두 번째는 남은 자손들을 '능력이 되시는 한' 잘 살펴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를 마음속으로 전하면서 조문을 마친다. 이런 마음을 속으로 전하는 이유는 특별히 없고 단순히 내가 그걸 바라기 때문이다. 고인은 좋은 곳에서 편안하시기를 바라고 나의 지인은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내고 다시 기운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조문에도 동일한 내용을 마음속으로 전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과거의 장례식은 상당히 떠들썩했다. 웃고 마시고 떠드는 잔치집 분위기까지 날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서 남겨진 가족들이 슬픔을 잊게하려는 목적에서 그랬다고 하지만, 아무튼 꽤 시끌벅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문상객들을 맞이하고 대접하다 보면 슬플 틈이 없기도 하다.
나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집에서 장례를 치루었는데 30여전 전인 당시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파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넓은 크기로 지상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2박 3일간 조문객을 대접했었다. 2층에 거주했었기 때문에 그나마 음식을 나르는 이동 동선이 짧아서 가능했지만 아무튼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에 비하여 요즘의 장례식장은 꽤 엄숙하고 조용한 편인듯하다. 집에서 장례를 치룬다는 것은 물론 거의 불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한 장례식장에서 다수의 장례가 한 번에 치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상가집도 고려해야 하고, 절대적으로 조문객들에게 제공되는 공간도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조문객들이 자리에 오래 머물기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젠 상가집에서 더이상 밤새워 고스톱을 치는 사람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덩달아 상가집을 핑계로 외박을 하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물론 그 핑계로 외박을 일삼던 사람들은 다른 좋은 핑계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후배 장인의 사망은 최근에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의사 파업과 연관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다. 파업으로 인하여 수술 일정이 지연되었고 그에 따라서 암의 전이가 더 빠르게 진전되었던 것이다. 결국은 그로 인하여 더 빨리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나도 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까운데 일을 당한 사람들의 슬픔과 당혹감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지금도 이 나라의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서 빨리 문제가 봉합되어 또다른 슬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장례식장을 다녀서 그런지 이젠 장례식장이 너무 친숙하다. 사실 50대 이상 되면 주로 방문하는 경조사는 장례식이 더 많다. 30대나 40대까지는 그래도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더 많았다. 20년 전만 해도 결혼도 꽤 했고, 출산도 적지 않게 했으니 그런 경사가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결혼도 적게하고, 아이는 낳지도 않게 되면서 결혼식과 돌잔치가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인구 노령화가 지속되면서 평균 수명도 늘지만, 노인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 자체가 증가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망자 수가 늘어나게 된 것도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진 이유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 둘 장례식장이 늘어난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많던 예식장들이 꽤 많이 없어진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25년전에 결혼한 예식장도 한참 전에 업종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폐업했다. 인천 백운역에 있었던 '아드리아'라는 예식홀이었다. 우스개로 결혼식장을 '아들이야'라고 발음하면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딸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난 그 결과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결혼식업은 인기를 잃어가고 있고 대신 장례식업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시골에서는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그 학교를 요양원으로 전환 운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기고 있다. 인구 노령화의 결과이다. 이래 저래 앞으로도 장례식장에 갈 일은 줄지 않을 것 같다. 요양원이 증가한 것은 당연히 장례식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삶의 막바지에 이르면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금과 죽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세금은 온갓 노력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줄일 수가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방법을 찾으면 말이다. 미처 파악하지 못하여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세금을 부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재산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세금을 줄이기 위하여 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줄어드는 세금의 크기가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재산이 적을 수록 세금에 대하여 무감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애써 노력해 봐야 줄어드는 금액이 미미하기 때문에 그런 노력마저 하지 않는 것이다. 없을수록 더 살펴서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반대로 된 것이다.
죽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지연시킬 수가 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과 죽음을 지연시키는 것은 꽤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하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피하고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행위는 모두 인간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죽음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앞서 언급한 행위 중에서 특히 운동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피트니스 클럽에 가보면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미 꽤 좋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반면 외형적으로만 판단할 때 실제로 운동이 필요한 체형의 회원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부자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반하여 절감액이 미미하다는 생각에 세금을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부자가 아니라는 것과 운동이 필요한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고 운동이 '외견상' 필요 없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관리한다는 것이 묘하게 동질감을 준다. 이래서 부익부 빈익빈인 모양이다.
세금이든 운동이든 앞으로 한참 인생이 남은 사람은 향후 개선하면 되지만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사람들은 가능한 빨리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정기 수입이 없거나 대폭 줄어든 사람은 세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한 권리를 찾는 다는 관점에서 말이다. 퇴직한 사람들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세금을 줄이고 정부에서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퇴직 후 무료하다면 이 부분을 연구해 보길 권한다.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세금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이 효과는 더 크다.
어제 내 지인의 장인이 돌아가시면서 또 한 분이 이번 삶의 여행을 마쳤다. 80세를 사셨으니 충분한 삶을 사셨다고 하기에는 약간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다고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남성 평균 수명이 79세 정도이니 거의 평균의 삶은 사신 것이다. 내가 뵌 적은 없지만, 그간 애쓰셨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고 싶다. 그리고 훌륭한 자손을 키우셨으니 이 세상에서 삶을 이어가시는 동안 최소한의 책임은 다 하셨다고도 말씀 드리고 싶다. 그 후배의 아내도 나와 같은 회사의 직원이고 아직도 재직 중이며, 매우 성실하고 업무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그래서 훌륭한 자손을 키우셨다고 한 것이다. 이 사회에서 충분히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면 훌륭하다고 말하기에 모자람은 없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