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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Aug 01. 2024

행업 (行業)

겨울 이야기 - 아홉

 실질적으로 내가 도움이 되는 순간은 그들에게 어떤 책임질 상황이 생겼을 때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순간이고,  나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들을 대변해 주고 그들이 원하는 물적 그리고 인적 지원을 해 주어야 하는 경우 밖에는 없었다. 쉽게 이야기 하면 그들이 하기 싫어하거나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팀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만 참견하고 토를 다는 일을 주로 한다. 즉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될 일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일만 골라서 하는 꼴이다. 이건 아무리 관대하게 봐줘도 결코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가 될 수는 없다. 








 콩 심은데 콩나고....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행업(行業)은 '인과응보, 因果應報'를 뜻한다. '윤회'와 함께 불교라는 종교에서 인간의 삶에 대하여 설파할 때 자주 거론되는 용어이다. 업(業)은 '자신이 한 일'을 의미하며 따라서 행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한 일들을 총칭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끝없이 일을 지어가면서 우리의 삶은 이어지며 그로부터 '지어진 일'에 대한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일'을 삶을 이어가는 동안 끝없이 겪게 된다. 그 '일'은 불교 용어로는 아마도 '업보, 業報'가 될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하여 '일을 짓고', 그에 대한 책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의지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 우리가 미래에 맞이할 결과에 영향을 끼치니 평소에 잘하자는 말이 아닐까? 불교는 어렵기로 유명한 종교라고 알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실제로 불교의 교세가 강하게 퍼지지 못하는 이유가 '이해하거나 공부하기 어렵기'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앞 단락에서 행업이니 업보니 하는 말을 했지만 이런 말들 속에 포함된 의미를 쉽게 표현하면 '매사 행동에 유의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내용의 친숙한 속담이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오이 덩굴에 오이 열리고 가지 나무에 가지 열린다.', '뿌린대로 거둔다.'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라는 속담은 영어에도 정확히 동일한 속담이 존재한다. 'Where there's smoke, there's fire' 혹은 'There's no smoke without fire' 라고 말이다. 


 이런 말들은 하나같이 모두 인간관계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우리의 의식속에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매우 뿌리깊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많은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할 것 같다. 결국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타인에 대하여 내가 '짓게 되는 행위'에 의롭지 못하거나 도덕적이지 못한 면이 없어야 상호 건설적인 인간관계를 정립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은 行業


  50년이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나도 수 많은 行業을 지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나의 行業에 대한 業報를 겪어 왔을 것이기도 하다. 특히 16년간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의 행업은 날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려면 영향력이 일단 있어야 한다. 물론 없어도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직장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지위를 얻게 되면 타인, 특히 동료나 후배 직원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게 된다. 


 이런 관점이라면 나는 최소한 15년 정도는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꽤 무거운 '行業'을 지어왔음이 분명하다. 어떤 이유에서 내 마음속에 심어졌는 모르지만 나의 경우 직장내에서의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수용과 지원'이었다. 타인이 내게 악의적이거나 혹은 중대한 손해를 끼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도와주고 지원해 주는 것을 대전제로 삼았다. 부서와 상관 없이 말이다. 모든 직장 동료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가 나의 대명제였었다. 심지어 향후 내 등에 칼을 꽂을 가능성이 99%인 사람도 내게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마다하지 않았었다. 진짜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아쉽게도 나중에 칼을 맞았다. 이것도 진짜다!


 타인과의 '인간관계'의 출발점을 이렇게 잡아 놓으면 일단 나의 팀원들에게 불필요한 지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지게 된다. 불필요한 지시는 도와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계속 되뇌이면 사사건건 상사들이 참견하고 지적하는 것 보다는 대부분 그냥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이 오히려 도와주는 격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질적으로 내가 도움이 되는 순간은 그들에게 어떤 책임질 상황이 생겼을 때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순간이고,  나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들을 대변해 주고 그들이 원하는 물적 그리고 인적 지원을 해 주어야 하는 경우 밖에는 없었다. 쉽게 이야기 하면 그들이 하기 싫어하거나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팀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만 참견하고 토를 다는 일을 주로 한다. 즉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될 일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일만 골라서 하는 꼴이다. 이건 아무리 관대하게 봐줘도 결코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가 될 수는 없다. 물론 내가 묘사한 나의 '行業'의 원칙을 나를 경험한 내 주변인들은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내 생각과 달리 그렇지 못한 '行業'을 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완벽하게 나의 원칙을 언제나 지켰을리도 없으니 그런 타인의 불인정이 있다면 그 또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아무튼, '수용과 지원'이라는 큰 틀에서 인간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 나름 노력을 했고, 특히 후배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조직에서 인정받고 어느 정도 무게 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내가 나도 모르게 받은 그들로부터의 지원와 배려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그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문제이든 수용적인 태도를 갖고자 노력했는데,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나도 나름의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수용적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수용과 지원'이라는 원칙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땅한 자격이 있는 분들에게 정신적 혹은 물질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지원을 해주면 결국 나 또한 향후 그들의 덕을 볼 수 밖에 없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내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콩을 심었는데 그 콩이 팥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비록 콩을 심어도 튼튼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나의 '당연히 해야 할' 배려와 지원도 결실을 맺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실이 맺히지 않는 경우 또한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두려워하며 나무를 심지도 않는 것만큼 어리석고 무지한 것도 없을 것이다. 




후배들의 武勳을 빈다


 오늘 오래간만에 매우 아끼는 후배를 만났다. 사실 내가 재직중 그 친구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더 있었는데 그게 나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은 꽤 어려운 과업이기 때문에 그걸 해 내기 위해서 나름 고충이 많았었다. 회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중의 하나가 예산을 따는 것이다. 즉 돈을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기약없이 계속 반복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예산을 따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기약없이 계속 반복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인건비'밖에 없다. 그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적당한 역량이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조직은 채용에 인색하다. 


 실제로 다양한 이유로 만신창이가 된 조직을 운용해야 하는 상황에 내가 그를 끌어올린 것이어서 애초에 그 자리로 올릴때부터 미안한감이 많았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과업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그를 내 몬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은 퇴직을 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시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그리고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려고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부담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내기도 했었다. 퇴직을 하기 전까지도 계속 물적, 인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와는 그렇게 길지 않은 불과 4년 정도의 시간만을 공유했지만, 그에게는 내가 그 누구 보다도 더 많은 '행업'을 지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 밀어 넣은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자 고민하고 실행하면서 그 시간을 채웠다. 내가 채운 '行業'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나에게 시간을 할애하여 준 것으로 볼 때 나의 그에 대한 '行業'이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1% 정도는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무엇이든 더 지원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젠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지금 겪고 있는 도전적인 상황을 돌파하도록 기도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가 그렇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나의 관점에서 '마땅한 자격이 있는 분'에 정확하게 해당되는 후배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번 어둠을 뚫고 나갈 것이다. 그가 어느 곳에 있던지 그의 역량에 어울리는 마땅한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그의 武勳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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