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 여덟
'퇴직 예정자의 불안감'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불안감은 설레임일 수도 있고 두근거림일 수도 있다. 다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설레임과 두근거림에 이르기 바로 전 단계인 불안감에 머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불안감'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불안감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편치 않고 조마조마하다'라는 의미이다. 불안감은 결코 부정적인 뜻 만이 아니다. 완벽한 긍정의 뉘앙스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규정하자면 긍정과 부정의 중앙값, 즉 중립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사실 퇴직은 입사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처음에 사회에 진출하여 회사에 출근하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책임, 그리고 일정 부분의 보상을 받으면서 그동안 겪지 못한 '사회'라는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첫 출근 때 느꼈던 신선함 혹은 긴장감을 기억할 것이다. 겪어보니 퇴직도 거의 비슷하다. 퇴직후에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퇴직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부의 창출 여력이 감소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뭔가 불안하다면 그 원인을 파헤쳐보자. 혹시 아는가 해결책이 있을지? 퇴직이 불안한가? 만약 불안하면 왜 불안한지 글로 남길 것을 권한다. 생각만 해서는 계속 그 끝이 어딘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짙은 어둠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퇴직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어느 50대 중반 남성의 심리 상태에 대한 글이다.
그 50대 중반 남성이 바로 나다. 이 글은 내가 퇴직 9개월 전에 경험한 느낌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는 내가 앞으로 9개월 후에 퇴직을 할 줄은 몰랐다.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었겠지만 내 예상으로는 최소한 1년 반은 더 직장에 머물 줄 알았다. 그러나 물론 9개월 이전에라도 퇴직의 기회가 오면 기꺼이 퇴직을 하려고는 했다. 아무튼 그런 혼란스럽고 멍한 과정 중에서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퇴직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고 그 과정 중에서 나의 심경을 적어 본 것이다. 그리고 나는 2024년 4월 초에 퇴직했다.
수 년 전부터 심적으로 안정감이 흔들리면서 내적 균열이 커져 왔다. 현재의 상황에 철저히 몰두하던가 아니면 매몰되어 있기라도 하다면 그런 느낌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바쁘게 일터에서 순간 순간을 살았겠지만, 내겐 직장 내에서의 시간적인 여유가 타인보다 많은 편이어서 그런지 자주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불안정한 느낌이 자주 든다. 뭔가를 계속 갈구하지만 지금 내 손에는 없고 앞으로도 손에 넣기에는 시간이 무수히 소요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계속 불안하고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언가를 해도 그것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들어서 퇴근 후 산책을 많이 한다. 집에서 책상 앞에 앉아 있어 봐야 50% 이상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 유튜브 채널이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내 소중한 삶을 소모하기 때문에 그럴 바에야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걷기를 통하여 건강도 챙기고,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매일은 못하지만, 적어도 주말엔 약 10km 정도는 걸으려고 노력한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하루 평균 거의 2만보를 걸었다. 키로수로 환산하면 거의 15km 이상이다.
오랜 시간 걸으면 다양한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르고 그 생각들은 가슴속에 차곡차곡 채워진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현재 투자하고 있는 자금을 더 원활하게 운용하여 더 많은 안정적 수익을 올릴까하는 생각을 한다. 중대한 사색을 하는 것처럼 산책 운운했는데 ‘투자’라니 의아한가? 퇴직을 앞둔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이해 바란다. 나와 비슷한 연배라면 최우선적 고민의 주제가 나와 같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회사에서 있었던 모종의 상황에 대하여 다시 복기하면서 의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남의 탓(혼자 속으로 하는 뒷담화)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광활한 우주 공간만큼 큰 나의 마음속의 공간 속에서 실컷 그리고 목청껏 남욕을 한다. 전혀 실현 가능성도 없는 쓰레기 같은 생각일 뿐이지만, 억울하고 분한 생각 때문인지 그런 순간은 반복적으로 내 생각을 파고든다.
내 마음에 드는 어느 지방을 선정하여 그곳에서 집을 구매하여 텃밭을 가꾸면서 평온한 순간을 보내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은 '돈'쪽으로 흐른다. 내가 투자하고 있는 분야에서 높은 수익이 창출되어, 그 수익금으로 아내에게 안전하고 좋은 차를 선물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베스킨라빈슨 백에 현금을 가득 넣어서 아이스크림과 함께 아내에게 선물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마음속에서 갈구하고 욕망하는 그것을 당장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이라도 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내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그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그 여운으로 어떤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을 남길 뿐이다. 왜 불안정한 느낌을 자주 갖게 되는 것일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내가 지금 불안정하고 불안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면 왜 불안정하고 불안할까? 오래전부터 난 은퇴 혹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빈도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은퇴 관련 네이버 카페에 가입하여 매일 매일 출석하면서 관련 이야기들을 읽어 왔다. 그러면서 나의 은퇴를 생각해 왔고 내가 바라는 모습에 대한 꿈도 꿔 봤다. 그런데, 난 지금 은퇴한 상태는 아니다. 은퇴나 퇴직을 못하는 유일한 핑계가 있다면 딸 아이의 교육 문제인데, 그 교육도 올해로 끝이 난다. 내년초에 졸업을 하면 일단 학비 부담은 끝나고, 딸아이가 취업을 할 경우엔 별도의 용돈 등 추가 비용도 더 이상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이 해가 지나면 난 재정적 측면의 부담이 상당폭 줄어들기 때문에 퇴직 혹은 은퇴라는 선택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그런데 불안하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준비가 되었는지, 뭘 하면 안되는지 등에 대한 생각이 그동안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내 성격상 뭔가 계획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세워서 가지고 있어야 실행에 옮기는데 아직 그 계획이 구체적으로 서지 않았다. 그래서 곧 다가올 은퇴 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생각만 계속해서 하면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불안의 원천은 다양하겠지만, 당장 내가 겪게 될 은퇴 상황에 대한 구체적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재정적으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모자람도 없다. 내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그리고 비교적 건강한 지금의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현재 준비된 자산으로 나의 은퇴 생활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다. 불안정하고 가슴이 뛴다. 더 깊게 그 불안감에 대하여 탐구하고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아무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적어도 하나만은 확실하다. 내 은퇴에 대하여 그리고 그 준비에 대하여 명확한 지도가 없다는 것이 내가 겪고 있는 불안의 원인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이젠 여기에 더 집중해봐야겠다. 좀 더 명확한 내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경로를 세워 봐야겠다.
재정적 계획은 세워봤는데, 나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은 것이 없다.역설적으로 이 시점에서 약간의 희망이 보인다. 나의 남은 시간을 채울 여러 안들을 생각해 보면 나의 불안감은 약간의 안정감으로 천천히 전환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짧지만 그래도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퇴직 예정자라면 나와 같은 불안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뭐라고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막연한 불안감 말이다. 사람마다 조건과 현실이 다 다르니 나의 불안 요소가 일반화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보편성이 떨어지는 내용이라면, 이 글이 '나의 불안감'에 대한 제한적인 수준의 글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아무튼, 나의 걱정거리였던 딸아이의 학업은 종료되었고 이미 졸업하였다. 게다가 해외에서 취업도 성공하여 4월 1일부터 출근을 하고 있다. 여전히 약간의 지원이 필요하여 완벽한 독립은 아니지만 그래도 95%이상 독립에 성공했다.
이 글에도 촘촘히 박혀있지만 나의 불안감의 원천은 '퇴직 후 준비에 대한 명확한 지도의 부재'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의 끝없는 욕심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제일 먼저 '투자'니 '돈'이니 하는 말부터 한 것을 보면 근본적 이유는 물욕에서 촉발된 것으로 봐도 전혀 무방하지 않을것 같다. 이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너무 세속적이고 질이 낮은 정서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퇴직을 앞둔 평험한 가장들이 그런 걱정과 불안이 없다면 그 또한 정상은 아닐테니 말이다.
내가 나의 욕심과 욕망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다분히 인간의 본성, 즉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한 자연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과해서는 안되지만 적당한 욕심과 욕망이 없다면 그 삶을 온전히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욕심과 욕망은 그 존재에 마땅한 정당성이 부여될 수 밖에 없다. 다만 과도한 욕심은 경계해야 하겠다. 나의 욕심과 욕망이 과했는지 돌아봐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미 퇴직했으니 당분간 더 이상의 수입 창출은 어렵다. 따라서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얻어질 것도 적으니 자연스럽게 분수를 알고 욕망을 줄이고 욕심을 통제해 나갈 것이다.
약 9개월전의 내 마음속을 돌아보고 9개월이 지나 이젠 퇴직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니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별차이는 없는 것 같다. 이미 나는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책임이 따르는' 자유를 얻었다. 그 자유를 좀 더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끈질기게 내게 들러 붙어서 '더 많이, 조금 더'를 외치는 자아로부터의 외침 (욕심과 욕망)에 약간은 귀를 막아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내가 Brunch에 쓴 글 중에서 가장 많은 분들이 본 글이다. 총 170여편의 글을 올렸는데 약 22,000번 나의 글이 읽혔고 이 '퇴직 예정자의 불안감'이라는 글은 4월 25일에 개시된 이후 7월 8일 현재까지 총 11,815회가 읽혔다. 나머지 글들이 평균 약 70번 읽힌 것을 보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횟수이다. 물론 라이킷이 45회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읽은 후에 공감하지 못한 분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한 독자는 아래와 같은 댓글을 통하여 글을 읽은 후에 느낀 의아함을 전하기도 했다.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수입원이 끊겨서 불안하다는건지 할일이 없어서 심심해서 불안하다는건지... 아니면 막연한 미래가 불안하다는건지..? 사실 뭐 할지 모르겠어서 불안한거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갔을때 떼야하는거 아닌가요..? 세상 넓고 할게 이리도 많은데 뭘할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거는 갓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수업을 내 손으로 직접 짜야하는 대학생이나 느낄법한건데... 특이하네요' 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분의 친절한 댓글에 나는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하였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다는 말씀에 '많이' 동의합니다. 저의 글이 복잡하고 깔끔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글의 맨 뒤에 있는 '첨언'에 간단히 기록했지만, 저는 저의 욕심과 욕망이 저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결론을 낸 것입니다.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데 불안해 하는 것이고, 그 이유가 여전히 이렇게 나이를 먹었어도 욕심과 욕망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저라는 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입니다. 학생때 느끼는 불안과는 약간 결이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의견은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책임도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배설의 창구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이해가 쉬운 글을 쓰도록 해 보겠습니다.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라서 미숙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라고.
굳이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댓글을 공개한 것은 역시 나의 이 브런치글을 읽고 이해가 어려운 분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퇴직 예정자의 불안감'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불안감은 설레임일 수도 있고 두근거림일 수도 있다. 다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설레임과 두근거림에 이르기 바로 전 단계인 불안감에 머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불안감'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불안감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편치 않고 조마조마하다'라는 의미이다. 불안감은 결코 부정적인 뜻 만이 아니다. 완벽한 긍정의 뉘앙스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규정하자면 긍정과 부정의 중앙값, 즉 중립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나의 경우 퇴직을 했고 퇴직 전에 꽤 오랜 기간 동안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것은 절대로 부정적인 감각은 아니었다. 미지의 세계를 맞이하기에 아직 서툴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설레임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결국 퇴직을 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인지 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냥 퇴직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 휩싸여서 얼떨떨한 상태였던 것 뿐이지 결코 '부정적인 의미의 불안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퇴직 후 3개월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에 내 기준에서는 꽤 많은 글을 쓰면서 내면을 살펴왔고 짬짬이 외출하면서 사회적인 관계 유지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불과 3개월 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얼떨떨함은 상당부분 가셨다.
사실 퇴직은 입사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처음에 사회에 진출하여 회사에 출근하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책임, 그리고 일정 부분의 보상을 받으면서 그동안 겪지 못한 '사회'라는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첫 출근 때 느꼈던 신선함 혹은 긴장감을 기억할 것이다. 겪어보니 퇴직도 거의 비슷하다. 퇴직후에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퇴직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부의 창출 여력이 감소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만약 퇴직 전에 최소한의 성실한 생활 그리고 재정적 관리를 했다면 최악의 상황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퇴직 후에 받는 일정한 보상은 의외로 상당하다. 바로 시간이다. 나의 경우 출근을 위하여 매일 04시 30분에 일어났고 집에 오면 19시였다. 거의 15시간, 즉 하루 24시간의 63%의 시간을 오로지 회사 생활을 위하여 투입해야만 했다. 그 63%가 이젠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비록 급여라는 유형적 형태의 보상은 없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재직중에 과도한 지출에 목을 매지 않으면서 재정적 관리를 했었기 때문에 그 보상이 없더라도 나의 삶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