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게임을 잘하기 위한 학습서
6. 정신의 크기는 무한하다. (p39 ~ p43)
우리는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것 외에, 눈에 보이는 것도 경험하며 느낀다. 따라서 정신은 시야만큼 큰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정신은 우주만큼 클 수 있다. 정신의 문을 활짝 열수록 정신의 크기도 커진다.
반면 쓸데없는 걱정에 얽매일때 정신은 작아진다. 1.2미터 거리에서 퍼팅을 실수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주변의 널찍한 공간과 함께 호흡하라. 고개를 들고 세상을 최대한 크게 보라. 지형을 살피고, 그린에서 4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부터 퍼팅 선을 읽기 시작하라. 요컨대 넓은 시야를 가져라! 공에 집착하면 공은 궤적을 잃고 목표점에서 빗나간다. 그때 당신 정신의 크기는 딱 골프 공만한 상태다. 작은 정신이 여유로운 스윙을 방해한다. 가슴을 펴고 당신의 정신이 녹색의 잔디와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사이의 공기처럼 무한하게 넓어진 기분을 만끽하라.
심리적 영향은 광학적 현상에서도 확인된다. 한 물체에 지나치게 시선을 집중하면 그 물체까지의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진다. 퍼팅이 짧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린을 넓게 보라. 널찍한 공간 가운데 홀컵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 거리를 계산하라. 크게 볼수록 정신의 크기도 커진다. 그리고 정신의 크기가 커질수록 결과도 좋아진다.
당신이 골퍼라면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바로 이 장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퍼팅은 모든 골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숙제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어려워하면서도 가장 연습을 하지 않는 것이 퍼팅이다.
일단 재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타구감도 없고 시원하게 허공을 가르며 공을 보낼 수도 없고 심지어 몸의 근육도 별로 사용하지도 않아서 운동하는 기분도 들지 않는다. 근육에 대한 자극이 아주 미미한 몸의 미세 조정만 해야하는 작업이 퍼팅이다. 그래서 연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위 내용을 기억하고 그린 플레이를 하면 장담컨데 한 라운드에서 최소한 3~4타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경험했다. 단, 이 경험을 진짜로 하기 위해서는 '그 재미없는' 퍼팅 연습도 해야 하고 그 연습의 과정에서 큰 관점에서 홀을 보는 습관을 들이도록 집중해야 한다.
당신의 커리어도 넓은 시각에서 보라.
넓은 시야가 필요한 것은 골프 퍼팅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넓은 시각을 가지면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선택지도 다양해진다. 연애도 많이 해 봐야 이성을 보는 눈도 좋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이게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경력 개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것 같다. 그러나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어지간하면 현재 속해있는 조직속에서 '끝을 보려고' 한다. 입사 면접에서 대부분 지원한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하지 않았나? 합격하기 위한 외로운 외침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심 '안정을 찾아서 뿌리 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입사에 성공했다면 이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넓은 시각에서 또 다른 기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당신이 지금 재직하고 있는 회사를 배신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오해하지 말라. 회사에 들어온 것은 상호간 계약에 따른 것일 뿐이다. 사원증이 주민등록증이 될 수 없다. 회사는 목숨바칠 국가가 아니다. 회사는 사원들이 목숨을 바쳐서 올인하기를 기대한다. 이건 회사의 입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당연한 사항이다. 회사가 그걸 기대한다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터무니 없이 과도하게 일하다 쓰러지면 회사가 유공자 연금이라고 줄 것 같은가? 가능성은 Zero이다. 사원들은 이걸 늘 잊고 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상식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내면 되고 그에 준한 보상을 받으면 계속 다니고 받지 못하면 마땅한 보상을 주는 곳을 찾으면 된다. 물론 보상과 인정이 부족해도 당신이 거기에 만족하면 그건 당신의 선택일 뿐이고 그것은 존중 받을 것이다. 그러나 존중은 받지만 보상은 받지 못할 것이다.
당신 자신에게 변화가 필요한지 계속 물어라 보라. 지금 당신은 의미없이 버티고만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이직이 자유로워졌다. 따라서 과거에 비하여 더 잦은 이직이 일반화되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안정적이고 보수가 나쁘지 않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며 이것은 실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의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며 특히 안정적이고 보수도 나쁘지 않은 곳에 현재 소속이 되어 있다면 더욱더 변화를 찾아 나설 특별한 이유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안정적이지도 않고 과도한 노동을 요구 받으면서도 보수도 경쟁력이 없는 곳에 소속된 상태에서도 끝없이 버티면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도전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에 매몰되어 도전할 에너지까지 고갈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고 지금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고수하는데는 큰 에너지가 추가로 필요하지는 않다. 거기에 안주하면 되니까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도 그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적임자는 되지 못한다는 것을 먼저 고백해야 하겠다. 참고로 EPL의 무리뉴 감독이 선수 시설에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은퇴 이후 지도자로써 최고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 나도 용기를 얻어서 감히 주제넘는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참고로 한 말이다.
현재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아무튼 보통의 직장인들은 회사의 정문만 나서면 더 많은 기회가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했듯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입사 초기에 한번 좋은 기회가 와서 이직을 결정하고 시험도 보고 합격도 했었지만 '운이 없었는지' 당시 급격한 경기 후퇴로 해당 기업에서 채용보류를 통지해 왔었다. 1997년도 IMF시기였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서 포기했었고 그 이후에 특별히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후 40대 초반까지는 간혹 헤드헌터에게 연락도 왔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보상이 아니라는 주제넘은 욕심에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었다. 회사에서 나름 인정도 받고 있었고, 아내의 직장도 근방이었고, 일부 연봉 상승을 위하여 나의 이직이 꼭 필요한 경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맞벌이의 함정이기도 한데, 맞벌이를 통하여 비교적 큰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게되니 새로운 기회를 찾을 동기도 점점 없어져갔다. 부끄럽지만 난 그랬다. 그래서 안주했었던 것이다.
2022년도 기준 전국 가정의 맞벌이 비중이 46.1% 였다. 현재는 더 증가하여 50%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이 맞벌이 가정의 가장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안주하는 선택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내 주변의 맞벌이 가정을 보면 그중 꽤 많은 수가 변화 보다는 안주를 선택했음을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능력이 있다. 믿어라.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반드시 이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고 너무 정체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시야를 밖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속한 조직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면 역시 시야를 밖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기도 하다. 당신의 능력은 다른 곳에서 재평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과대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면 '부당하게 과소평가'될 가능성 또한 있지 않을까? 참지만 말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 보기 바란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은 능력이 있다. 겸손해야하지만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해도 좋을 것은 없다.
'젠골프'의 작가는 이 장에서 정신의 크기를 강조하고 있다. 너무도 중요한 정신의 크기를 축소시키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대목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우스겟소리도 있듯이 걱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넘어서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걱정하는 순간 정신은 위축되고 따라서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 걱정이 당신의 시야를 좁혔기 때문이다. 그 걱정에 너무 집중하여 해결책(홀)까지의 거리를 너무 짧게 여기게 되고 결국 당신의 대응은 답을 만들에 대는데 실패하게 된다. 홀에 공을 넣지 못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