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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그리고 혼술에 대하여

안주는 알아서 해먹자.

by Eaglecs

최초 작성 2017. 10. 23. 16:35 / 2024. 04. 10 보완


들어가는 말.....


이번 글에는 전통적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남성이지만 생각이 전통적이지는 않다. 여권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도 아니고 남성 위주의 사회를 동경하는 사람도 아니다. 여성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남성이 보기에는 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관점이 기술되어 있다. 나와 관점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관점은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의 눈으로 보여지는 상황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 수준(or 태도, 방향 등)을 의미한다. 즉 이 글에 나오는 나의 관점은 그냥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담백하게 이런 관점도 있다고 널리 이해하며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시대가 급격히 변하면서 홀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혼밥의 경우는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1987년 대학 1학년 생활을 할 때부터도 이미 했던 것이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긴 하다. 대학 식당가에서 홀로 2,500원짜리 오징어 덮밥을 자주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요즘 의미하는 혼밥은 집밖에서 먹는 것과 집안에서 먹는 것이 모두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당시의 그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다. 그야말로 혼밥은 어디에서건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다. 바빠서, 밥 동무가 없어서, 등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우리 집의 독특한 현실에 혼밥 혹은 혼술의 이유가 있다.


안사람은 직장생활을 매우 열성적으로 한다. 평일은 당연히 밥을 전혀 하지 못하며 주말에도 거의 식사 준비를 하지 못한다. 바쁘다. 우리에겐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를 위하여 가끔 밥을 챙기는 것이 전부이다. 그 아이의 밥을 챙기는 빈도수도 내가 더 높기 때문에 아내가 밥을 준비하는 경우는 잦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 내가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아이의 밥도 챙기게 되었고, 그렇게 하기 시작한 지가 18년이 된 것이다. 거의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내 혼밥의 역사는 적어도 18년은 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아내는 결혼 초기엔 그래도 한동안 밥을 챙겼었다. 요리책을 보며 뭔가 만들어줬고 맛도 좋았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빈도가 줄다가 이내 없어졌다. 아마도 내가 맛없게 먹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50%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무튼 나의 아내는 노력했다. 정말이다. 진짜다. 계속 주장하는 나의 모습이 좀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그러다가 동짓날 해 넘어가듯이 순식간에 빈도가 거의 0 으로 수렴해버렸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그냥 다른 집과 다른 것일 뿐이다라고 자위 중이다.


집에서 혼밥을 할 경우 내 감정은 無이다.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다.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냥 생을 유지하기 위한 양분을 몸에 주입하는 느낌이다. Fact에 주목해 달라. 슬프거나 한 느낌으로 표현한 문장이 아니라 실제로 양분의 주입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음식을 많이 탐하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우리 가정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하여 식사 시간에 가족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TV를 보거나 Computer로 미리 download받아놓은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 식사를 하곤 한다. 아니 그렇게 한다. 하곤 한다 라고 하면 마치 내가 혼밥하는 빈도가 낮은 뉘앙스를 준다. 따라서 솔직하고 정확히 말하겠다. 늘 그렇게 한다.


평일엔 회사에서 거의 아침과 점심을 먹고 퇴근하기 때문에 집에서 저녁 혼밥을 하며 주말에는 거의 100% 혼밥을 한다. 장점도 있다. 귀찮은 것 빼고는 내가 해 먹고 싶은 것을 언제든 재료가 있는 한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재료의 준비도 내 몫이다. 단점은 아내로부터 밥상을 받아 보기가 너무 어렵고 최근 들어서는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에 약간 비약일지는 모르겠지만 전통적 가족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이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곤 한다는 것이다. 그냥 우리집의 전통이 이렇게 세워져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목적이 같이 밥을 먹는 것 뿐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통'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임을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어쩌면 나의 인식 수준이 아직도 한참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전통에만 구태의연하게 기대는 면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아내의 존재 이유가 식구들의 밥을 해 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다만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밥을 해서 아이와 함께 식사를 했으면 하는 바램은 있다. 그런 바램은 이 시점에서 욕심으로 판명된 상태이다. 사실 내가 주말에 서둘러서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리면 아내가 해 주는 밥을 얻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침의 경우 아무리 기다려도 12이전에 먹을 수가 없을 것이고 혹시 먹게 되더라도 약간의 짜증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는 단점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특별한 음식이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엌 싱크대는 온갖 식기로 뒤덮여 있게 될 것이고, 물기는 사방 팔방으로 튀어 있는 것을 또한 감수해야 한다. 물론 밥을 다 먹은 후에도 설거지 등 뒤 처리는 내 몫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단점을 감수하고라도 굳이 기다려서 밥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아마 이렇게 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불규칙한 식사로 인하여 위장병이 생길 것이고 아내의 근거가 그리 풍족하지 않은 짜증으로 인하여 부부 사이는 멀어질 것이다. 난 밥보다 가정이 평온한 것이 더 좋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아내의 밥상을 상당히 깔끔하게 포기했다. 18년 전에 말이다. 딱 1년에 1번 생일 상을 주긴 하는데, 사실 그것도 반찬은 장모님이 하시기 때문에 아내가 주는 생일상이라고 하기 민망하다. 나중에 제삿밥이라도 얻어 먹으려면 아내에게 잘 하라고 하는데, 살아서도 밥을 못 얻어 먹는데 죽어서 먹어야 무슨 큰 소용이 있겠는가? 양념이 덜 된 제삿밥 보다는 살아서 먹는 잘 요리된 밥을 좀 얻어 먹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해 주질 않으니(못하니) 내가 해 먹는 것이다. 내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돈이 없나? 그래서 혼밥이다.


아무튼, 난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혼밥을 시작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식사, 혹시 나온다고 하더라도 간혹 짜증과 함께 먹어야 하는 분위기, 딱히 그 정도의 위험과 고난을 감수할 정도로 뛰어나지 않은 맛, 등을 고려하면 내 선택은 깨름직하지만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차려서 먹으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상태로 부엌을 깨끗하게 하면서 음식을 준비하고 뒷마무리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음식을 하면서 내가 나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낼 필요도 없으니 어떠한 짜증도 겪을 필요가 없다. 가끔 딸아이의 혼밥을 준비할 때 나도 짜증이 나긴 하는데, 짜증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인지 몸소 체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혼밥을 시작한 딸 아이에게까지 그런 영향을 줄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단 하나 걸리는 것은 이렇게 아이마저 본의 아니게 혼밥에 동참 시킨 것이다. 주로 내가 밥을 챙겨 주긴 하지만 아무튼 내 아이도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혼밥을 한지 꽤 되었다. 나중에 대학을 가거나 유학을 가서도 혼밥을 많이 할 텐데 그때 적응하는데 매우 수월할 것이라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위안거리다. 이걸 위안거리로 여기고 만족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장점은 장점이다. (실제로 일본으로 유학가서 4년간 혼밥을 했고 지금은 직장을 다니면서 혼밥 중이다. 예상이 적중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은유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꿈을 크게 가지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평범하다고 혹은 일반적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는 특이한 가정인 우리 가정의 완벽한 혼밥 환경이 은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한 가정의 나와 나의 딸이 전통적인 가정에서 가질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무한한 혼밥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 제끼는 모험일까? 이미 18년 전에 열린 그 문은 여전히 닫히지 않고 계속하여 이상한 광경을 나와 나의 딸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지면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장면들이 한 가득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는데, 오늘은 거기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난 이상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18년을 생존해 오고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마시라. 이상하다는 것은 나쁘다는 것도 싫어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냥 특이하여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난 나의 아내를 비난 할 단 하나의 이유도 없다. 내가 결혼 전에 식사 등은 신경쓰지 말라고 했었다. 그 약속을 대부분 지키고 있는 것일 뿐이다. 보통의 신랑들이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게 하겠다고 하고는 전혀 지키지 못하는데 나는 그래도 꽤 지킨 편이다.


그 ‘이상한’ 가정에서는 혼밥이 일상이며, 혼술 또한 일상이다. 혼밥의 경우는 밥이라는 의식주 3요소 중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아내의 역할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수 있지만 혼술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나의 혼술은 그 역사가 꽤 오래 되었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적어도 10년은 넘은 것 같다. 혼자 술을 먹기 시작한 것은 꽤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술을 먹은 것은 점점 더 본격적으로 혼밥을 한 시기와 일치하는 것 같다. 특히 아이의 혼밥이 동반 시행되면서 더욱 빈도수가 증가하였다. 음주 빈도의 증가는 스트레스의 일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나는 혼술을 하더라도 정말 음식처럼 양을 철저하게 조절하여 알코올을 마셔서 취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아내도 만류를 하지 않는 편이다. 많으면 와인 반 병 혹은 소주 2/3병 정도에서 그치지 더 이상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와인 반 병이면 375ml, 13.5%의 알코올 도수 기준 약 50ml의 알코올이다. 소주로 환산하면 25% 도수의 진로 소주의 알코올 함량 90ml의 약 56%가 된다. 이정도 알코올이면 약간의 술 기운이 돌지만, 내 행동이나 언어 행위 등에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냥 음식을 많이 먹고 배가 부른 경우와 비슷한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배가 불러도 2~3 시간 정도 지나면 곧 배가 꺼지듯, 이렇게 음주를 하면 2~3 시간 정도 지나면 알코올 기운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난 술을 음식처럼 먹는다고 표현한다. 일부지만 타당성이 있는 합리화이긴 하다.


두주불사의 인물들에겐 정말 재미가 없는 음주 행태이고, 그들에겐 어쩌면 이건 술을 먹는 것도 아닌 정도일 것이다. 아무튼 난 그렇게 술을 마신다. 그래서 진정한 혼술이라고 하기엔 약간 부족할 수 있지 않나 한다. 내 혼술의 빈도수는 혼밥의 농도가 진해지면서 증가하였다. 그로 인하여 와인셀러도 구입하였고, 집안 구석구석엔 이런 저런 술들이 다양하게 보관되어 있다. 혼술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기 때문에 이즈음에서 결말을 내야 할 것 같다.


혼술과 혼밥은 내게 어떠한 의미일까? 현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혼술과 혼밥이 일상다반사가 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물론 내가 경험하기 시작한 혼술과 혼밥의 역사에 비하여 현재 회자되고 있는 혼술 문화는 너무 늦은 감이 있긴 하다. 그런 측면에서 난 시대를 앞서간 것 같다. 굳이 앞서가도 되지 않을 부분인데도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내가 선택한 행동이 나로 하여금 본의 아니게 시대를 앞서가게 했다. 혼술과 혼밥의 역기능이 많이 있겠지만, 난 가급적 순기능 쪽에 집중을 하고 싶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나마 순기능에 집중하는 것이 내 삶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미 18년을 살아온 가정 환경에 변화를 주는 것도 매우 어렵고 불편하며 혼술과 혼밥으로 인하여 그런 변화를 준다는 것도 그리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어느 한 쪽에만 치우진 어떤 의무가 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받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기에도 내 관점에서는 충분치 않다. 물론 난 그러한 대접(?) 때문에 간혹 상처를 받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며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는데 그건 내 감정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감정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긴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섬긴다기 보다 좀 약간 종속적인 역할을 맡는 경향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동의 하지 않는다. 물론 이미 이땅에서는 남성들이 가사에 깊게 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역을 맡고 있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 비하여 상당히 증가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아무튼. 여성이 사회 생활을 할 경우에는 더욱 더 여성에게 가사일이 집중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런 경우라면 오히려 체력적으로 강한 남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다. 사회 생활의 강도는 직장이 무엇이냐, 일의 종류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집 밖에서 경제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그것이 남성과 여성에게 일정 부분 육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부가하게 되는데, 그러한 환경에서 아무래도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이 더 취약하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동일하게 사회 생활을 하는 경우라면 통상 체력적으로 월등히 우세한 남성이 집안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이며 심지어 상식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체력적으로 매우 우수한 여성의 경우라면 남성보다 더 집안일을 할 수도 있겠고, 해야만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통상 경제 활동을 부부가 모두 하더라도 여성이 집안 일을 더 많이 하는 경우가 많다. 난 그것에 대하여 분명히 반대를 하는 입장이고 따라서 최대한 집안일을 떠 맡기 위하여 노력하는 편인데(단,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보통의 사람들과 비교할 때 좀 과하다 보니 혼술과 혼밥을 철저하게 경험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나의 이러한 상태가 잘못되었다, 부족하다, 얼토당토않다 혹은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나의 이러한 상태는 그냥 그런 것일 뿐이다. 힘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질 수도 있고(전통적인 가장에 대한 처우가 상당히 결여 된 환경이므로 – 물론 ‘책임’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가장의 대우를 충분히 받는다),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내 상황은 매우 적절한 미래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대를 굳이 내가 앞서갈 필요는 없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앞서가게 되었다. 그래서 힘이 들긴 하다.


그러나 선구자는 늘 힘이 들고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법. 곧 닥쳐올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가정의 모습을 지금 시대에서 남들보다 조금 앞서서 실현하고 있는 나에 대하여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믿는 것이 좋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말이다.




요약과 감상:


시대가 변했다. 시대는 과거부터 계속 변해 왔다. 어느 시대이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제일 늦게 변하는 것 같다. 환경은 다 변했는데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를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살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서 변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나는 가사 노동(식사 준비, 등 집안 일)에 대한 큰 변화가 지난 수년간 급격히 일어나고 있고 그로 인하여 많은 가정에 불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돈 문제도 크지만 집안 일이 힘들어서 육아는 꿈도 꾸지 못하고 결국 출산을 포기한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약간은 이유가 될 수 있다.


감히 말한다. 남성들이여. 약속을 지키자. 결혼 전에 분명히 집안일도 도와 주고(도와주긴 뭘 도와주냐. 거기 살면 그게 당신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고 결혼했을 것 아닌가?


음식이든 청소든 해 보면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 물론 하기 싫다. 번거롭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도 하기 싫다고 옛 성현이 말씀하셨다. 분명히 말하지만 성차별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남자가 일반적으로 힘이세고 체력이 강하다. 하기 싫고 번거롭고 크게 힘이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힘이 드는 일이라면 좀 더 활력이 있고 체력이 강한 남성의 역할 비중이 높은 것이 맞다. 그렇게 하면 결국 당신들이 더 대접을 받을 것이다. 수 많은 볼맨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사!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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