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승은 누구인가? 그리고 당신은 누구의 스승인가?
이틀 후인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를 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날이다. 많은 다른 나라들은 유네스코가 설립한 10월 5일을 세계 교사의 날(World Teachers' Day)로 기념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5월 15일이다. 이날은 세종대왕의 양력 생일인데,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뜻도 있고 동시에 모든 스승님 혹은 선생님 또한 세종대왕처럼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봄에 '공직 사회 기강 확립'을 위하여 제정된 '김영란 법'으로 인하여 이젠 스승의 날은 많은 교사들이 불편해 하는 날이 되기도 한 것 같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될 것을 걱정하여 스승의 날이 학생이나 학부모를 만날 필요가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인 경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정성과 사랑이 담긴 소박한 케이크나 커피 한 잔도 누군가 문제로 삼으면 얼마든지 문제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극도로 몸을 사리게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2024년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은 수요일인데, 석가탄신일과 겹친다. 우연히도 세종대왕의 양력 생일과 부처의 음력 생일이 겹치는 날이 바로 금년 5월 15일인 것이다. 따라서 공휴일이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은 마음편히 스승의 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꽤 오래 전부터 교사들은 교권의 추락에 몸살을 앓아 왔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인구 감소로 인하여 대부분의 가정에 딱 하나 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큰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 '자식'을 자신의 또다른 자아로 생각하는 일부 부모들의 예외적 행동이 교권 추락을 가속화시킨 촉매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물론 모든 교사가 세종대왕처럼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일부 역량 미달의 교사 역시 문제를 악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요즘도 스승의 날이나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많이 선물할 것이다. 카네이션이 존경과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선생님의 가슴에 달아 드리면서 선생님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전통은 사실 5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승의 날이 제정된 해가 1964년이니 이미 스승의 날이 제정되기 전부터 제자들은 스승님들께 존경을 표해왔던 것이다. 카네이션의 꽃 말이 사랑, 존경 등을 의미하니 스승께 드리기에는 적격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주황색 카네이션만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주황색은 분리와 열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전통이 50년대에 시작되었던 것을 보면 그 어려웠던 시기에도 우리는 스승을 존경했고 그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유독 강한 교육에 대한 열정과 열망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부모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식에 대한 교육을 맡아 주고 계신 선생님 혹은 스승님에 대해서 어떻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 감사한 마음을 카네이션이라는 꽃에 담아서 전달하는 전통은 그 전통 자체에서 향기가 우러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시대가 각박해져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가길 바란다.
나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간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꽤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왔다. 너무도 평범한 학생이어서 인지 선생님들의 관심을 끌거나 그분들로부터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깊은 애정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내게 남아있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도 내 기억에 여전히 남아 계신 분은 있다. 그분은 영어 선생님도 수학 선생님도 아닌 고등학교 때의 교련 선생님이었다.
교련(敎鍊)은 정규 군사 교육 이수자 이외의 젊은이들, 즉, 학생들에게 실시된 군사 교육이다. 사관 생도나 학군 후보생 등은 군사 교육을 받지만 나머지는 군대에 가기 전에 군사 교육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도 별도로 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한 것이다. 지금도 남북은 긴장 상태이긴 하지만 과거에는 더 전쟁의 위험이 컸기 때문에 학생들도 유사시에는 전쟁터로 가야 했고 따라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군사 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군사 훈련이었던 교련은 폐지된지 오래 되었다. 다만, 대학에서는 1988년까지는 교련을 했었고, 고등학교도 단계적 축소를 거쳐 1997년 이후 선택 과목으로 전환되면서 사실상 폐지되었다. 나는 1984년도에 고등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교련 수업을 당연히 받았고, 심지어 대학에서도 2년간 교련 훈련을 받은 마지막 세대이다. 시대적으로 지금 보다는 더 경직되었고 특히 군사 정부였기도 하기 때문에 교련은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한창 장마철일때 학교 운동장 흙바닥에서 비를 맞아가면서 낮은 포복을 한 적도 있다. 교련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기괴한 상황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정말 그 시대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간 과거이니 교련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 기억에 남은 선생님이 교련 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은 당연히 교련 수업이 아니라 그 선생님이 보여주신 나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조언이었다. 그 분과의 상담 혹은 면담은 불과 한 두 번 뿐이었지만 그 시간이 나의 16년간 학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진학 상담을 할 때였는데, 그분의 말씀에는 나를 신뢰하고 있고 나의 성장과 발전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이 느껴졌었다. 그동안 다른 분들로부터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따뜻한 격려의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구체적인 진학 상담을 위한 기술적 접근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공감과 위로 그리고 따뜻한 배려와 인정이 배어있는 말은 당시 내겐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선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면담 당시 그분의 목소리와 얼굴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내가 회사에 재직중에 젊은 사원들에게 최대한 꿈을 가지고 현실을 극복하라고 나름 진심 어린 조언을 자주했었는데, 아마도 나의 이런 개인적 기억이 내 가슴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은 적어도 내게있어서는 단순한 담임 선생님이 아닌 '스승'이었다. 지식만 전달해서는 스승이 될 수 없다. 관심과 사랑 그리고 상호 존중과 존경이 생길 때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선생(先生)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보면 '먼저 태어난 사람 혹은 먼저 온 사람'이다. 이렇게 보통 연장자에게 쓰이는 말이 선생이다. 일반적으로 서로 잘 모르는데 연배가 좀 되어 보이면 '선생님' 이라고 칭하는 것을 많이 봤을 것이다. 그러다가 학문적으로 성취가 높고 덕망이 있는 분 혹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을 하고 또 그런 위치에 있는 분들에 대한 존칭으로 '선생님'이라는 말을 쓰면서 의미의 확장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용어는 그래서 개개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보다는 그 '선생님'이라고 칭해지는 분의 성격과 성향 그리고 사회적 위치를 칭하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우리 선생님이라고는 해도 나의 선생님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선생님은 다수의 대중 혹은 무리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여 칭하는 존경과 인정의 호칭이다.
반면 스승은 그 의미가 한 차원 더 발전한 것이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분'이다. 바로 나 자신과 일대일의 관계 정립이 된 분이 스승님이다. 우리에겐 선생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스승님도 한 분 정도는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훌륭하지만 그 분들도 한 개인의 삶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낮아진 교권과 높은 업무량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이 땅의 대다수 선생님에게 '내 진정한 스승님'이 되어달라고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선생님들 중에는 진정한 스승님의 자격이 충분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학교에서 스승님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하나? 진정한 스승님의 자격이 있는 선생님들도 여러 여건상 힘에 부치니 그분들께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고, 책 속의 스승님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나는 법정 스님의 책을 주로 많이 봤고 내가 다른 글에서 자주 언급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책 또한 많이 봤다. 그래서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나의 삶이 인도된 면이 상당히 많다. 스승의 정의는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분'이라고 위에서 언급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나의 실질적 스승님은 법정 스님과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내 기억속에 완벽하게 자리잡고 계신 교련 선생님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스승의 날이 코 앞인 이 시점에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준 우리의 스승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교직에 있지 않더라도 삶을 어느 정도 오랜 기간 살아낸 사람이라면 분야가 어디이든 그를 스승이라고 불러줄 사람이 한 사람 정도있어야 할 것 같다. 그때 비로서 그의 삶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불러줄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삶도 잘 이끌어왔지만 타인의 삶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의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누구에게나 참으로 벅찬 경험이 될 것이다.
사
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