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를 걷고싶다
늦잠으로 아침 루틴이 깨졌습니다. 날이 풀린 탓에 여유로운 일요일을 맞이합니다. 반려견을 데리고 가까운 덕곡 저수지를 걷습니다. 겨울 저수지는 거대한 빙판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나무 스케이트를 빙판에서 탔습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동네 친구들과 위험을 무릅쓰고 달렸지요. 송곳으로 얼음 찍고 달릴 때 나는 마찰음. 살얼음인 줄 모르고 빠져버린 일. 물로 채워 준 논두렁 밭두렁에서 스케이트 타기에 우리는 해지는 줄 몰랐습니다. 빙판아래 물고기들이 숨을 죽이며 추위를 견디듯, 우리들은 목도리와 벙어리장갑을 끼고 겨울공기를 맞이했습니다. 저수지 언저리에는 마른 갈대들이 서로 몸을 의지하며 모진 계절을 버텨내고 있는 듯합니다.
산모롱이를 돌 때, 낯선 남자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산기슭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가리키며 아카시아버섯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오래된 아카시아 밑동에 자란 하얀색의 버섯이 아카시아 버섯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정식명칭은 '아카시아재목버섯'이라고 약용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하고 갔습니다.
아카시아버섯 설명을 위한 기다린 나그네는 퍽이나 고마운 사람입니다. 겨울저수지를 뒤로 하고 총총 걸어갔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 멀리 북쪽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점을 찍 듯 날아오릅니다. 차가운 저수지를 안식처 삼아 먼 길을 달려온 것 같습니다. 시린 물속에서 자맥질하며 생을 이어가는 철새들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추워도 해지는 줄 모르고 얼음판에서 웃음꽃을 피우던 우리들의 유년과 닮아 있습니다.
겨울철새 종류는 꽤 많습니다. 물까치, 물까마귀는 수가 많습니다. 고함을 꽥꽥 지르며 날아다닙니다. 물총새, 굴뚝새, 뱁새, 붉은 머리 오목눈이, 솔개, 곤줄박이, 참새가 마른풀사이로 떼 지어 다닙니다. 짝 잃은 외기러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새들은 앉은 자세와 태도에서 표정이 나온답니다. 모두가 사랑입니다.
우리 면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호수)가 5개 이상 있습니다. 저수지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서로 다른 겨울철새들이 날아듭니다. 퇴로(가산) 저수지, 덕곡저수지, 위양지, 대항저수지, 무연저수지. 용포저수지 등.
요즘 저수지 주변은 데크 포장길입니다. 흙길을 찾아서 걷기를 희망하기에 저수지 둑길이나 산길을 걷기도 합니다
덕곡저수지는 걸어서 왕복 1시간 남짓이기에 자주 갑니다. 저수지를 돌다가 같이 요가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왕언니를 만났습니다. 팔십 중년이 넘어도 걷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박수를 보냈지요. 오늘은 평소와 달리 두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겨울철새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빙판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봄을 기다리는 물결이 흐르고 있습니다. 나의 유년의 기억도 얼음장 밑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을 것입니다. 기다림은 길고, 겨울나기는 오래 걸려도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멈추지 않듯 내 마음은 여전히 은빛 빙판을 지치고 있습니다. 따사로운 겨울햇살이 너무 좋았습니다.
오후에 대각정사 법회를 마치고 온 신도 4명이 공방을 방문하였습니다. 차(茶)를 실컷 마셨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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