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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12. 2023

교육행정직 남자들의 유쾌한 수다

숨쉴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

 며칠 전 교육행정직 동기 친구들을 만났다.


정확히는 친구는 아니고 동생들이다. 이곳이 첫 직장인 그들과는 달리 난 일행으로 몇 년 근무하다 온 탓에 그들보다 내가 서너 살정도 많다.


 서너 살 차이가 나지만 막상 대화를 해보면 딱히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 모두 나이에 비해 성숙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난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가 즐겁다. 물론 서너 살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그들의 생각을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약속 장소는 우리 학교 바로 앞.


 저녁으로 학교 앞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대화를 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한다.


 여기저기 다른 학교에서 퇴근 후에 삼삼오오 모이느라 만나는 시간이 지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녁 식사 후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시간이 오후 6시 전이다.


 이 맛에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육행정직을 그만두지 못한다.


 누구는 라떼를 시키고, 누구는 캐모마일 차를 시킨다. 난 언제나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화려한 카페 디자인과는 다르게 커피 맛은 무난하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대답하는 시간이 지나고 모두의 입이 풀리자 본격적으로 네 남자의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의 주제는 시시콜콜한 행정실 생활 얘기부터 내 결혼 생활 얘기까지 다양하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그 말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행정실에선 단 한 마디를 안하고 묵묵히 앉아 있던 내가 동기들을 만나니 입에 모터가 달린 것마냥 와다다다 말을 쏟아낸다.


 학교엔 또래도 없고 남자는 더더욱 없다. 딱히 마음 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엔 나이와 가치관과 성장 과정이 비슷한 세 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늘 대화에 목말랐던 나에게 수다 떨기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또 있을까. 꾹꾹 눌러 놓았던 수다 본능을 미친듯이 폭발시킨다.


그렇게 목에서 쇳소리가 날 때까지 대화를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10시를 넘어간다.


 마침 야근을 끝내고 나온 아내의 전화가 왔다.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모두 각자의 동네로 뿔뿔히 흩어진다.


 신규 발령이 나고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가까워진다.


 그 사이 여러 인연을 만났지만 소수 중에 소수 집단인 교육행정직 남자로서 이 세 남자와의 모임은 내게 평범한 동기 모임 이상의 에너지를 준다.


 이 모임에서만큼은 생각난 것을 눈치보지 않고 그대로 얘기해도 된다. 상대방이 이 주제를 알지 모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생각난 그대로를 가감없이 표출해내도 된다.


 외로운 직장생활을 해나가는 나에게 이보다 더 확실한 진통제가 존재할 수 있을까.


 다들 바쁘고 정신 없겠지만 이 네 남자의 교행 모임이 더 오래 더 자주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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