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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20. 2023

공무원의 업무능력은 업무분장이 결정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육행정직 동기 한 명이 얼마전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실수도 너무 잦고. 난 역시 폐급인가봐."


 그 친구의 말을 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동시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 너무나도 스마트하고, 합리적이고, 인성적으로도 너무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매사 당당했던 그 친구가 업무 때문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그 친구를 위로해줬지만, 여전히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친구의 표정엔 꽤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진심으로 어느정도는 자신을 '폐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참 답답하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공무원 조직을 비롯한 모든 회사에는 '업무분장'이라는 개념이 있다. 부서에 할당된 전체 업무를 각 구성원이 어떻게 나눠서할지를 부서 내부에서 정한 것이다. 보통 구성원들의 직급, 업무능력 등이 반영되어 업무분장이 결정된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공무원들의 업무분장에는 참으로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 가령 인사 시즌이 되어 새로운 직원이 오게 되면 기존에 있던 직원들은 평소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자잘한 업무 몇 개를 떼어내어 새로온 직원의 업무분장에 던져 넣어 버린다.


 기존의 분위기를 모르는 전입자는 새로운 사람들과 잘 지내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불합리한 업무분장이 이뤄진 걸 알면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쉽게 하지 못한다.


 팀장, 과장의 성격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업무의 실질적인 난이도를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다짜고짜 업무분장에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기존의 부서원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예 신규 발령인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규자라는 이유로 업무분장에서 배려를 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신규자란 이유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자신의 잡다하고 귀찮은 업무를 당연한 듯이 신규자에게 던져 버린다.


 신규자는 역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눈치 채지도 못한 채 그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그러다 몇몇은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다가 자존감을 잃기도 하고, 의원면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공무원 조직의 고질적인 병폐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자신이 폐급 같다고 자책하는 친구의 경우도 모르긴 몰라도 너무 많은 업무분장을 몰아 받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 그 친구도 시간이 지나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다 보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말도 안될 정도로 많고,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결코 그 친구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단순반복적이고, 책임질 게 없고, 적은 양의 업무는 그 누가 한다고 하더라도 별 힘들이지 않고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 반면 복잡하고, 책임질 게 많고, 많은 양의 업무는 그 누가 한다고 하더라도 미스가 날 수밖에 없고, 누군가에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의 업무능력은 결국 그 사람에게 주어진 업무분장에 의해 결정된다.


 쉬운 일만 하는 사람이 자신을 능력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되고, 어려운 일만 하는 사람이 자신을 능력 없다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이 당연한 사실을 그 친구를 비롯한 공무원 조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상기시켜 봤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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