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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27. 2023

사무실에선 모두 다 연기자가 된다

당신은 결코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다

 2018년 동사무소 시절의 일이다. 당시 발령난 지 얼마 안된 신규였던 나는 일은 물론이고 사무실 분위기에도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발령나고 처음 며칠동안 사람들을 찬찬히 관찰하니 다들 성격들이 좋아보였고 일단 무엇보다도 서로서로 굉장히 친해보였다. 친해서 그런지 짓궂은 서로 간의 농담에도 다들 허허 웃으며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다들 참 자유롭고 솔직하게들 직장생활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나 역시도 팀장, 동장의 질문에 처음 며칠간은 꽤나 솔직하게 대답하며 그들의 분위기에 어울리려 노력했었다.


 그런데 한창 화기애애 하다가도 이상하게 내가 대답만 하면 분위기가 소위 '갑분싸'가 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억지로 분위기를 살리려 내 말에 대답을 해주던 몇몇 직원들도 시간이 지나니 아무도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엔 정말 왜그런지 이유도 몰랐었고 한없이 억울하기만 했지만, 이제는 그 사람들이 내게 왜 그랬는지 100% 알 것 같다.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대답을 해주는 법을 모르고 정말 순수하게 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그들과 어울리려 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직원들이 웃으며 하는 대답을 하나하나씩 귀기울여 들어보니 그들의 대답엔 정해진 패턴이 있었다.


 무료하게 앉아 있던 동장이 뜬금없는 질문을 막내 직원에게 던진다. 막내 직원이 어리둥절하며 약간의 애교와 함께 뜬금없는 대답을 한다. 주변 직원들이 와르르 웃으며 막내 직원을 나무란다. 그 모습을 본 팀장동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스윗하게 그 막내 직원을 감싼다. "아유~ 동장님은 ○○이만 감싸셔! 흥!"이라는 10여 년차 주무관의 푸념으로 대화는 끝이 난다.


 내가 본 사무실 내의 대화는 보통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동장은 언제나 "우리 동사무소는 참 직원들끼리 사이가 좋아! 허허허"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해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들 그런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처음엔 그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정도 연차가 쌓이고 나니, 이제는 나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연극'이 시작할 기미가 보이면 최선을 다해 연극에 참여할 준비를 한다.


 언제나 열연을 펼치지만 늘 여전히 약간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든다. 아직은 직장생활 내공이 한참은 모자란 것 같다.


 아무튼 직장생활 5년차가 된 지금은 그런 사무실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저 분위기를 맞추지 못할까 긴장될 뿐이다. 사회생활 초짜에서 걸음마정도 떼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고나 할까. 본능적인 거부감을 이겨내고 꾸역꾸역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득 기특한 마음이 든다.


 사무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혹여라도 그 분위기가 5년 전의 나처럼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지는 분들이 계신다면 너무 자책하지 마셔라.


 꽤 많은 사람들 그런 사무실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불편하지만 직장이란 정글에서 살아 남기 위해, 또 특이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다.'


 몇 년 전의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실 신규분들이 이 글을 보고 조금의 위로라도 얻으셨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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