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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21. 2023

일을 다 못 끝내면 퇴근하지 못하는 병

직장생활에 가장 안 좋은 습관

 오늘 정말 오랜만에 하던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해 4시 40분 칼퇴근을 놓쳤다. 4시 무렵부터 시작한 수익자부담금 징수결의 때문에 평소보다 약 20분이 늦은 5시에 행정실 문을 나섰기 때문이다. 한창 정산을 하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던 2,3월 이후 거의 처음 경험해 보는 늦퇴(?)다.


 사실 학교 행정실은 원체 기본적인 퇴근 시간이 빠르기도 하고, 업무량 자체도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야근을 할 일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한번에 일이 확 몰리는 시즌에도 정신을 집중하고 하루 종일 엑셀과 에듀파인을 번갈아 보고 있으면 충분히 퇴근 시간 전에 4시 40분 이전에 그날에 할당된 모든 일을 다 처리해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이 완벽히 마무리 되지 않으면 쉽사리 사무실을 나서지 못하는 내 성격에도 그동안 웬만해선 거의 칼퇴를 사수해낼 수 있었다. 가끔 오늘처럼 일이 남아 칼퇴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5시, 5시 반이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일반행정 시절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의 무료 봉사다.


 이곳 행정실에서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사실 구청에서 일하던 일행 시절에는 '일을 완전히 다 끝내지 못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는' 약간은 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 성격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령 퇴근 직전에 내가 전담해 처리해야할 정보공개청구 건이 들어오면, "에이, 내일 와서 처리해야지. 일단 퇴근 하자!"라고 가볍게 넘겨버리질 못하고 혹여 내일 처리하게 되더라도 일단 그 정보공개청구의 내용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처리가 곤란한 골치 아픈 요구 사항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러면 이때부터 불안감에 관련 자료를 하나둘씩 열어보기 시작한다.


 정보를 파악하고 간단한 부분의 자료는 그때그때 작성하다 보면 어느새 시계는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저녁 7시를 가르키고 있다. 그제서야 부리나케 가방을 싸고 사무실을 나설 준비를 한다.


 찝찝한 마음을 안고 내일 할 일을 곱씹으며 사무실을 나서면, 이미 해는 다 지고 어둑어둑한 어둠이 퇴근길 앞에 펼쳐져 있다.


 당장 일처리를 완전히 다 해낸 것도 아닌데, 황금 같은 퇴근 직후의 1시간을 본의 아니게 무료 봉사해버린 것이다.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아주 나쁘게 말하면 편집증적인 성향 때문에 나는 구청에 있는 8개월동안 이런 식으로 늘 마음 편하게 퇴근길에 나서지 못했다. 참 오랫동안 고민해온 직장인으로서 나의 치명적인 '맹점'이다.


 사실 공무원으로서 직장 내에서 잘 나가고 싶은 경우에도, 혹은 공무원으로서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퇴근 후의 내 삶을 오롯이 즐기고 싶는 경우에도 지금 당장 닥친 일을 퇴근 시간이 되면 잠시 접어두고 사랑하는 가족과 편안한 보금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일 것이다.


 나는 아직 그 능력을 완벽히 갖추지 못했다. 만약 다음 발령지가 될 지원청에서도 구청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 일에도 함몰 되어 쉽사리 사무실을 나서지 못하는 '병(?)'이 반복된다면 일행직 공무원에 이어 교행직 공무원으로서도 또다시 공직 생활에 치명적인 위기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예로부터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철저하게 임하되 결코 그것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일을 빈틈없이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결되지 않을 일에 너무 과도하게 에너지를 쏟아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직장인으로서의 삶의 지혜다.


 당장 나부터 공무원으로서도, 또 공무원이 아닌 나로서도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업무에 대한 이 쓸데 없는 집착을 어서 빨리 내려놔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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