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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l 16. 2023

공무원에게 자존감이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4월부터 6월까지 약 세 달간 매일같이 글을 써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업로드 하다가, 지난 3주동안은 1일 1글쓰기를 중단하고 매주 일요일에만 한 주에 하나꼴로 글을 업로드했다. 소재 고갈과 체력 소진이 그 주된 이유였다.


 비록 짧은 글들이었지만 사실 지난 몇 달간 매일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을 써내야한다는 것은 내게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보람과 조회수, 구독자수가 늘어나는만큼 매일 퇴근 후 글을 써서 업로드해야 한다는 압박감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 업로드해야 할 글을 완성하지 못한 날 밤이면,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에 잠에 들지 못하고 새벽 1시, 2시가 될 때까지 졸린 눈을 비벼 가며 글을 썼던 적도 여러 번이다.


 덕분에 1일 1글쓰기라는 기록은 세 달에 가깝게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 사이 조금씩 글쓰기라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 '즐거움'이라기보다는 하지 않아서는 안될 '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글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억지스러움이 늘어났다.


 지금은 다행히도 지난 몇 주간의 휴식 덕에 잃어버렸던 에너지가 꽤나 많이 회복되어 이전처럼 1일 1글쓰기는 못할지언정, 2~3일에 한 번씩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다시 예전처럼 글쓰기가 설레고 재밌어졌다.


 그런데 매일 글을 쓰지 않았던 지난 3주동안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나 했다.


 분명 글을 쓰지 않으니 퇴근 후의 시간도 널널하니 너무 좋았고,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어서 편안하고 자유롭기 그지 없었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냥저냥 넘어갈 정도였지만,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자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와도, 아무리 운동을 하고 와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와도, 마음 속의 공허함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커지기만 했다.


 종래엔 '나는 왜 살고 있는 거지? 내 삶엔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까지 사로잡혀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생각보다 내 삶에 있어 그저 취미 생활에 불과한 줄 알았던 글쓰기가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자존감이라는 것은 보통 자신이 하는 일 혹은 직장에서의 생활을 통해 채워지기 마련일 것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을 하고, 그에 따라 돈을 벌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그런 바람직한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공무원들은 현실적으로 그런 '일 혹은 직장'을 통한 일반적인 루트의 자아실현을 하기가 참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전문성을 인정 받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조직에서 인정 받기는커녕 오히려 남들 눈에 '일 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인사 발령 때마다 까다로운 업무, 까다로운 동료가 함께 하는 곳에 발령을 받아 고통 받을 뿐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에도 '적당히 적당히'를 미덕으로 삼으며 열과 성을 다하지 못하고, 직업적인 사명감을 띠고 이 조직에 들어온 사람들도 금세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답습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나 역시도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난 5년동안, 공무원으로서의 자존감을 조금씩 잃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인으로서의 내 삶에 오롯이 '공무원으로서의 삶'만 남기고 다른 것을 다 지우고 나니, 그 어떤 자존감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나란 사람의 자존감이 그동안 평생 직장인 공무원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아이러닉하게도 '공무원에서 멀어지려 발버둥 치는 삶'을 통해서 채워지고 있었다니. 생각할수록 참으로 비참하고 안타깝기만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씩 공무원으로서의 삶에 공허함이 느껴질 때면,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나에게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나는 내 아이에게, "응, 아빠는 공무원이야."라고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봐도,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만큼은 그렇게 당당히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란 사람의 자존감과 공무원으로서의 자존감은 어디서 채워지는가.


 앞으로 내가 공직을 떠날 그 날까지 매일같이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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