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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l 23. 2023

5급 공무원과 환경미화원

성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동사무소에서 청소 담당으로 일하던 시절, 내가 있었던 ○○동 동사무소에는 총 네 분의 환경미화원이 계셨다.


 당시 그분들께서는 꽤나 좋은 직장에 다니시다가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해 환경미화원으로 들어오신 경우가 많았는데, 한 분은 육군 중령 출신, 또 한 분은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출신, 나머지 두 분은 건축 회사 직원 출신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그분들이 나누시던 대화를 별 생각없이 듣고 있다가 상상 이상으로 수준이 높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 그 동사무소의 최고 관리자였던 5급 동장은 안타깝게도 인성이 아주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심심할 때마다 부하 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며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는 게 주된 일과였는데, 그 갑질의 대상엔 자신보다 서너 살씩 많던 환경미화원분들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날씨가 매우 덥던 어느 여름날, 한번은 동장이 내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야, 오늘 오후에 미화원들 시킬 일 있으니까 오후 청소 시키지 말고 사무실 앞에 집합시켜!"


 그날 오후, 동장은 뙤약볕 아래 집합해 있는 미화원들에게 세 발짜리 수레 하나와 목장갑을 던져 주며 당연한 일을 시키듯, 청사 앞뜰에 있는 사람 크기만한 돌덩이를 청사 뒤편 안보이는 곳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 말도 안되는 작업이 1시간쯤 이어졌을까, 나는 미화원분들과 함께 돌을 옮기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옆에 앉아 계셨던 미화원 한 분께 이렇게 물었다.


 "반장님,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 한여름에 이 말도 안되는 짓을 시키는 게 말이 돼요?"


 그러자 그 미화원께서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주사님, 저 사람도 저렇게 안하면 불안해서 저러는 거야. 가끔씩 저렇게 자기 지위를 확인하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날 것만 같거든. 그러니깐 그냥 대충 시늉만 하면서 적당히 맞춰줘. 그래야 저런 사람들이랑 부딪히지 않을 수 있어."


 당시 나는 솔직히 말해 그 미화원님의 말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었다. '아니 부조리한 일을 당했으면 곧바로 항의를 해서 권리를 찾아야지, 왜 저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하지?' 솔직한 마음으로 한동안 그 미화원님을 겁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사회 생활 짬밥이 생긴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미화원님께서 내게 그렇게 말한 뜻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분께서는 그 동장이 무서워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 동장이란 사람 자체를 이미 자신의 아래로 보고 더 배우고 더 성숙한 윗사람의 '넓은 아량'으로 그 동장의 잘못을 그저 봐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억울한 상황 속에서 미화원님이 지었던 편안한 미소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아마 다른 세 분의 미화원분들도 그과 같은 생각이셨을 것이리라.


 공무원을 비롯해 우리가 소위 회사라고 부르는 집단에는 모두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직급 체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장에서부터 사원까지, 구청장에서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우리는 그 직급 체계에 따라 자신보다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을 '윗사람'으로 모시고, 낮은 직급에 있는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한다.


 그 직급 체계에 따른다면 동사무소의 수장인 5급 동장과 그 동장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환경미화원의 사이에는 분명 넘을 수 없는 직급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5급 동장과 환경미화원 간의 에피소드에서 과연 '진짜 윗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둘중 우리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롤모델로 삼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인생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직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직급 체계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퇴직한 그 동장과 미화원분들은 지금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공무원 조직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진짜 인생'을 살고 있을 그분들의 현재가 참으로 궁금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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