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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ug 10. 2023

학부모 민원을 행정실이 받으라고요?

학교 민원창구 일원화 방안

 설마설마 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 모양새다. 교사들이 학부모 민원에 고통 받으니 이젠 그 민원을 행정실에서 '일원화' 해서 받으란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오고 우리 처지가 처량해서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오늘 아침, 교행 동기 단톡방에 한 동기가 '국힘, 앞으로 모든 학부모 민원, 교사 아닌 학교가 대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본 기사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교사들이 악성 민원에 고통 받고 있으니, 학교 내에 '민원 대응팀'을 신설하여 교사들이 직접적으로 학부모 민원을 상대하지 않게 할 것이란다. 그리고 그 민원 대응팀에는 교감, 행정실장, 공무직 등 학교 근무자 5명 정도가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교사 수십 명이 받던 민원을 한 군데에서 일원화 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발상인데, 학생 학부모 민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행정실장'은 저 명단에 대체 왜 들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교감, 행정실장, 공무직 '등'이라는 것은 저 명단 외에도 다른 학교 근무자들이 대응팀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향후 관련 논의가 이어지면 교육청과 학교에선 저기 누구를 넣으라고 할까.


 담임 교사들이 모두 빠지고 나면 저기 들어갈 사람은 행정실 직원들, 그 중에서도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공채 막내 9급 직원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학생, 학부모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신규 9급 교행 직원이 빗발치는 학부모들의 폭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 받을 상황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과연 학부모 전화를 행정실 직원이 1차로 받고 담임 교사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오해나 왜곡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또 만에 하나 담임 교사가 무책임하게 해당 내용에 대한 응답을 거부한다면, 학부모로부터 유일하게 노출된 민원 창구인 행정실 직원에 대한 보호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불필요한 절차에 화가난 악성 학부모의 각종 폭언과 욕설이 아무 잘못 없는 행정실 직원에게 단지 전화를 받는 역할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중 되어 쏟아지지는 않을까?


 교권 추락으로 인한 각종 학부모 악성 민원에 교사들이 시달린다고 하면, 그 악성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 교사들이 받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가는 방향은 '학부모 악성 민원'이라는 고통의 총량은 그대로 둔 채, 교사들이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고 하니 죄 없는 행정실로 그 고통을 고스란히 몰아주는 모양새다.


 교육행정직 공무원은 교사들과 다르게 각종 악성 민원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해도 끄덕 없는 강철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교육행정직 공무원은 저런 고통을 당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둘 다라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오늘 기사가 난 것처럼 실제로 교육부의 종합 대책이 나온다고 한다면 악성 민원 vs 교사로 가야할 논의가 현장에선 조금씩 교사 vs 교행직 공무원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앞으로 교육청과 학교 내에서 펼쳐질 상황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상상되어 벌써부터 마음 한 쪽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정말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는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조직 내 가장 약한 고리에 모든 고통을 몰아주는 이런 흐름이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공무원들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고 누군가의 자랑스런 아버지고 어머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제발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 배경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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