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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ug 18. 2023

한 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

경기도 모 세무서의 악성 민원 사건

 3주 전, 악성 민원인을 응대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경기도 모 세무서의 민원팀장이 지난 8월 17일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사건이 있은 지 정확히 24일만이다.


 관련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읽다보니, 남편분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힘든 민원실 업무에도 힘든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던 아내였다.”고,

 “아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그랬다.”고.


 한 민원인의 공무원에 대한 악의적인 행동이 한 공무원의 목숨을 빼앗고, 한 가정의 미래와 행복을 영원히 앗아가버렸다. 과연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민원인에 대한 처벌은 어느 정도일까.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구태여 꾸며 말하지 않아도 이미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삶은 이미 한없이 망가져 버렸다. 편의점 알바보다 못한 월급을 받으면서, 그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이 삐뚤어진 불특정 다수의 원색적인 비난과 언어 폭력을 견뎌 내야만 한다. 면도날 같은 민원인들의 욕설과 협박에 우리 공무원들을 보호해주는 보호막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울분을 토하기에도, 억울함을 호소하기에도, 이제는 그럴 힘조차 나질 않는다.


 이번 세무서 악성 민원 사건을 계기로 국세청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 각 세무서 민원봉사실 전직원에게 목에 거는 신분증 모양으로 된 녹음기를 보급한다고 한다.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면 민원인에게 ‘대화를 녹음하겠다고 고지한 뒤’에 녹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사람이 죽어 나가도, 수많은 공무원들이 밥먹듯이 정신과를 드나들어도, 우리를 보호해줘야 하는 국가의 반응은 딱 이 정도가 전부다.


 이미 이성을 잃고 날뛰는 민원인 앞에서 “지금부터 선생님 말씀을 녹음하겠습니다.”라고 하고 녹음기를 틱- 켜고 녹음을 시작하면, 미친 듯이 욕설과 폭언을 내뱉던 민원인이 한순간에 정상적인 사람으로 바뀌기라도 하는 걸까.


 만약 절차대로 녹음을 고지하고, 민원인의 폭언이 녹음기에 녹음되면, 그 다음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어떠한 이유에서든 잡음이 나질 않길 바라는 관리자들의 암묵적, 실질적 압박 속에서 담당 공무원이 과연 정당한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정년까지 별탈없이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만 나를 이곳에서 밀어내는듯한 기분이 든다.


 “쇼하고 있네.”


 자신의 고성에 쓰러진 민원팀장을 내려다 보며 민원인이 내뱉었다는 조롱처럼, 돌아가신 세무서 민원팀장님의 죽음도, 갈수록 열악해지는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도, 이 조직에 대한 나 스스로의 깊은 회의감도 모두 그저 ‘쇼’였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배경 출처: pexels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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