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휴직하지 않은 것처럼
옹기종기의 휴직일기 ep.1
생에 첫 번째 휴직이지만, 4년 전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2년여의 동사무소 생활을 마치고 구청으로 발령난지 8개월 만에 첫 직장이었던 일반행정직 공무원을 의원면직했었다.
'의원면직'이라는 네 글자가 내 인생에 들어옴과 동시에,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홍수 같은 업무량과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민원 전화에 시달리던 내게 마치 지금과 같은 무한한 고요와 여유가 찾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숨가쁘게 돌아가던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삶이 한 순간에 일시정지를 누른듯 팍-! 하고 멈춰버린 지금 이 상황이 마냥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 나는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이 값비싼 휴직 생활에 익숙해질 것이고, 기상 시간이 점차 늦어질 것이며, 직장인 친구들이 하는 말들을 점차 따라가지 못해 우울해 할 것이고, 슬랙스를 입는 시간보다 츄리닝을 입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거의 100%의 확률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첫 번째 휴식 때했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휴직 첫날인 오늘부터 딱 두 가지의 규칙은 반드시 지키려 한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와이프가 출근을 하는 날엔 함께 출근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와이프가 퇴근을 하는 저녁 6시 전에는 집으로 돌아와 있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 두 가지 규칙만 확실하게 지킬 수 있다면, 적어도 이 황금 같은 시간동안 침대 위에 드러누워 의미 없는 유튜브나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텅 빈 지하철 안에 앉아 4월의 봄햇살이 스며드는 창밖 너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 이보다 평화로운 순간이 또 존재할 수 있을까.
휴직자로서의 첫 번째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 배경 출처: TVING 드라마 <백수세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