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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pr 02. 2024

출근 없는 하루는 생각보다 길다

옹기종기의 휴직일기 ep.2

 알람 소리에 잠을 깨고, 출근 준비를 하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받기 싫은 전화를 받고, 엑셀 시트와 씨름을 하고, 공문을 올리고...


 그렇게 직장에서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사무실을 나서면 환하게 빛나던 아침 햇살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어둑하게 변한 거리의 적막함만이 우리의 퇴근길을 반겨준다.


 이런 생활을 몇 년째 하다보면 어느 시점부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원래 하루가 이렇게도 짧았었나?...'​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내게 주어진 하루가 참 짧다고 느껴졌는데, 어제 오늘 이틀동안 임시 백수의 삶을 살다보니 이제는 반대로 내게 주어진 하루가 이렇게도 길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평소와 똑같이 집밖으로 나와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이곳에 올릴 글을 쓰고, 집에 잠시 들러 청소와 빨래를 하고, 점심까지 직접 만들어 먹고, 설거지까지 다 했는데도 시계는 고작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후 1시면 직장에서는 이제 막 점심 식사를 하고 들어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라는 한탄과 함께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오후 일과를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시간이 이렇게 천천히 가는 게 너무나 편안하면서도, 한 편으론 이 여유로움에 금세 익숙해질까 너무나 두렵기도 하다.


 불과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 주와 대비된 내 삶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당장 오늘 오후부터 이 여유가 게으름과 불안감으로 돌변하기 전에 서둘러서 휴직 때 해야할 일을 몇 가지 더 만들어 놓아야겠다.


 평소 관심 있던 동네의 부동산 임장을 다녀올까. 아니면 몇 주째 볼까 말까 고민만 하고 있던 영화인 <듄2>나 보고 올까.


 사실 뭘 해도 괜찮 것 같다.


 당분간은 뭘 해도 괜찮은, 5시간의 일과 시간이 오늘의 내겐 남아 있다.


 * 배경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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