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린이의 마음으로

엄마아빠와 보낸 서른두 살 교행의 어린이날

by 옹기종기

오늘은 어린이날을 맞이해 엄마아빠와 집에서 불고기, 미역국 등 맛있는 잔치 음식을 차려놓고 간만에 즐거운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최근에 옮긴 직장인 교육행정직 일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평소에 못했던 인생과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넘어오는 따뜻한 오월의 봄 햇살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다보니 점심 먹고 차 마시는 약 세 시간 동안의 시간이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어린 시절 나는 어린이날만 되면 평소에 많이 못 먹던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들떠 있었다. 딱 어린이날 당일이 되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롯데리아 햄버거 세트, 페리카나 치킨, 미스터피자 등으로 구성된 '어린이날 3종 세트'를 사다줬기 때문이다. 딱히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굳이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놀이기구 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따뜻한 봄 햇살이 드는 아파트 거실에 앉아 엄마아빠와 함께 '3종 세트'를 먹는 것이 어린이날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해가 드는 아파트의 거실에 앉아 햄버거와 치킨을 먹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시간이 지나 어느새 서른두 살의 청년이 되었다. 어린 아들을 위해 쉬는 날 아침부터 차를 타고 밖에 나가 햄버거와 치킨을 사다주던 삼십대 후반의 엄마아빠는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문득 돌아보면 참 엊그제 같은데 매일매일 별 생각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그 '3종 세트'를 먹던 순간에서 모두가 꽤나 많이 멀어져왔다. 그리고 그 때와 지금 사이의 공간엔 수많은 형태의 기억이 차곡차곡 자리 잡았다.


물론 어린 날의 추억이 가끔은 눈물 날정도로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어른'으로서의 삶에 너무나도 지치는 날이면 그 때의 밝은 햇살과 때묻지 않은 생각들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치며 노력했고, 그에 필요한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므로 그 시간들이 절대 아깝거나 후회스럽지는 않다.


평생 어린이인 사람보다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아빠와 '3종 세트'를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 내가 엄마아빠의 나이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이가 됐을 때 그 어린 시절의 '3종 세트'를 먹던 행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때의 나이든 나는 참 멋진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여전히 엄마아빠와 순수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며 이렇게 내 인생 서른 두번째 어린이 날을 마무리 해본다. :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