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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Sep 18. 2022

공무원 시험에 중독 되는 이유

퇴사도 습관이다

 2018년 2월. 나는 첫번째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 준비 시작 후 약 2년여만의 합격이었다. 합격 문자를 받고 자취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지난 2년간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어서 별다른 잔소리 없이 나를 믿고 기다려준 엄마,아빠의 얼굴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던 와중에도 끝까지 버티고 버텨서 원하던 결과를 만들어낸 내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도 기특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내 힘으로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랜 노력 끝에 결국 원하던 바를 이뤄낸 그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짜릿했다.


 그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2021년 10월. 나는 두번째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첫번째 직장을 퇴사한지 약 1년여만의 합격이었다. 두번째 합격은 아무래도 첫번째 합격에 비해 수험 기간도 확연히 짧았고, 또 공무원 조직에 대한 환상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합격의 기쁨이 첫번째 합격 때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첫번째 합격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한층 더 견고해짐을 느꼈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 간은 내 인생에 별다른 위기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된 직장 생활 역시 이 성공의 기억으로 조금더 현명하게 버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다시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공무원으로서의 두번째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내 방 안에 앉아 1년 전과 4년 전, 두번의 공무원 합격 순간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있다. 긴장 되는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 공문을 확인한다. 그곳에 있는 내 이름을 발견한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른다.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나의 합격 소식을 알린다. 고생했다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 눈물에 시험 준비를 하던 때의 답답함이 눈깜짝할 사이에 씻겨 내려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밝게 빛나고 한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공시생에서 현직 공무원이 된 지금의 나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런데 이렇게 직장 생활에 회의감이 찾아올 때마다 '공무원 합격'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위로 받고 있는 나를 문득 되돌아보니, 한편으론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정도가, 단순히 과거의 좋았던 때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짓는 수준을 한참 넘어서, 오히려 가능만 하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또다른 시험에 도전하여 그 시절의 몰입과 성취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데에 까지 가끔은 생각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 공부를 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공무원으로서의 내 삶은 나의 본성을 억누르고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가짜 삶' 같이만 느껴지고, 오히려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올인하던 공시생으로서의 모습이 진정한 나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아가는 '진짜 삶' 같이만 느껴진다. 어차피 또다른 직장에 합격해 들어간다 하더라도 몇 달이 지나 그 직장의 단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결국 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찾아 기웃거릴 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이렇게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듯, 자꾸만 직장을 그만두고 또다른 시험을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솟구쳐 오다.


 거기에 더해 이 도피에 대한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금더 나은 사람들이랑 일하고 싶다, 조금더 워라밸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 조금더 돈을 많이 주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 등의 본질적이지 않은 표면적인 이유들을 내 스스로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또 한 차례의 이직도 경험했으니 이제는 더이상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굳게 다짐했었는데, 여전히 가끔씩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이런 생각들이 튀어 나온다.


 냉정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내 일상의 감정을 지배하는 이유는 결국 나 스스로가 내 삶의 해결되지 않는 공백이 정확히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 본질을 당당히 들여다볼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해서일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안정적인 삶을 깨뜨리고 또다른 도전을 하는 '무모함' 아니라,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어느 직장을 다니냐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삶의 가치들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현명함'이다. 어렵지만 앞으로 더 발전된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년 전과 4년 전, 공시생 시절의 내가 공무원 시험의 최종 합격을 하고 느꼈던 기쁨의 이유는 내가 공무원이 되었다는 만족감 때문이 아니라, 갖은 노력 끝에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했다는 알량한 '성취감' 때문이었다. 공시생 시절엔 이렇게 성취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시험 합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구해야하는 당연한 삶의 자세였겠지만, 현직 공무원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그러한 삶의 자세는 결코 좋은 쪽으로만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엔 언제나 그 시기에 따라 필요한 삶의 자세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1년 전, 4년 전의 나에게 필요했던 삶의 자세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만큼이나, 현재의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 역시 충분히 어렵고 멋있는 도전이란 생각으로 앞으로 '시험에 올인하는 공시생으로서의 삶'이 아닌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난 두 번의 공시생 시절 들였던 노력만큼이나 최선을 다해 노력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배경 출처: Tvn 드라마 <혼술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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