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허비하는 시간들만 되찾을 수 있다면
한밤중에 잠에서 깨 쓰는 글
가끔 선잠에 들 때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엄마와 함께 깔깔대며 놀던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의 꿈을 꾼다. 꿈의 스토리나 내용은 없다. 그저 잠이 든 것도 아니고 안 든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이어질 때면, 불쑥 어린 시절의 나와 젊은 시절의 엄마의 모습이 꿈 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가 또 사라진다.
늘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내가 꼭 효자라서가 아니라 혹은 마마보이라서가 아니라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며 허비하는 이 수많은 시간들만 내 인생에서 되찾을 수 있다면, 나이가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엄마와 아무 생각 없이 놀던 그 시간을 꿈에서만 어렴풋이 그리워할 필욘 없을텐데, 그냥 지금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서 놀러갈 장소를 정하기만 하면 예전처럼 날이 가는 지도 모르게 엄마랑 깔깔대며 하루종일 놀 수도 있을텐데.
사회인으로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난 5년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하고... 단 시간에 참 많은 것을 얻었지만, 반대로 어린 시절엔 당연한 줄만 알았던 몇몇의 소중한 즐거움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아직은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의 곁을 빠르게 떠나가버렸다.
요즘 같이 나도 모르게 이렇게 약해지고 힘이 빠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그 공허함과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마치 겨울 바람이 꽁꽁 싸맨 외투 속을 파고드는 것마냥 내 몸 깊숙한 곳으로 사정없이 파고 든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것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하며 남은 삶을 살아갈 터이고, 또 다가올 시간들은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더 쏜살같이 내 곁을 떠나갈 터인데 10년, 20년이 지난 후의 나는 과연 가끔씩 느껴지는 이 상실과 공허함의 감정들을 별다른 감정의 동요없이 그저 남들이 하는 것처럼 '으레' 혹은 '어른스레' 견뎌낼 수 있을까.
한번 잠을 깨니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내 방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한겨울의 웃풍만큼이나 차갑고 쓸쓸한 밤이다.
* 배경 출처: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