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도덕수업을 위하여
누가 나에게 가장 싫은 과목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도덕’을 골랐을 것이다.
어렸을 적 도덕시험에서 틀리면 왠지 억울했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틀렸다고 하니, 그게 참 이상했다.
게다가 과목 같지도 않은 도덕 때문에 전과목 평균이 낮아질때면 괜히 화가 났다.
‘나는 수학을 잘해’, ‘과학은 좀 약해’ 같은 말은 해도 ‘나는 도덕을 잘해’ 혹은 ‘도덕을 못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듯이 도덕은 나에게 좀 이상한 과목이었다. .
교사가 되고 나서도 그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덕(道德). 이름만 들어도 따분하고 지루하고 오래된 느낌이 싹 감돈다. 그런 느낌과 걸맞게 교과서도 참 재미없다. 내용도, 삽화도, 질문도 다 재미없다.
요즘은 각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경쟁하느라 형형색색 다채로운 교과서를 만들어내지만, 도덕교과는 여전히 국정교과서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 중에는 교과서 ‘도덕’을 ‘똥떡’으로 바꾸어 놓는 경우가 많다. 이 재미없는 교과서에 숨결이라도 불어넣어주려는 것처럼.
하지만 교과서의 문제만은 아니다. 평가야말로 더더욱 환장할 노릇이다. 아무리 관찰 중심 평가라 해도, 결국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도덕 수행평가지를 만들어야 할 때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정직의 뜻을 안다고 정직해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처럼 도덕이라는 교과가 정규교과로 편성되어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실 도덕시간에 배우는 내용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어른을 보면 인사해야 하고, 친구를 배려해야 하며,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일까, 학기말 성적처리 때 도덕교과는 웬만하면 모두 ‘매우 잘함’이다.
문제는 ‘모른다’가 아니라 ‘안다’와 ‘행한다’ 사이의 간극이다.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반은 도덕시간에 교과서를 펴지 않는다. 어떤 날은 토론수업이 되고, 어떤 날은 철학수업이 되며, 또 어떤 날은 놀이수업이 된다.
도덕 교과에서 다루는 정직, 배려, 성실, 공정 같은 수많은 가치들을 아이들이 직접 삶에 녹여보며,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수업 준비에는 자연스레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어떤 활동이 아이들에게 진짜로 의미 있을까 고민하고, 더 나은 자료를 찾기 위해 밤늦게까지 탐색하기도 한다. 그렇게 공들여 준비한 수업이 막상 기대만큼 흘러가지 않을 때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도 조금 더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사실 '찐'도덕수업은 따로 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웃고 떠드는 그 순간들이다. 그 속에서 생기는 작은 오해와 갈등, 사소한 실수와 양보의 장면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자신을 조율하는 법을 익힌다.
몰래 잘못을 저질렀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할 때, 그리고 그때 나의 ‘찐 잔소리’를 들을 때.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생생한 도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다투고 화해하며 자기만의 속도로 도덕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내게 도덕시간은 늘 어렵지만, 동시에 특별한 시간이기도 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