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좋아, 언니가 좋아?"
나는 딸 둘 있는 집의 둘째 딸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연년생 형제를 뒀다는 것은 내 인생을 미리 보기 할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빨랐던 나는 내 형제의 좋은 면은 정면교사 삼고, 나쁜 면은 반면교사 삼아가며
주변 어른들의 칭찬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학습을 할 때에도 글동냥하는 아이마냥 형제 옆에 딱 붙어 앉아 구경하며 무려 1년이나 앞서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하필 그 형제가 '언니'였다.
엄마에게 나는 어쩔 수 없는 두 번째 자식이었고 그중에서도 키워본 경험이 있는 '두 번째 딸'이었다.
아무래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신선함에 비례하여 나에 대한 엄마의 긴장감도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렸을 적, 나보다 언니를 우선시하는 듯한 엄마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특히 언니가 쓰다 만 물건을 물려받아야 하는 둘째 딸의 숙명 앞에 서럽기까지 했다.
나 홀로 경쟁심이 발동해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이렇게 묻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좋아, 언니가 좋아?"
그런 내가 둘째 딸을 낳았다.
우리 집 첫째와 둘째는 4살 터울.
첫째 딸을 낳고 키우며 둘째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나는 내심 아들을 바랐다.
딸은 꼭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첫째에서 가볍게 성공했으니 이번엔 굳이 딸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들이면 더 좋았다.
예쁘고 귀여운 인형들이 즐비한 우리 집에 장난감 자동차와 공룡들이 새롭게 입주할 상상을 하니
육아가 더 재밌어질 것 같았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집에 여자가 둘, 남자도 둘!
음양이 딱 맞는 이상적인 모습 아닌가.
하지만 둘째는 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했던 것조차 아이에게 미안해질 만큼,
오히려 딸이어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우리 '둘째'를 사랑한다.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엄마의 역할이 서툴던 첫째 아이를 지나 어느 정도 엄마가 익숙해졌을 때 키우게 되는 둘째 아이는
모든 것이 예뻐 보인다고 했다. 뭘 해도 마냥 예쁘단다.
그리고 둘째를 키워보니 정말 그 말이 맞았다.
사실 나는 첫째 아이에게 매우 엄격한 엄마다.
가끔은 만 4세 밖에 안된 아이를 내 친구 대하듯 해서 남편에게 핀잔을 받는다.
그 쪼그만 아이에게 서운할 일이 뭐가 있다고 가끔 나도 모르게 삐지기도 한다.
자기주장이 강해진 아이도 불편한 감정을 참지 않고 티격태격 말다툼이 시작된다.
부끄럽지만 내가 유치한 엄마가 되는 순간이다.
첫째가 갓난아기였을 때,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에 울컥 울화가 치밀 때가 있었다.
첫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둘째는 조금 다르다.
첫째에게는 엄격하고 높았던 기준들도 둘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다.
온전히 그 아이, 그 자체만으로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신선함? 긴장감?
첫째 딸에 비해 떨어지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첫째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첫사랑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귀결되어 나와 아이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유난 떨며 둘째 아이를 돌보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덜해
지극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온 마음을 다해 안아줄 수 있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 후회되던 순간들도 다시 바로 잡고 있다.
나의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우셨을까.
"엄마는 내가 좋아, 언니가 좋아?"
어린 나의 질문에 엄마는 항상 이렇게 답하셨다.
"언니도 좋고, 너도 좋지. 너희들 똑같이 좋지."
그 말 끝에 "에이 거짓말! 엄마는 언니가 더 좋지?" 하며 날 알아달라 투정 부리곤 했었는데
둘째 딸인 내가 둘째 딸을 낳고 길러보니 엄마의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알겠다.
예전 엄마의 마음이 꼭 지금의 내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라고 사랑이 덜하지 않고 또 딸이라고 아쉽지 않다.
내 인생에 기꺼이 들어와준 새 친구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동시에,
성숙한 엄마로 나아갈 수 있도록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둘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