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 4살인 첫째 아이는 인생의 다섯번째 봄을 맞았다.
계절감을 익혀가는 단계라 아직 '봄'이 어떤 계절인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이제 두꺼운 잠바는 안돼. 더우니까" 하고 말하는 걸 보면
아이도 어렴풋하게나마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듯하다.
"왜 다시 두꺼운 옷 입어? 이거 안 더워?"
며칠 전 불어닥친 꽃샘추위로 다시 패딩을 꺼내 입혔더니 아이가 내게 물었다.
한발 다가섰다가 두발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스며오는 봄.
겨울과 봄의 흐릿한 경계를 이해하긴 아직 어려운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아이에게 봄이 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꽃.
꽃이 피고 있다고.
꽃이 핀걸 보니 정말 봄이 왔다고.
지난주부터 소리 없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한 꽃들은 이틀 전 내린 봄비를 기점으로
참아왔던 기세를 팡팡 터뜨리며 앞다퉈 꽃망울을 피웠다.
지금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꽃으로 뒤덮인 별천지다.
이렇게 좋은 날,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 없지.
낮잠에 든 둘째 아이는 유모차에 눕히고
쌩쌩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첫째 아이를 앞세워 꽃구경에 나섰다.
평소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아이라 그런지 포즈가 예사롭지 않다.
튤립 앞에 냅다 누워 꽃받침을 하더니 의도한 듯 시선을 먼 곳에 둔다.
예쁜 거 옆에 예쁜 게 있네? 꽃과 아이. 어쩜 이리도 위화감 없이 어울릴 수 있을까.
한껏 개구진 아이의 표정 덕에 순간, 걱정근심을 잊게 됐다.
아이는 사진 찍히는 것만큼이나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내 휴대폰을 뺏어가더니 정확한 초점으로 수평도 맞춰가며 멋진 튤립을 찍어왔다.
(혹시... 사진에... 재능이 있는 걸까? 이럴 땐 나도 모르게 도치맘이 된다.)
딸과 단둘이 꽃놀이라니!
아이를 낳기 전 가졌었던 로망을 비로소 오늘! 실현한다.
아이도 환한 얼굴로 꽃 앞에서 점프도 하고 꽃냄새도 맡아가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공원을 누비면서 우리만의 봄꽃축제를 즐겼다.
벚꽃축제? 안 가도 후회 없다.
본래 가장 예쁜 벚꽃은 내 동네에 있다지?
오늘 나는 가장 예쁜 꽃을 여한 없이 보았다.
아이와 함께여서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동네 공원에서 그토록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아마 이렇게 좋은 곳을 옆에 두고도 꽃을 보겠다며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갔을 테지.
아이는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아이 때문에 기동력이 약해져 여행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이 덕분에 일상은 더욱 특별해졌다.
최근 복직으로 인해 경직됐던 몸과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며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던 오늘.
다시 한번 깨닫는다.
추운 겨울동안 잊고 있던 봄이 왔음을 확실히 알려주는 것이 꽃이라면
바쁜 나날 속, 잊고 있던 나의 행복을 확실히 일깨워주는 것은 나의 아이였다.
고로 네가 나의 꽃이구나.
너로 인해 완성되는 나의 봄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