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에서 생각나는 한 그릇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여행을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싸우는 것이다.
아내는 나에게 화가 나도 바로 표출을 하지는 않는다. 꽁꽁 싸매고 있다가 한 번에 폭발을 한다.
아마 일본 여행에서도 아내는 본인의 체력의 한계를 느꼈음에도 꾹꾹 참고 나의 열정을 따라오다가 결국 여행이 막바지에 들어서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 돌이켜보면 아내가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을 오기 전 일이 몰려 새벽출근과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일주일 넘게 하게 되어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좋은 곳 맛집 등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아침부터 강행군 일정이었고 밤늦게까지 내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사실 나는 여러 날에 거쳐서 돌아봤던 지역들을 하루에 몰아넣다 보니 아침부터 움직였고 온갖 주방용품 및 아기자기 귀여운 물품이 있는 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열지 않았었다. 그 와중에 날씨마저 나의 열정을 외면했고 결국 아내는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고 폭발했다. 나도 생각만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당황했고 짜증을 내는 아내 모습에 내가 준비한 모든 게 즐겁지 않다고 받아들여져서 서운함을 느꼈다.
너무 뜻대로 안 될 땐 말을 잃는다. 대화가 멈추면 서로 혼자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다. 이 때도 역시 대화를 잃은 잠깐의 순간이 있었는데 아내가 먼저 장난을 쳤다. 한 껏 우중충한 주방식품 거리에서 오픈한 유일한 칼 가게가 있었다. 굉장히 화려하고 뭐라도 다 썰어버릴 것 같은 칼들을 보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툭 내던졌다. 순간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고 화해의 시그널이었다.
그 시그널이 웃음으로 전파되는 순간 모든 감정이 정말 이상할 정도로 사라진다. 아내도 내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체력이 안 따라주니 답답하고 짜증 났었다고 나중에 얘기해 주었다. 나 역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했던 게 가장 컸는데 그냥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를 했었다. 우리는 당시에 그런 얘기를 바로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 대화 없이도 풀릴 수 있는 매개체를 사용했다. 바로 "알코올"
편의점에서 사 온 이 작은 한 캔이 서로의 감정을 잠시 마비시켜놓았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점심 식당 역이 이 알코올의 힘이 더해지면 더욱 장점이 극대화되는 곳이었다. 바로 라멘 <카이> 타베로그 100대 라멘집에 들어올 만큼 이미 검증된 곳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깊은 조개 육수를 한 숟가락 떠먹으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풀어진다. 조금 전 편의점에서 마셨던 알코올뿐만 아니라 오늘 아침부터 응어리져있던 감정까지도... 사실 이 라멘 집은 혼자 주말에 동네를 거닐다가 구글맵에서 본 타베로그 100대 라멘집이라고 해서 우연히 찾은 곳이다. 소금 라멘은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정말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이 비웠고 이렇게 맛있는 라멘을 아내와 꼭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돌아다녔고 이것 역시 아내의 체력에 무리를 줬던 것 같기도 하다..)
이 한 그릇을 먹은 이후 서운함은 싹 사라졌고 남은 일정은 웃으며 많은 사진을 남기며 잘 마무리했다. 내가 처음 혼자 이 라멘을 먹었을 때의 감동까지 아내가 느낀 것 같지는 않지만, 아내 역시도 맛있다고 했다. 함께 여행한다는 것, 가끔은 체력의 정도가 그리고 그날의 감정의 온도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맛있게 먹었던 걸 공유하고 내가 행복했던 순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함께하는 여행의 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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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정보>
라멘 카이 - 조개 육수를 내서 만든 시오라멘 전문점이다.
https://maps.app.goo.gl/YhjJfFAQbraFfGe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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