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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Aug 18. 2024

엄마, 레고 사줘요. 으앙.

레고에서 인생을 배운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어린이 완구 매출 순위 기사를 우연히 접한 적이 있었는데 10위 안에 레고(LEGO) 제품이 세 개나 자리하고 있었다. 해적선, 성(castle), 슈퍼 히어로 레고는 소비자에게 가슴 벅차오르는 동심의 판타지를 선물해 주지만 소비자 가격만큼은 동심과 꽤 거리가 멀었. LEGO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레고 정품의 가격은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조차도 선뜻 지갑을 열기 힘들 정도로 접근 장벽이 높다. 나도 어렸을 적 장난감 코너 진열된 해적선 레고에 눈이 뒤집혀 장난감 가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엄마에게 1인 시위를 펼친 적이 있었. 물론 효과는 없었고 괜스레 바닥 청소만 해준 격이다. 시위 피켓이라도 하나 준비할 걸 그랬나 보다.


  아내 장을 보기 위해 대형마트를 찾았다. 장난감 코너를 마주했을 때 그 옛날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레고가 갖고 싶다고 떼를 쓰던 철없는 동심과 조우했다. 이젠 1인 시위나 바닥 청소 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레고가 갖고 싶다면 지갑을 열어 소비를 하면 그뿐이다. 그래도 큰 금액을 지불하기엔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손이 떨려와서 비교적 저렴해 보이는 작은 자동차 레고 하나를 카트에 담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레고 상자를 뜯어 희미 유년의 조각을 조립했다.

언제 이렇게 쌓였지?

 레고 조립에 점점 재미가 들렸는지 용돈을 꼬박 아끼고 모아 3년 여에 걸쳐 더 비싸고 브릭 피스가 많은 레고를 사들였다.(간혹 생일에 아내로부터 레고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럴싸한 제품을 하나씩 조립해서 모으다 보니 제법 근사한 레고 왕국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작품들뿌듯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니 미니 피규어들이 아이 컨택을 하 판촉 활동을 벌였다.


"비싼 레고를 사주신 어른 호구님, 감사해요.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답니다."

레고 도시와 미니 피규어들

 흥망성쇠(興亡盛衰)라 했던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레고 왕국도 혜성과의 충돌을 막을 수 없는 지구의 마지막 운명처럼 곧 종말 앞두고 있었다. 레고 왕국 속 미니 피규어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첫째 아들'이란 이름의 혜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핏덩이일 때야 상관없겠지만 나중에 기어 다니기라도 한다면 작디작은 레고 브릭은 아기에게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었다. 혹여나 삼킬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그리하여 그동안 자식과도 같았레고 왕국을 내 손으로 직접 철거하여 다이소에서 사 온 상자에 나누어 담았다. 다 담으니 예닐곱 박스가 나왔다. 레고 왕국이 사라진 자리엔 맥수지탄(麥秀之嘆)과 엇비슷한 망국의 설움만이 남아 있었다.

이젠 저 책장에 레고 대신 아들들의 책들로 수북하다....

 레고 왕국이 사라지고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멸망한 레고 왕국은 아직도 먼지가 쌓여가는 어두컴컴한 상자 속에 여전히 잠들어 있다. 둘째 아들(첫째 아들이 태어나고 2년 뒤에 둘째 아들이란 이름의 혜성이 등장했다.)아직 여섯 살이라 레고 왕국이 다시 세상 빛을 보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루는 둘째 아들 녀석이 다이소에서 3,000원짜리 브릭 장난감을 사 오더니 '아빠, 레고 조립해 주세요'라며 안긴다. 엄밀히 말해서 정품 레고 제품은 아니었지만 한때 4~5000 피스의 레고 조립을 능수능란하게 했던 나에게 이 정도는 미적분 1등급 받는 학생에게 덧셈뺄셈곱하기 문제지를 던져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추억이란 상념에 젖은 채 후딱 조립하여 짠, 하고 건네니 둘째는 '아빠는 레고 박사'라며 비즈니스석으로 비행기를 태운다. 효자 같으니.

레고 박사에게 이 정도쯤은...

 브릭 피스가 많은 레고를 조립할 땐 고도의 집중력과 지극한 정성. 기나긴 시간을 투입해 한다. 일단 브릭 포장을 뜯어 종류와 색깔별로 브릭을 분류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만에 하나 브릭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으면 완공되기까지 오랜 시일걸리고 조립 실수도 잦아진. 분류 작업이 끝나면 책 한 권 분량의 조립설명서를 펼쳐 놓고 본격적인 레고 조립을 시작한다. 조립설명서를 만만히 봤다간 사달이 날 수도 있다. '작은 브릭 하나쯤이야'가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 브릭 하나를 빠뜨려 버리면 어느 순간에 막히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태껏 간신히 만들어 놓은 걸 슬픔과 분노로 해체하고 브릭을 빼먹은 포인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차근차근 지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층층이 건물을 정성스럽게 쌓아나간다. 레고 조립은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레고 조립에서 인생을 떠올린다. 내 인생 조각조각들은 질서 있게 분류되어 있지 않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진 않은가. 삶의 완성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가, 현재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 현재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혹여 삶을 조립해 오다가 빠뜨린 조각없는가. 그리고 기어이 삶을 완성시키겠다는 인생조립설명서와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레고를 조립하며 인생을 배울 수 있다면 언제든 아들들에게 레고를 사줄 의향이 있다. 물론 다.. 다이소에서...


인생은 기성품이 아니야. 미완의 브릭들을 내손으로 조립하면서 완성시켜 나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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