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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l 07. 2024

아버지, 호랑이 그리고 감자수제비국

 스무 살의 문턱에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자마자 주어진 미션은 가족으로부터의 분리 후 생존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도시 소재의 대학에 합격하여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하숙, 자취, 기숙사 생활을 서늘한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처럼 전전했다. 호랑이 같았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이제부턴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낯선 현실감각동시에 엄습했다.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켜내 마음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음습한 귀신의 방을 외로이 통과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었. 두려움이 파생시킨 한 줄기 외로움을 잘라내고자 강박스러울 정도로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런데 이상스러울만치 삶은 더욱 외로웠고 늘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나만의 주체적인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을까? 타인들과 어지럽게 섞여야 비로소 살아있는 것 같았고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지만 결정적으로 결국 타인일 뿐이었고 내 가족이 되어줄 순 없었다. 늘 마음속엔 결핍과 그리움이 싹을 틔웠다.


 바깥에서 지인들과 어울리다가 고독의 공기가 가득 채워진 자취방으로 호젓하게 돌아오면 창문을 열어 방안의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켰다. 열어젖힌 창문 사이로 내가 두고 온 고향집의 훈훈한 공기가 방안으로 홀연히 스며들었다. 모락연기가 피어오르는 어머니표 정갈한 감자수제비국, 해태 타이거즈를 좋아하는 부자가 푹신한 소파에 앉아 선동열과 이종범 선수의 활약을 맘 편히 즐기던 거실의 넉넉한 한 , 여동생과 집안 곳곳을 들쑤시고 헤집으며 구축했던 둘만의 은밀한 이불 아지트. 과거의 추억들을 곱씹으며 밤을 지새우다 보면 어느새 태양은 어제와 조금 다른 옷을 갖춰 입고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환하게 알렸다.


 예전 가족은 이젠 현재가 아닌 아련한 과거 속에 갇혀 버렸다. 어느덧 나는 새로운 가족을 꾸렸고 남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현재의 가족에 충실할수록 과거의 가족은 어슴푸레한 달빛처럼 희미해져 갔다. 내가 꾸린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다 보니 정작 멀리 떨어져 계신 나의 아버지께는 아들 된 도리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들자식은 필요 없다는 말을 내가 직접 실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6살, 8살인 두 살 터울의 아들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감정 표현도 제법 잘하고 말에 논리도 붙기 시작했으며 신체적인 발육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고작 여섯 살, 여덟 살의 두 아들 녀석.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녀석들이 훌쩍 커버릴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밀려온다. 녀석들이 커나가면서 지금의 순수함의 농도가 점차 옅어질까 봐 벌써부터 어두운 근심이 밀려온다. 언젠가는 장성하여 내 곁을 차차 떠나갈까 봐 벌써부터 오지랖 넓은 이별 준비를 떠올리고 있다. 예전의 스무 살의 내가 그렇게 아버지의 곁을 영영 떠났듯이.


 아버지는 스스로 학습지를 곧잘 풀던 여섯 살배기 아들이, 덩치만 한 책가방을 등에 메고 왕복 4킬로미터가 넘는 등하굣길을 스스로 걸어 다니던 여덟 살배기 아들이, 탈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어린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한없이 예뻐 보였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아들이 성인이 되어 아버지 곁을 그렇게 무정하게 떠날 줄을 그땐 아셨을까. 그리고 떠나간 아들이 이젠 자기 식구 챙기기에도 버거워하며 힘이 빠져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차갑게 외면할 줄을 그땐 아셨을까.


아버지는,

그때는,

차마 아셨을까.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감자수제비국을 배불리 먹고 아버지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이젠 추억의 해태가 아닌 기아 타이거즈 경기를 맘 졸이며 응원하고 싶은 하루다.


어렸을 적 호랑이 같던 아버지가 사실 무서웠습니다. 제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그것이 실은 사랑의 모락연기가 피어오르는 엄격함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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