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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Oct 10. 2024

아내가 아침마다 내게 사과를 먹이는 내막은?

사과에서 인생을 배운다.

 우리 집 아침 밥상엔 늘상 제철 과일 한 접시가 올라온다. 요즘은 가을철이라 사과와 배가 주로 놓인다. 어릴 적엔 먹거리가 별로 없었고 과일 자체가 귀했던 탓에 과일이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맛있게 먹었는데 먹을거리가 많아진 지금은 그다지 과일을 손수 챙겨서 먹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아침 공복에 먹는 사과가 금사과라며 기어코 사과 한쪽을 디저트가 아닌 애피타이저로 먹인다. 사과를 하도 먹어서 애플힙이 되어 버릴 지경이다.


 주변에 몇몇 지인은 부부싸움을 하면서 가전제품이 여러 대 망가졌다는데, 우리 부부는 물리적인 충돌과 상스러운 욕설을 혐오하는 평화주의자라서 우리 집 가전제품들은 멀쩡한 편이다. 연애할 당시 세 번이나 헤어질 정도로 이미 싸울 만큼 싸우고 난 후 결혼을 해서 그런지( 뭐, 싸웠다기보단 내가 일방적으로 당한 쪽에 가깝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애틋하다. 하지만 결혼 생활도 결국 사람이 사는 일인지라 아내와의 갈등이 전혀 없진 않았다.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는 거짓말이다. 하얀 거짓말일지언정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내의 확고함이었다. 아내는 선의가 담긴 거짓말이든, 가벼운 거짓말이든 거짓말이 발각되는 순간 그건 상호 간의 신뢰를 깨버리는 것이니 투명하게 서로의 삶을 공유하자고 줄곧 주장했다. 내 입장에서는 아내를 배려한답시고 하얀 거짓말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아내의 입장은 '하얀색'이나 '새빨간색' 같은 색감보단 '거짓말'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하긴 '하얀'이나 '새빨간'이나 내 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하여 자의적으로 입힌 색채이니 상대방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차피 거짓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오래전에 던 하얀 거짓말이 최근에 발각되어 늘 그랬듯이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깨졌다. 가벼운 거짓말에도 불같이 화를 내니 나도 약간 예민하게 반응을 했나 보다. 내 양심은 조심스럽게 사과 기안을 올렸지만 최종 결재권자인 자존심이 아내를 향한 사과를 반려시키고 말았다. 결국 감정의 골이 풀리지 않은 채로 각자 다른 방에서 잠자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차려준 밥을 말없이 먹고 나서 출근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나섰다. 아내는 조용히 뒤따라 오더니 포근하게 말을 건넸다.


"안 안아줄 거야?"


 아내에게 만병통치약은 포옹이었을까. 먼저 화해를 시도한 아내에게 어색함의 체온과 미안함의 온도를 적절히 배합하여 과일망으로 사과를 감싸듯 안아주었다. 내 품 속에 쏙 들어온 아내는 홍조 띤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는 사과해."

"미안해."

"다신 거짓말하지 마. 부부 사이에 신뢰는 져버리지 말자."

"응, 다신 안 그럴게."


 이렇듯 아내랑 11년의 결혼 세월을 지내오면서 생긴 오해와 갈등의 골은 하루를 넘긴 적이 없었다. 아내는 포옹 열쇠로 내 자존심이 단단히 걸어 잠근 마음의 자물쇠를 풀어 부끄러운 사과를 끄집어냈다. 엄한 가정환경 속에 살아온 탓인지, 혹은 천성적인지 몰라도 나는 유독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를 어려워한다. 나의 이런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본인이 먼저 자세를 낮추고 나에게 다가와준 것이다. 난 아내보다 물리적인 키만 컸지 마음의 키는 훨씬 작았다.


 상대방과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본인이 먼저 낮아져야 한다. 자존심의 콧대는 아무리 높여봤자 거짓말이 만든 피노키오의 거추장스러운 코처럼 보기 흉할 뿐이다. 마음의 콧대가 낮으면 낮을수록 내면은 잘생겨지는 법이다. 감사의 표현, 사과의 표현, 사랑의 표현은 꽉 막혀 있던 감정의 둑을 무너뜨릴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도 있고, 꽁꽁 얼어있던 감정의 두꺼운 얼음을 녹여주는 햇살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나를 향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심어주었다면 자존심만 내세우지 말고 사과의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보자. 매일 아침 금사과를 얻어먹은 주제에 그동안 사과 한 마디 먼저 건네지 못했던 내 모습은 얼마나 보기 흉했던가.


 그런데... 사과  말고 파인애플을 먹으면 사과의 퀄리티가 더 좋아지려나? 이런 쓸데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재인가 보다. 오늘의 사과 이야기, 끝.


당신의 키가 작다면 매너다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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