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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Sep 29. 2024

오늘도 밀걸레의 머리를 감긴다.

청소에서 인생을 배운다.

 한때 우리 부부는 매주 토요일마다 교회 청소 봉사를 다녔다. 교인 수가 제법 붙어 셀(공동체의 최소 단위)이란 것이 만들어지고 목사님께서 교인들의 친목과 단합을 위해 셀별로 주말 청소를 하자고 제안하시기 전까진 우리 부부와 목사님 내외분이 교회 청소를 도맡아 했었다. 아내는 주로 화장실 청소와 장의자 닦기, 나는 바닥 쓸기와 밀걸레 청소를 담당했다. 굵은 땀방울을 흘려 가며 근면성실하게 화장실 왁스 청소를 하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고요히 사유했다.


'아내는 이토록 교회 청소에 진심인데 정작 우리 집은 왜 더럽지...?'


 털이 듬성듬성 빠져나가 중년 탈모가 온 듯한 짜리몽땅한 망초빗자루를 들고 비질을 할 땐 다소 큰 키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허리에 묵직한 뻐근함이 밀려왔다. 기다란 마녀빗자루 한 대가 아쉬웠지만 묵직한 뻐근함을 묵묵한 뿌듯함으로 치환시키면 그래도 성스러운 에너지가 솟아 나와 견딜 만했다. 나 하나 수고하면 나머지 교인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질을 마치면 다음은 밀걸레가 나섰다. 교회 외벽에 설치된 수돗가에서 바싹 마른 밀걸레의 청마포에 물기를 흠뻑 묻히고 빗자루가 쓸고 간 자리에 다시 한번 물기를 덧칠하며 남아 있는 먼지와 얼룩을 차근차근 제거했다. 본당과 계단, 로비까지 청소하려면 밀걸레 하나가 머금고 있는 물기로는 턱도 없었다. 시간 단축의 효용을 얻기 위해 밀걸레 2개를 빨아 성능 좋은 로봇청소기처럼 구석구석 힘 있게 쌍걸레질을 해댔다. 군대에서 배워 온 쌍걸레질이 이리 유용할 줄이야.


 방금 전까진 일주일 동안 따사로운 햇빛 화장을 받아 뽀얗고 화사했던 밀걸레였는데 청소 조금 했다고 그새 밀걸레는 걸레(?)가 되어있었다. 걸레가 된 밀걸레를 다시 빨아 해풍에 오징어 말리듯 바람 좋고 양지바른 곳에 널어두는 것으로 청소 봉사는 갈무리된다. 더러운 곳을 닦아 내는 일이 걸레의 본질이니 청마포가 더럽혀졌다고 해서 밀걸레가 따로 불만을 제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밀걸레의 청마포가 깨끗해져야 다시 무엇인가를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을 터라 노동에 지쳐 버린 밀걸레대를 간신히 움켜쥐고 숙달된 두피 마사지사처럼 청마포 머리를 박박 감겼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밀걸레를 거꾸로 매달아 두니 청마포에 스며든 물기는 눈물방울이 되어 지면을 향해 뚝뚝 떨어지며 다가올 작별을 아쉬워한다. 마침 건조함을 머금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헤어드라이기처럼 청마포 머리를 조금씩 말려 준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나른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밀걸레 2대를 보며 나는 고요히 사유했다. 밀걸레가 은밀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당신이 깨끗해질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더러워져도 괜찮아요.'


 밀걸레에는 객체를 깨끗이 하고 자신이란 주체는 더러워지는 희생과 겸손이 담겨 있다. 자신의 머릿결이 헝클어지고 온갖 먼지가 들러붙어도 밀걸레는 주인이 게으르지 않은 이상 절대 청소를 사양하는 법이 없다. 밀걸레의 욕망은 양지바른 곳에 널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일광욕을 즐기는 게 아니라 바닥을 깨끗하게 빛내주는 헌신에 있다.


 요즘 사회에서 손해기피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더러 목격한.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더 손해 보는 느낌이 들면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빠하는 일종의 놀부심보랄까. 아마도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가 낳은 기형적인 관념 중 하나가 손해기피증일지도 모른다.


"쟤는 쉬운 창틀 청소인데 왜 나만 힘든 밀걸레 청소야?"

"난 늦게 도착해서 조금밖에 못 먹었으니까 회비 깎아줘."

"쟤는 별 볼 일 없는 녀석인데 결혼 잘해서 인생 폈네."


 남들과 비교하면 할수록 나의 열등감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흑암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만다. 남들보다 잘나야 하고,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하는 이기적인 욕망은 결국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는 자학적 상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평생 본전 생각만 하다가 한 번뿐인 인생을 이대로 끝내버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이 세상의 논리는 유아용 상점 놀이 장난감처럼 인풋과 아웃풋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무릇 수리과학적 소양보단 인문철학적 소양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세상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너와 나를 빛내주는 참다운 가치 중의 하나가 봉사 정신이다. 자기 자신에서 찾는 만족과 행복감은 그릇과도 같다. 각자의 그릇 모양과 사이즈가 다르고 일정 정도의 양이 채워지면 더 이상 행복을 담아낼 수 없다. 하지만 남을 위해 헌신하는 데서 오는 만족과 행복감은 세계 신기록과도 같아서 끝없이 갱신되며 한계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당신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나요? 오로지 나의 행복만 좇고 있나요, 상대방의 행복을 채워주기도 나요?'


 상대방의 먼지 낀 마음을 닦아주기 위해 마음의 걸레질을 해야 할 때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걸레질을 해주며 모두가 깨끗해지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오늘도 밀걸레의 머리를 감기며 하루를 닦을 채비를 한다.


 교회가 깨끗해질 수 있다면 우리 집 따위는 더러워도 상관없..... 하... 이건 어렵네...


성에 낀 거울을 닦아주면 흐릿했던 내 모습도 선명하게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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