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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Apr 04. 2024

<정선주> 2화

돈가스 가스나

 내향적, 괴팍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성격은 마술과 궁합이 잘 맞았다. 갑자기 마술에 왜 끌렸냐고? 마술이든 소설이든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비슷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창조해 낸다는 것, 감동과 재미를 준다는 것, 완벽함을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등 갖다 붙이면 그럴싸한 이유야 셀 수 없이 많았다. 단지 마술은 내가 즐겨 읽었던 추리 소설과 유사한 맥락의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불가능할 거 같았지만 끝내 가능함으로 만들어버리는 역전과 반전의 도파민, 난 이 포인트에 끌렸다.      


 무료 초급 마술부터 유료 중급 마술까지, 되는 대로 마구잡이로 손에 익혔다. 쥐꼬리보다 작은 용돈을 모으고 모아 마술 도구도 몇 개 구매했다. 어느 정도 마술이 손에 익으면 주로 남자 동기들한테 임상 테스트를 거쳤다. 어색하게 판을 깔고 남모르게 세팅을 한 후 우연인 척 동기들에게 다가가 성공이냐 실패냐의 변수로 가득한 마술쇼를 선보였다. 마술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지팡이의 힘은 대단했다. 동기들의 호응은 의외로 괜찮았다. 내 마술은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 내 소설을 가볍게 치부하여 장난 같은 서평을 남긴 그놈들보다는 지금의 내 마술을 인정해 주는 대학 동기 녀석들이 훨씬 나았다. 난 자신감을 얻어 더 어려운 마술에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종이컵에 담은 물이 사라지는 마술, 중력을 거스르는 동전 마술, 카드로 하는 사랑 고백 마술, 콜라 캔으로 하는 타임머신 마술 등도 곧잘 하게 되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마술이 주는 극적인 아드레날린에 서서히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돈가스다. 지금 내 앞에 앉아서 가로, 세로 규격을 얼추 맞춰가며 정성스레 돈가스를 자르고 있는 사람은 내 여자 동기 정선주다. 절대 내가 먼저 돈가스집에 가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붙들고 돈가스 가게로 인도한 건 다름 아닌 그녀였다. 캔 커피를 건넨 날, 날 버려두고 여자 동기들과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는 죄책감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며칠 후 선뜻 나한테 돈가스나 썰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왔다. 그녀와 돈가스를 먹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이루어졌지만, 오늘은 돈가스가 그다지 당기지 않는 날이었다. 사실 어제 밤늦게까지 유난히 나한테 집착하며 껄덕대는 남자 동기와 ‘원나잇과 사랑의 상관관계’란 욕구 충만한 주제를 안주 삼아 술을 마구 부어 댔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느끼한 돼지 튀김보단 내 속을 달랠 뜨끈한 해장국의 얼큰한 국물이었다. 그녀의 느끼한 제안에 차마 해장국 한 사발은 어떻겠냐는 말을 시원하게 끼얹을 순 없었다. 순순히 그녀의 뒤를 따라가 상과대학 쪽문을 10분쯤 걸어 나가서 아이보리빛 2층 건물에 위치한 돈가스 가게의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연두색 플라스틱 재질의 테이블에서 김이 모락 피어오르는 돈가스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나란히 마주 앉아 있는 중이다.    

 

“돈가스 싫어해? 어르신들이 너 밥 먹는 거 보고 복 없단 말 자주 하시지? 아버지가 던지시는 숟가락에도 몇 번 맞았을 것 같은데.”

 

 그녀는 귀신일까, 점쟁이일까. 아쉽게도 숟가락이 아니라 젓가락이었지만 사실 어렸을 때 반찬투정하다가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던지신 젓가락에 맞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돈가스를 썰어서 먹는 건지, 돈가스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조소과 학생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난 쓰린 속을 간신히 부여잡고 돈가스를 예쁘게 조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도무지 이 느끼한 치즈 돈가스가 입 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깨작깨작함이 그녀에게 달갑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니, 나 돈가스 엄청 좋아해.”

 

 돈가스를 엄청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돈가스를 엄청 안 먹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잘게 잘라 놓은 돈가스 조각 중에서 또 제일 작은 조각을 기어이 찾아내어 포크로 꼭 집어 내 입 안으로 우겨서 넣었다. 머리로는 먹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벌써부터 입안에서는 거부반응이 올라왔다. 돈가스 강제노역을 힘겹게 하고있는 와중에 그녀는 채찍 든 노역 책임자처럼 나를 유심히 감시 및 관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돈가스를 싫어하는 것 같단 말이지. 흐음.”   

아니야, 정 확인하고 싶으면 다음에 여기 한 번 더 오든가. 오늘은 도저히 날이 아니거든.”   

  

 헉. 방금 내가 뭐라고 말한 거지? 소개팅이나 맞선 자리도 아닌데 이상하게 애프터 신청 같은 애매모호한 뉘앙스를 풍겨버렸다. 돈가스를 오물오물 씹고 있던 그녀는 ‘피식’하는 싱거운 입술소리로 반응을 했다. 그녀는 씹고 있던 돈가스를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긴 후 그녀의 콧대가 높다는 걸 고풍스럽게 과시했다. 실제로 콧등이 높기도 했지만.

  

“내가 여기 너랑 또 온대? 김칫국부터 마시기는…….”   

그냥 그렇단 말이야. 어쨌든 나 진짜 돈가스 좋아해.”     

,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다?”     


 잘못 들었나? 가여운 게 아니라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어느 부분에서 귀엽다는 건지 남자 인간의 정서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모국어를 말하고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 이후, 귀엽다는 말은 부모님한테도 못 들어봤는데. 그렇다고 앞니 벌어진 하회탈같은 외모가 귀여운 건 아닐테구. 여자 인간의 정서는 참 기괴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돈가스를 진짜 좋아한다는 말이 남긴 무거운 의무감으로 인해 그래도 절반 이상의 돈가스는 겨우 해치웠다. 그녀도 까치밥홍시인지, 여성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돈가스 몇 조각을 접시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식사를 멈추었다. 내가 계산을 하려 하자 그녀가 황급히 날 돌려세웠다.   

  

“어이. 돈가스 편식하는 작가 선생. 오늘은 누나가 사는 거야.”    

 

 대학 동기인데 연장자 타령을 하며 그녀는 큐트한 분홍빛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카운터 직원에게 예의 바르게 건네주었다. 누나라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아 속으로 재수를 했나, 하고, 앞으론 누나라고 불러야 하나,같은 합리적인 의심을 해 봤다. 그녀는 내 맘 속을 투시라도 한 듯이 나의 의심증을 금방 해소해 주었다.     


“너보다 정신 연령이 높다는 말이니까 너무 깊은 의미는 부여하지 마. 크크. 너랑 같은 80년 원숭이 띠라구. 뭐 너보단 훨씬 어려 보이긴 하지만.”     


 그녀는 남을 리드하는 리더십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췄고 말하는 센스 역시 탁월했다. 앞서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는 언급했지만, 그녀는 여자 동기들 중에서 외모적으로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압도적인 절세미인형은 아니었지만 평범함 속에 고혹미와 우아함이 공존하는 외모였다. 검은색 긴 생머리에 화장기가 없는 얼굴, 평소엔 그윽한 눈빛이었다가 웃을 때 더욱 매력이 배가 되는 눈매와 적당히 오똑한 코, 웃을 때 귀에 걸릴락 말락 하는 유연한 입술, 황인종과 백인종의 경계에 있는 듯한 복숭아 빛 피부. 수수한 하얀색 면티와 면바지를 즐겨 입었지만 고가의 명품 드레스보다 더 화려해 보였던 옷차림.    


 돈가스집을 나선 후 다시 학교를 향해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걸어갔다. 친구 사이라도 애인 사이라도 볼 수 없는 애매한 거리감이었다. 가끔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그녀에게 가벼운 경고 신호를 준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을 섞지 않고 우린 학교 쪽을 향해 터벅터벅 말 없이 걸어갔을 뿐이었다. 바람에 실려 은은하게 번져오는 그녀의 화장품 냄새는 내 마음을 쿵,하고 두드리고 나서 다시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갔다. 학교까지는 아직 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어색함 가득한 정적을 깨고 싶어서 입안에서 요리조리 빙빙 돌고만 있던 말을 용기 내어 꺼냈다.      


“남자 친구는 있어?”     


 이 시점에서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는 했다. 남자 친구가 없으면 내가 너에게 돌격할거야, 라는 선전포고는 절대 아니었다. 나와 그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세상이 정해 놓은 보편적인 연애관념이 날 만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런 여자는 어떤 외모의, 어떤 성격의, 어떤 취향의 남자를 만날까, 정도의 가벼운 호기심 차원이었다. 애초에 나 같은 남자 인간과는 격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순전히 노예의 입장에서 주인님의 연애관이 그냥 궁금했다.

  

“있지. 바로 지금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    

 

 그녀에게서 진지한 답변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솔직히 그녀의 답변은 예상 답안 안에 있는 후보 답안 중 하나였다. 그래도 예의상 당황하는 척이라도 해 주자.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내 말은…….”     

애인 말하는 거야?”     


 그녀가 내 질문의 의도를 이제야 알아차린 척을 했다. 그녀는 사실 진짜 답을 말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거나, 이 상황을 지혜롭게 넘어가기 위한 일부의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딴 거 필요 없어…….”     


 그녀답지 않은 침울한 목소리와 분위기가 내 옷깃에 날카롭게 닿았다. 옆에서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말을 더 걸면 안 되겠다고 느껴질 만큼 우수의 늪에 깊게 잠식되는 중이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걸까? 그녀가 떠올리기 싫은 아픈 기억을 들추어 내버린 걸까? 분위기 한 번 띄우기 위해 굴린 작은 눈덩이가 어마어마한 쇳덩어리가 되어 내 마음을 어둡게 짓누르고 지나갔다.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사범대 2호관에 도착해서 우리는 가볍게 안녕, 이라는 인사를 형식적으로 주고받은 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을바람 따라 멀어지는 낙엽처럼 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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